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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Jul 13. 2024

책을 쌓는 즐거움

'읽기'는 '쌓기'를 따라잡지 못한다.

독서의 즐거움에 대해 찬양하는 글들은 동서고금에 차고 넘친다.  그에 비하면 책을 쌓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는 그나마 경쟁이 덜하지 않을까.  나의 '읽기'는 '쌓기'를 절대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 30년 경험을 통해 검증된 정설. 넓지 않은 집의 공간을 희생해 가며 책을 쌓아가는 상황이라면 '쌓기'의 쓸모를 모색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명랑한 은둔자], [인간 본성 불패의 법칙], [아무튼, SF],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마라닉 페이스], [집 앞 목욕탕 vol.5], [TV피플], [가벼운 고백] 보름 사이에 구매한 책의 목록이다.  읽던 하루키의 책이 끝나가서  끊기지 않게 에세이를 두 권 구매했고, 칼럼의 교본으로 생각하던 김영민 교수의 신간도 나왔다. 독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책들도 있고,  구독하던 유튜버가 출간한 첫 책도 있다. 즐겨보던 '아무튼'시리즈를,  애정하는 김초엽 작가가 쓰다니 이것도 안 살 수 없지. 그 와중에 책 선물도 받았다.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당신이 보고 싶어 한 세상]까지 모두 11권. 책만 읽어도 한 달 안에는 무리일 것 같다. 책값은 아끼는 게 아니라고 배웠던 탓인가. 고민 없이 사다 보니 책에게 집을 빼앗기고 있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구매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공간 유지를 위한 비용을 생각하면 엄청난 낭비. 오래된 책들이 쌓여만 간다. 확실히 먼지보다는 빨리 쌓인다.

츤도쿠(積ん読)는 ‘책을 사는 것은 좋아하지만 쌓아 두고 결코 읽지는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본어다. ‘읽다’란 뜻의 일본어 ‘도쿠(読)’와 ‘쌓다’란 의미의 ‘츠무(積む)’에서 파생된 ‘츤(積)’이 합쳐져 ‘읽을거리를 쌓아 둔다’는 의미가 됐다. '츤도쿠 센세이'라는 호칭이 은근히 멋져 보인다.  책을 사면 똑똑해질 내가 연상된다, 소설책 표지를 보면 인생에  대한 통찰이 깊어질 것 같다. 매일 수십 권의 책이 출판되고 그중에 아주 미미한 부분만을 나는 쌓아가고 있을 뿐이다.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중에 읽는 거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도 있지 않는가? 움베르토 에코의 서재에는 책이 3만 권 넘게 있었다고 한다.

되고 싶은 모습들이 담긴 책들을 일단 탄탄하게 쌓는다. 모두 읽고 소화시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끝내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그려는 봐야지.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니 노화 방지를 위한 소소한 지출이라 봐도 되지 않겠는가. 작은 사치는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

[이제는 창고가 되어버린 서재. 책을 찾을 수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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