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급하게 먹으면 안 되는 음식들이 있다. 나에게도경험을 통해 알게 된 위험한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뜨거운 두부요리. 오래 익힌 두부를 허겁지겁 먹다가 식도부터 위장까지의 거리를 생생하게 알게 된 순간이 있었다. 엄청 뜨거운 것이 천천히 내려간다. 목은 지난 거 같은데 이제 가슴 언저리가 타고 있다. 녹아서 구멍이 나지는 않겠지. 찬 콜라가 가득한 컵에는 물방울이 맺힌다. 물방울은 점점 커지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컵의 곡면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간다. 뜨거운 두부가 딱 그 정도의 속도로 내 속을 타고 내려갔다. 가슴 깊은 곳의 뜨거움. 식어버린 열정까지 다시 타오르던 영겁 같은 시간.
의외로 콩국수도 급하게 먹어선 안 되는 음식이다. 햇빛이 쨍하게 선명하던 작년 여름, 저녁 찬거리를 사러 동네 마트에 다녀오다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국밥집에 들렀다. 평소라면 편육에 소주 한 병. 혼술을 마시곤 하던 단골집이었지만 그날은 마침 덥기도 했고, 몇 시간 뒤에 저녁도 만들어 먹을 계획이었기에 간단히 콩국수를 시켰다. 그리고 또 한 번 임사체험을 했다. 고소한 콩국물을 깨까지 야무지게 떠서 몇 번 먹었다. 역시 여름엔 콩국수지. 아침부터 미뤄왔던 허기가 파도처럼 밀려왔고 젓가릭질은 점점 호쾌해져 갔다. 입안 가득한 국수가닥을 와구와구 씹고선 삼키는데 가슴쯤에 가서 턱 하니 막히는 느낌이 왔다. 두드려도 보고 일어서도 보고 물도 마셔보는데 머리까지 쭈뼛서더니 어지럽기 시작했다. 콩국수를 먹다가 숨이 막혀 죽는 삶이란 행복한 인생일까?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죽어가던 나를 지켜보던 사장님이 무심하게 다가와한 잔의 음료를 건넨다.
"레모네이드."
비타민C가 가득한 음료를 해독제라도 마시는 심정으로 조금씩 들이키고 나니 모래시계에서 모래알이 빠져 가나는 만큼의 속도로 막힌 국수가닥들이 위로 내려갔다.
"콩국수도 천천히 먹어야 합니다. 의외로 목에 잘 걸려요"
먹기 전에 말하셨으면 아마 흘려들었겠지? 그래도 저런 말은 먹기 전에 해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레모네이드로 생명을 구해주셨는데. 콩국수를 먹다가 손님이 죽어버리면 사장님도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 그럴 때를 대비해 레모네이드를 준비하신 건가. 콩국수를 먹다가 진짜로 죽은 사람도 한 명쯤은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유니크한 임사체험을 하고서도 매미가 떼 지어 울고, 햇빛이 투명에 가까운 색으로 변해가는 날이면 시원하고 고소한 콩국수가 땡기는 순간이 있다. 순천에서 먹었던 50년 된 콩국수는 진짜 맛있었는데. 이 정도로 콩국수를 좋아하는 거면 비건생활에도 소질이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