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바쁘게 결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급하게 숙제하듯 해치우지 말고 곰곰이 생각해 볼 가치는 있다고 본다. 적어도 다시 만들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영화 '진주의 진주(jinju's pearl)'를 보고 난 후에 남는 문장이다. 영화는 공간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와 먹고살기의 문제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여러 사람의 서사가 층층이 쌓인 장소들이 사라져 가는 과정을 연극적인 장면들을 통해 보여주는데, 무겁게 다가갈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과장된 캐릭터와 CF화면처럼 밝은 톤의 미장센이 관조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 줘서 좋았다. 무언가를 지키는데에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된다면 그것은 옳은 일일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는 누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나에게도 지키고 싶었던 삼각지 다방이 있었나.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나의 삼각지 다방은 어디였을까. 진주가 이렇게 예쁜 도시였다니]
영화 제작과정에서 로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진주가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일 줄이야. 몇 번이나 다녔던 진주성과 촉석루. 근처의 그저 무난하게 예뻤던 카페들.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도 않았을 삼각지 다방까지. 수십 수백 년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진주의 풍경들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어떤 구도로 대상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이렇게나 다르게 느껴지다니. 로케이션이 스토리와 연기만큼이나 중요한 영화적 작업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그에 반해 스토리와 연기는 조금 아쉬웠다. 관객과의 라포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주인공 진주의 감정선이 겉도는 느낌이 강했다. '저게 저렇게 까지 할 일인가.' 다른 조연들도 단편적인 면만 과하게 부각된, 연극 속의 캐릭터를 영상으로 옮긴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신선하기보다는 다소 정성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연극과 영화의 화법이 비슷한 듯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스토리의 전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져 아쉬웠다. 90분의 시간은 하나의 이야기를 담기엔 부족한 것인가. 영화 후에 이어진 GV에서 저예산 영화에서는 불가피하게 생략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상정하고 생략된 장면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는 관람평이 있었다. 생각지 못했던 관람법인데 공감이 많이 되었다. 어디까지가 의도적 생략이고, 어떤 장면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