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거미를 죽였다
예고 없이 찾아온
둥글고 커다란 몸통과
거인의 음모(陰毛) 같은 다리
그 시커먼 형체 앞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다가
끝내 쳐버려 죽이고 만 것이다
언젠가 어느 해충들을
다가올 불안과 추락을
나만의 나쁨과 아픔을
잡아 삼켜줬을지 모를
그녀를 죽이고는 손을
한참을 떨고 떨다가
살갗에 진하게 밴 감각이
지워져 잊힐 리가 없다고
쭈그린 채 되뇌다 홀로
시간이 멎어 잠들 수도 없는
이곳에 굴러떨어지고 만 것이다
감정과 사고의 단편들을 글로 토해내야만 하는 사람이자, 누군간 읽어주겠지, 하며 미미한 관심을 바라는 무면허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