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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by 문창승

어젯밤 거미를 죽였다


예고 없이 찾아온

둥글고 커다란 몸통과

거인의 음모(陰毛) 같은 다리


그 시커먼 형체 앞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다가

끝내 쳐버려 죽이고 만 것이다


언젠가 어느 해충들을

다가올 불안과 추락을

나만의 나쁨과 아픔을

잡아 삼켜줬을지 모를

그녀를 죽이고는 손을


한참을 떨고 떨다가

살갗에 진하게 밴 감각이

지워져 잊힐 리가 없다고


쭈그린 채 되뇌다 홀로

시간이 멎어 잠들 수도 없는

이곳에 굴러떨어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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