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이모 Nov 08. 2023

좋아합니다


은교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계란 먹을래요?

네.

무재 씨는 반으로 자른 계란을 집어서 내 그릇에 넣어 주고 나머지 반쪽을 입에 넣었다. (...) 무재씨의 맞은편에서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앉아 있었다.



황정은, <백의 그림자> 중에서...



_

가을바람은 사붓사붓 불고 새들은 대화를 나누듯 노래를 부르듯 정답게 소리를 주고받는다. 내가 그쪽으로 갈까? / 여기로 와~ 이쪽 방향이야. 이런 대화일까? 혹은, 사랑해. 사랑해/ 아니야 내가 더 사랑해. 이런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일까?


서로 오고가는 돌림 노래 같은 소리의 주고받음. 사람들의 담백한 대화도 내용을 끄고 소리만 들으면 노래 같을 때가 있다. 소설 <백의 그림자> 속 은교와 무재의 대화는 내용만큼이나 소리도 애틋하다.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좋아합니다. 좋아하는데요. 좋습니다. 좋아합니다. 좋은 거지요." 문장의 끝자락만 이어 발음해 보면 꼭 노래 같고 리듬 같고 시 같고 춤 같다. 아름답다.


이 장면이 좋아서 몇 번씩 소리 내서 발음해 본다. 내가 그려놓은 어떤 모습, 조건으로써의 당신이 아니라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있는 그대로 좋으니까 좋아했던 그 감각이 생각이 날 것도 같고 가물가물한 것도 같고. 소설 속 고백 장면 중에 제일로 쳐주고 싶은 이유는 그 투박함에 있다. 이 말 외에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겠다는 군더더기 없는 태도. 담담한 정면돌파. 때로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법.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떨리는 내 목소리를 내가 가장 먼저 들으면서.

한 번도 제대로 발음해 본 적 없는 문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