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달
달은
붉었다 차라리 과학잡지에서 본
화성과 닮았다
시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가 무엇이고 시적인 글이 무엇이냐 간극을 가늠할 수 없어 갸웃거리던 참에 불현듯 달이 보였다 붉은 초승달이었다 그때부터는 시고 무엇이고 저 달이 왜 붉은가만 생각했다 길 하나 건너고 달 한 번, 길 하나 건너고 달 한 번, 초승달도 붉을 수가 있던가 오늘이 무슨 날이라고 했던가 버스는 오지 않고 시간은 더디고 달은 붉다 행여 오늘이 무슨 날인가 싶어 붉은 달을 찾아 본다 역시 아무 날도 아니다 그러면 왜
저 달은 붉은 걸까, 버스에 올라타며 미처 달을 데려오지 못했다 블러드문도 아니고 화성도 아니면서 그만치 붉은 달은 아직 저기 있는데 버스는 아랑곳이 없다 자리에 앉아 달려가는 빈 하늘에다 붉은 달을 상상한다 초승달이었지 붉은 초승달이었지 붉은 초승달 안에 거뭇한 바다가 있었지 달 바깥으로 붉게 잔영이 보였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붉은 달을 찾아 고개를 빼고 하늘 여기저기를 훑었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 붉은 달은 커녕 하얀 달도 없다 그런데 달이 원래는 하얗던가, 노랗던가, 아니면 원래 살짝 붉은 색인가, 아무렴 어때 지금은 달을 찾는 게 먼저다 목에서 우둑 소리가 날 즈음 가로수 끝자락에 걸린 달을 찾았다 달이 이만치 내려온 줄도 모르고 저만치 올려다만 봤다 달은 여전히 붉었지만 그렇다고 화성만큼은 아니었다 화성만큼 멀리 있지도 않았다
수업일이 멀지 않았다 시적인 글을 쓰려고 했지만 사적인 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