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경영과 드라마 '아들과 딸'

by 카푸치노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의 '신경영 선언'이 있었다.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이 선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여성 인력의 활용을 정면으로 언급한 대목이다. 이건희 회장은 "여성 활용이 선진국의 척도"라며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삼성은 지금 여성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그 해 처음으로 삼성의 여성 공채가 시작되었다. 1957년 삼성그룹 공채가 시작된 이후 거의 35년 만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업 전략의 변화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사회의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던 여성들에게 '능력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그 해 여름, 나는 운 좋게도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삼성의 2박 3일 합숙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연수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커리큘럼은 희미하지만, 단 하나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진행한 '5분 스피치' 시간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아들과 딸>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서 잠깐 드라마에 대해서 설명하고 넘어가자. <아들과 딸>(1993, KBS)은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남아선호 사상을 정면으로 다룬 가족 드라마였다. 배경은 산업화가 진행되던 1970~80년대. 한 평범한 가정에서 아들은 귀하게, 딸은 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일상적으로 작동한다. 부모의 기대와 자원은 아들에게 집중되고, 딸들은 자연스럽게 희생과 양보를 학습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렸다.


아들과 딸 흑백.jpg


이란성쌍둥이로 태어난 아들 귀남(貴男, 최수종役)과 딸 후남(後男, 김희애役). 이름부터 '귀한 아들(귀남)'과 '다음엔 아들이길 바라는 마음(후남)'이었다. 후남은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로 어머니한테 차별받고 자란다. 둘이 같이 태어났음에도 생일날 귀남이는 잔칫상을 받아먹고, 후남은 부엌에서 그 음식을 해내야 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귀남이는 엄마 등에 업혀가고, 후남이는 걸어간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귀남이는 엄마가 사준 자전거를 타고, 후남이는 걸어 다닌다.


후남이는 가난한 살림과 성차별 때문에 고등학교에 가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우수한 성적 덕분에 장학생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후남이가 귀남이보다 성적 좋은 걸 칭찬하기는커녕 귀남이 기를 죽이고 앞길 막는다며 못마땅해한다.


이후 후남은 가출해 상경하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 작가로 등단하고, 교사가 되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해 성공한다. 그 소설의 제목이 바로 <아들과 딸>이다.


물론 드라마적 과장도 많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당시 만연했던 남아선호 사상 속에서 억압받아온 수많은 딸들의 마음을 정확히 건드렸다. 차별과 억압 속에서 자라온 후남이가 자신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은,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강한 대리 만족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 스피치에서 이 드라마를 이야기하며,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왔던 나 자신의 경험을 꺼냈다. 그리고 삼성이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우하려는 방향으로 변화하려 한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왔는지를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리에는 묘한 공명이 있었다. 같은 해, 같은 사회에서 한쪽에서는 대기업 총수가 “여성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선언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드라마 속 후남이가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억압받아온 삶을 증언하고 있었다. 삼성의 신경영과 <아들과 딸>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지만, 사실상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후남이들을, 너무 오래 당연하게 포기해 왔는가."


스피치가 끝난 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여러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저도 후남이었어요."

"제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내 얘기에 공감을 표하며 자신도 같은 처지였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살았지만, 그 시절 모두가 어느 정도는 '후남이'였다. 그날 우리가 느꼈던 연대감은 단순한 슬픔의 공유가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나중(後)’으로 밀려나는 존재가 아니라, 능력과 가능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 사회에 설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공명이었을 것이다.


1993년의 그 여름은, 그렇게 우리 앞에 새로운 기회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있었다.

이전 02화딸로 태어난 나, 사라져 버린 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