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by 카푸치노

1995년, 나는 바라던 대로 삼성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게다가 그해에는 남녀 간 임금 격차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그마저도 폐지되었다.


하지만 당시 사회의 지배적인 인식은 이러했다.
“여성은 결혼과 출산 문제로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고, 업무 성과도 남성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 내부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았다고 들었다. 회장의 강력한 지시로 대졸 여성을 채용하긴 했지만, 이들을 데려가려는 계열사나 부서가 거의 없어 인력관리위원회와 비서실이 반강제로 배치하다시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대졸 여사원을 향한 이런 회사의 인식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복장 문제에서도 드러났다.


입사 후 한 달간의 연수 프로그램이 있었다. 스무 명이 한 조였고, 그중 네 명이 여자였다. 연수 과정 중 부산에서 며칠간 머무는 일정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회사에서 지급한 옷을 입어야 했다. 셔츠 비슷한 블라우스에 바지 차림의 복장이었는데, 어느 날 숙소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 나이가 지긋한 남성 한 분이 우리 네 명을 보며 물었다.


“아가씨들은 어느 공장에서 왔어요?”


그랬다. 우리가 입은 옷은, 공장 노동자의 작업복처럼 보이는 차림이었다. 우리는 웃으며 대답을 피하고 그 상황을 넘겼지만, 그 복장이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더 문제는, 그 옷을 연수 기간에만 입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반도체 사업부로 배치받자, 그 복장은 일상이 되었다. 회사 정문 출입구 옆에는 개인 옷장이 있는 탈의실이 있었고, 출근하면 사복을 벗고 근무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남자들도 그랬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남자들에게는 위에 가볍게 걸칠 수 있는 점퍼가 지급되었는데,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규정은 아니었다. 근무복 착용은 여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회사는 그 근무복이 당시에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였던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곤 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남직원들 간에 회자되는 말이 있었다. '근무복을 입고도 이쁜 여자가 정말 예쁜 여자다.'


왜 여자들만 이 옷을 입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기존의 공장 여사원들이 이미 근무복을 입고 있는데, 대졸 여사원들만 복장 예외를 주면 고졸 여사원들이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근무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탈의실의 관리 상태 역시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청바지를 좋아하는 나는 당시로서는 꽤 고가의 청바지가 하나 있었다. 출근하면 청바지를 벗어 옷장에 넣고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뒤 옷장을 잠갔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하며 탈의실에 가보니 옷장 문이 열려 있었다. 윗옷은 그대로였지만, 청바지만 사라져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옷장 문을 잠그지 않았을까?


당시는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었다(물론 퇴근 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진 않았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던 나는 새벽 6시쯤 출근버스를 타기 위해 5시쯤 일어나야 했다. 입사 전에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터라 쉽지 않은 생활이었다. 출근버스에서는 거의 기절하듯 잠들었고,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동안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실수로 옷장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같은 청바지를 다시 사 입었다. 이번에는 졸린 와중에도 옷장 문을 잠그는 데 온 신경을 썼다. 그런데 몇 주쯤 지났을까.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옷장 문은 열려 있었고, 청바지는 또 사라졌다. 이번에는 분명 내 실수가 아니었다.


나는 총무과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탈의실 입구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기에, 영상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그 CCTV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총무과 직원과 함께 내 열쇠로 탈의실의 옷장들을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결론은 내 열쇠로 열 수 있는 옷장이 서너 개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열쇠로 열리는 내 옷장에서 자연스럽게 옷을 꺼내갔을 수도 있다. 물론 진실은 끝내 확인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총무과에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그 옷장을 이용할 수 없었다. 나는 윗도리만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하의는 사복을 그대로 입는 편법을 택했다. 부서 내부에서는 복장 불량을 지적하는 상사는 없었다. 하지만 퇴근길, X-ray 탐지기 옆에 나이 든 인사 담당자가 서 있을 때면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내 복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여사원, 왜 복장이 불량해?”


그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죄송한 척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하의를 갈아입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만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한 동기 여사원이 게시판에 복장 규정 개선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왜 여자들만 근무복을 입어야 하느냐, 이 규정을 폐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게시글을 올린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인사팀 담당자가 찾아왔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야.”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앞에 커다란 벽이 가로막혀 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녀 간 대우와 임금의 차별이 없다고 믿고 입사한 회사였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물론 “그깟 근무복 하나 가지고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복장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근무복에는 회사가 대졸 여성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라인 여사원들은 생산을 책임지는 핵심 인력이었고,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반면 숫자도 적고, 결혼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여겨지던 대졸 여사원들은 굳이 배려하거나 신경 쓸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규정상 평등을 표방했지만, 실제 조직문화는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 속에 묶여 있었다. “임금 평등”이라는 제도적 성취가 있었음에도, 여직원의 복장이나 태도 규정은 ‘관리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다. 제도는 앞서 가지만, 조직 문화는 뒤따르지 못하는 뼈아픈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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