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리는 나에게 연애 감정이 있나봐

by 카푸치노

“이 대리는 나에게 연애 감정이 있나 봐?”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식당 밖에 모여 서 있던 그 짧은 순간에 내 상사였던 과장이 던진 말이었다. 앞뒤 맥락도 없이 튀어나온 그 말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였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나는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기분은 마치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때 바로 받아치지 못하고 맞기만 했다는 생각에 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 그 상사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이 녀석아. 내가 과장이고 너는 내 부하 직원인데, 너는 왜 나한테 그렇게 고분고분하지 않냐?”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요지는 그것이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되물었다.

“부하 직원에게 ‘너 나한테 연애 감정이 있냐’고 말씀하시는 분께, 제가 도대체 어떤 존경의 태도를 보여야 하는 걸까요?”

그는 이 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회식 자리에서 미처 돌려주지 못했던 한 방을 늦게나마 되갚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는 어린 여직원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 1호였다. 내게는 그러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사한 갓 스물 즈음의 어린 여사원들에게는 일상적으로 추행에 가까운 행동을 했다고 한다. 면담을 하면서 어깨나 팔을 만지는 일이 잦았고, 그때마다 “과장님,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왜, 딸 같아서 그러는 건데.”였다고.


그러니 나는 그에게 고분고분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 태도가 불편했을 것이다. 그는 그 불편함을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자신을 좋아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상상으로 상황을 해석해버렸던 게 아닐까 싶다.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내 상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분명 내 고과권자였다. 말로라도 과장이 내게 한 대 ‘맞았다’고 느꼈다면, 그는 그 앙갚음을 하위고과로 되돌려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도 그 순간을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들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30년전 삼성에서는 오랫동안 성차별과 성적 추행이 ‘문제’라기보다 ‘일상’에 가까운 형태로 존재해왔다. 노골적인 폭력보다 더 흔했던 것은, 문제로 인식되지조차 않던 말과 행동들이었다.


내 여자 동기 중 한 명은 걸음걸이가 좀 남달랐는데, 그 팀의 남자 직원들은 그녀에게 일상적으로 언어 폭력을 가했다.

“너는 걸음걸이가 그래가지고 시집이나 갈 수 있겠냐?”
“차밍스쿨이라도 가서 걸음걸이를 고쳐야 하는 거 아니냐?”

그녀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말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를 말하곤 한다.


업무 능력과 무관한 '여성성'에 대한 품평이 조직 내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었다. 그저 가벼운 농담이라며 던진 한마디가, 당사자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고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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