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조직문화가 변하기 시작했다

by 카푸치노

이전 글들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과거 삼성 반도체 사업부는 여성들이 일하기에 결코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입사 당시에는 나라 전체적으로 토요일 근무가 당연하던 시절이었는데, 거기에 더해 격주로 일요일까지 출근해야 했다. 신경영의 기치 아래 ‘7시 출근, 4시 퇴근’이 내걸렸지만, 실제로는 출근만 빨라졌을 뿐 밤 11시가 되어서야 퇴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조직 문화는 더욱 경직되어 있었다. 위계적이고 강압적인 회식 문화가 일상이었고, 임원들은 조직 내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며 폭언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일반인의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 성향 비율이 약 1%인 반면, 교도소 등 범죄 집단에서는 15~20%, 기업 임원 집단에서는 최대 21%에 달한다는 기사를 읽고 동료들과 격하게 공감하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들을 제어하지 못했다. 사무실과 회식 자리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성추행 또한 적지 않았다.


이런 삼성이 변화의 변곡점을 맞이한 것은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2012년 무렵이었다. IMF 시기에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이 강제되었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권오현 대표 취임 이후에는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내부 혁신이 본격화되었다. 2012년 애플과의 특허 전쟁을 치르면서, 그동안 고수하던 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 first mover로 전환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졌다. ‘진정한 초일류가 되려면 조직 문화부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커졌다. 창의성과 자율성을 억누르는 문화로는 더 이상 세계 시장에서 앞서갈 수 없다는 자각이었다.


변화는 의외로 작은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를 늘 불편하게 했던 근무복 착용 제도는 IMF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내게 “연애 감정이 있느냐”는 황당한 질문을 던지던 상사 역시 그 무렵 회사를 떠났다. 1998년 명예퇴직 신청 기간, 마지막 날까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를 지키던 그가 돌연 사직을 결심하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평소 문제로 지적되던 인물들에게 회사가 퇴직을 종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이들이 서서히 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율 출퇴근제는 워킹맘이던 내게 무엇보다 큰 변화였다. 어린 아들을 회사 어린이집에 맡기던 시절, 아침은 늘 전쟁과도 같았다. 내 출근 시간에 맞춰 잠이 덜 깬 아이를 씻기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일은 늘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특히 장이 예민했던 아들은 내가 사무실로 가려는 순간이면 종종 “엄마, 똥 마려워”라고 말하곤 했다. 결국 다시 화장실로 가 아이 옆을 지키며 출근 시간을 걱정해야 했다. 지각할까 봐 속이 타들어가던 그 순간들. 그러나 자율 출퇴근제가 도입되면서 시간 선택의 권한이 내게 생겼고, 그 작은 자율성은 삶의 균형을 지켜주는 큰 힘이 되었다.


2012년경 도입된 ‘119 캠페인’ 역시 반가운 혁신이었다. ‘회식은 한 장소에서, 한 종류의 술만 마시고, 밤 9시 전에 끝내자'는 규칙이었다. 9시 이후 영수증은 정산되지 않았기에, 회식은 반드시 9시 전에 마무리해야 했다. 물론 2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것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었다.

회식 문화의 변화는 나에게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와 억지로 권하는 술이 부담이었던 내게, 가볍게 맥주 한두 잔을 곁들이는 회식은 비로소 즐거운 자리가 되었다. ‘이렇게 간단한 변화를 왜 그토록 오래 미뤄왔을까’ 하는 허탈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SCI(Samsung Culture Index)는 임직원의 근무 만족도와 조직 건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2012년 도입 이후 ‘몰입, 협업, 자부심’ 같은 영역을 중심으로 조직문화를 진단해 왔다. 이 지표는 부서장 평가에 직접 반영되었다. 점수가 낮으면 관리 역량에 대한 피드백과 개선 대책을 요구받았기에, 부서장들은 비로소 부하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회의 시간 중의 폭언도 많이 감소했다. 물론 익명 조사임에도 누가 점수를 낮게 줬는지 찾아내려는 구시대적 부서장들로 인한 부작용도 있긴 했지만, 조직의 중심추가 ‘사람’과 ‘문화’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몇 년 후에는 성희롱·성추행에 대해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과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도입되며 징계 수위가 대폭 강화되었다. 과거에는 일회성이라는 이유로 견책이나 감봉에 그치던 사안도 즉시 해고가 가능해졌다. 성윤리 교육 역시 매년 필수 과정으로 정착되었다. 특히 판단 기준이 가해자의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체감에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외국 유명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유능한 동료 한 명도 회식 자리에서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다음 날 곧바로 회사를 떠났다. 후배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직원도, 도박에 빠져 동료들에게 돈을 빌리던 직원도 더 이상 조직에 남지 못했다.


회사는 더 이상 '성과만 내면 모든 것이 용인된다'는 구시대적 논리에 기대지 않았다. 아무리 유능해도 조직의 가치를 훼손하면 설 자리가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제도가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지는 못한다. 사람은 여전히 실수하고 조직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심축이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권력에서 문화로, 성과에서 지속 가능성으로, 그리고 침묵에서 문제 제기로.


돌이켜보면 내가 30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회사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았던 회사가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때로는 상처받고 숨이 막히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그 변화의 수혜자이자 증인이 되었다.


조직 문화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불편함이 축적되고, 그 목소리가 위기를 만나 충돌할 때 비로소 움직인다. 그리고 그 모진 불편함을 견뎌낸 사람들의 시간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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