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팔자는 두레박 팔자

by 카푸치노

어릴 적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이면서, 내가 가장 싫어하던 말이 있었다.

“여자 팔자는 두레박 팔자여.”


"여자는 공부 잘해봐야 소용없다"는 말에 뒤이어 자주 등장하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명치끝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두레박이라니. 우물가에 매달려 주인이 줄을 당기면 올라가고, 놓으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그 수동적인 물건. 남편이 누구냐에 따라 인생의 높낮이가 결정된다는 그 ‘체념의 정서’가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 인생의 줄이 왜 타인의 손에 쥐어져야 한단 말인가. 나는 누군가의 부속물이 아닌, 오롯이 내 이름 석 자로 땅을 딛고 서고 싶었다.


삼십 년 전,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의 문을 열며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레박 줄'을 내 손으로 거머쥐는 유일한 방법, 즉 경제적 자립이었다. 남의 손에 들린 줄에 의해 우물 위아래를 오가는 위태로운 인생이 아니라, 내 발로 서기 위해서는 나만의 경제적 토대가 절실했다.


버지니아 울프는《자기만의 방》에서 여자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가 말한 500파운드는 단순히 사치를 위한 비용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의 값'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직장 생활은 그 자유의 값을 지불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교회에서 내 세계관을 뒤흔든 성경 구절을 만났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마음에 의심만 없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그 말이 내게는 구원처럼 들렸다. 당시 나는 여자로 태어난 내 처지가 너무도 싫었기에, 나를 남자로 바꿔달라는 기도를 시작했다. 근거는 없지만 하루 이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정성을 들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100일 동안 꾸준히 기도해 보기로 했다.

“하나님, 제발 저를 남자로 바꿔주십시오.”


나는 매일 밤마다 이불속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물론 100일을 완벽히 채우지 못했다. 때로는 깜빡 잊어서, 때로는 잠이 쏟아져서 기도를 빼먹었고, 마음속 깊은 곳의 의심을 완전히 걷어내지도 못했다. 대망의 100일째 아침,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몸을 더듬어 보았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은 생겨나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나였다.


내 정성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마음에 의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결국 나는 남자로 변하지 못했고, 지금껏 여자로 살아오고 있다.


엄마의 아들 편애를 온몸으로 저항하며, '여자'라는 이름표에 붙은 수동성과 차별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그 작은 아이는 이제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에 조금의 불만도 없다. 누군가에 의해 들려 올려지는 두레박이 아니라, 내 인생이라는 우물에서 스스로 물을 길어 올리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까. 시대가 변해 여성을 억압하던 낡은 관습들이 마모된 덕분이기도 하고, 30년간 몸담았던 회사가 제도를 바꿔가며 여성의 자리를 넓혀온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을 버텨내며 스스로 경제적 토대를 마련한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회사를 마무리하며 돌아보는 나의 30년은, ‘여자’라는 자각에 머물러 있던 시간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자립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를 괴롭혔던 엄마의 그 말은 역설적이게도 힘겨웠던 직장 생활을 버터게 한 가장 큰 절박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지금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남자로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그 소녀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남자로 변하지는 못했어도, 나름대로 멋진 인생이었어"라고 환하게 웃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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