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가장 난감한 순간은 회식 자리였다. 술을 좋아하지도, 잘 마시지도 못하는 내게 회식은 늘 부담이었다. 마시지 않겠다고 말해도 “한 잔쯤은 괜찮지 않냐”며 권하는 선배들이 있었고, 어쩌다 한 잔을 마시면 다음 사람이 또 잔을 들이밀었다. 거절하면 왜 내 잔만 거절하느냐는 말이 돌아왔다.
그러다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일부러 차를 끌고 나갔다. 차를 가져왔다고 하면 그래도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았다. 대리운전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고, 그때의 나에겐 꽤 괜찮은 해결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서 전체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기흥 근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차를 몰고 회식 자리에 갔다.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려 운전대를 잡았는데, 부서장이 차를 세웠다.
“어디까지 가지?”
“서울로 가는데요.”
“서울? 그럼 이 사람 좀 태워다 주고 가.”
부서장은 내가 혼자 운전하던 차에 술에 취한 남직원을 내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태웠다.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사에게 ‘싫습니다’라고 말할 용기도, 술 취한 그를 억지로 태워야 한다는 억울함을 표현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술 취한 사람을 태우고 운전을 시작했다. 같은 부서 사람이었지만 부서 규모가 꽤 컸기에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안다고 했다. 여자 직원이 몇 되지 않았으니 그랬을게다. 집이 어디냐고 묻자 용인 어디라고 했다. 나는 운전을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초보였고,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었다. 술 취한 사람의 안내를 받아 가본 적 없는 용인까지 돌아서 가며 낯선 길을 헤매야 했다.
그렇게 그의 집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그는 내가 궁금해한 적도 없는데 회식 자리에서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를 굳이 확인시켜 주고 떠났다.
그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힘들었다. 한겨울이었고, 길도 익숙하지 않아 여기저기 헤맸다. 차 안에는 그가 남기고 간 토사물 냄새가 진동해 창문을 닫을 수도 없었다. 밤늦게 겨우 집에 도착했고, 다행히 근처에 세차장이 있어 그날 밤 그의 흔적을 씻어낼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몰랐지만, 그는 나를 안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 그는 미안했다는 연락조차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음 날이 되자 그의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기억났다면 마주칠 때마다 불쾌한 기억이 되살아났을 테니까.
하지만 여자 혼자 운전하는 차에 술 취한 남직원을 태워 보낸 부서장의 판단만큼은 지금까지도 쉽게 용서되지 않는다.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던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날을 떠올려보면, 그날 밤의 기억이 유독 씁쓸하게 남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30여년전의 한국 사회의 회식 문화가 가진 고질적인 병폐가 응축된 장면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회식은 오랫동안 ‘업무의 연장’이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되어 왔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은 업무가 아니라, 업무를 가장한 ‘감정 노동’이자 ‘개인의 시간과 영역에 대한 침해’였다. 상사가 권하는 술을 거절하면 조직에 융화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 아래 개인의 취향이나 주량, 심지어 귀가 후의 일정도 무시되기 일쑤였다.
가장 큰 문제는 술에 대한 지나친 관대함이다. 내가 겪은 일처럼, 술에 취해 타인에게 명백한 피해를 주었음에도 "술 마셔서 그랬다"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게 용서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다음 날, 가해자는 기억이 안 난다는 핑계로 상황을 모면하고, 피해자는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불쾌함을 삼켜야만 했다. 사과 한마디 없던 그 직원 역시, 아마도 '술자리에서의 실수'쯤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을 수도 있다. 이것은 명백한 폭력이지만, 회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 폭력은 '에피소드'로 둔갑한다.
또한, 회식 자리는 위계질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부서장이 내 차를 마치 공용 셔틀버스처럼 취급하며 취객을 태우라고 지시했던 것처럼, 상급자는 하급자의 사적인 영역(자동차, 시간, 감정)을 마음대로 침범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곤 했다. 진정한 단합은 서로를 존중하는 데서 오지만, 강요된 술자리와 억지 텐션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단합이 아니라 복종의 확인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