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 시간에 왜 여기 계세요?"
평일 낮, 아파트 산책로에서 만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놀라 물었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위인 회사 선배였다. 회사에서 오가다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친분이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평일 낮이면 회사에 있을 시간인데, 집 앞에서 만나다 보니 놀라서 물은 것이다.
"병가 중이에요. 허리 디스크로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지금 회복 중이에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도 병가 중이야. 나는... 난소암이야. 다시 회사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나는 그녀의 답변에 놀라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였음에도 그 자리에서 그녀를 껴안고 울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시간이 될 때 같이 산책이나 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 후로 우리는 가끔 만나 함께 점심을 먹거나 같이 걸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녀는 단단하고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도 일을 잘하기로 유명했고, 회사에 여성 임원이 없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임원이 될 사람으로 그녀를 떠올리곤 했다.
그녀는 많이 바빴다. 대형 고객사 담당을 맡아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고, 몸에 이상 신호가 있었지만 병원에 갈 시간을 미뤘다고 했다.
"그때 일찍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말 뒤에는 분명 후회가 묻어 있었다. 아프면서도 그녀는 다시 일이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는지 말끝을 흐리곤 했다.
그 몇 달 후 나는 병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고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몇 년 뒤 회사도 떠나야 했다. 대신 그녀는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고, 성경 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왜 이제야 알았는지 모르겠어. 너무 좋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전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병과 싸우는 시간 속에서도, 그녀는 다른 의미의 삶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항암 치료를 견디며 몇 년을 버텼지만, 결국 암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멍했다. 아파트 산책로에서 처음 번호를 교환하며 같이 건강해지자고 약속했던 그날의 공기가 떠올랐다. 그녀는 누구보다 뜨겁게 일했고, 아픔 속에서도 신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하며 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남긴 빈자리를 마주하며, 나는 ‘열정’이나 ‘성취’보다 앞서야 했던 한 단어를 뼈아프게 되새긴다. 바로 ‘건강’이다.
우리는 흔히 앞만 보고 달리느라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무시하곤 한다.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혹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소모하는 것을 훈장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무너지면 내가 이룬 모든 성취도, 사랑하는 이들과의 내일도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만다.
그녀는 내게 가장 간절한 유언과도 같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나를 돌보는 일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내 삶과 주변을 지키기 위한 가장 숭고한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가끔 나는 그녀와 함께 걷던 그 산책로를 걷는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녀를 추억하며,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거창한 운동이나 보약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 건강을 돌보는 마음가짐이다. 그것이야말로 먼저 떠난 그녀가 남겨진 사람들에게 가장 간절히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