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았지만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절친한 입사 동기 한 명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늘 "내 목표는 임원이 되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회사의 쟁쟁한 엘리트들에 비하면 그의 학벌은 평범했고, 업무 능력이 유난히 뛰어나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이었다. ‘노력만으로 저 높은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방향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임원이 되겠다”는 말을 단순한 바람으로 두지 않았다. 그 목표에 닿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씩 쪼개어 고민했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집요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 자리에 도달했다.
그를 보며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구체적인 목표는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사람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게 만든다는 것을. 목표가 있는 사람은 같은 하루를 살아도 다르게 움직인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분명해지고, 시간과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는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방향이 생기고, 그 방향이 쌓여 결국 전혀 다른 궤적을 만든다.
돌아보면 나의 직장 생활은 설계도 없는 건축과 같았다. 성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표가 없었던 탓에 나의 에너지는 늘 사방으로 흩어졌다. 열심히는 살았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한동안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던 시절, 삶은 그저 ‘버텨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때의 나에게 미래를 설계하라는 말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루를 무사히 끝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자라고, 삶의 파도가 잦아들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방향 없이 쌓인 시간의 끝이 어떤 모습인지. 그 풍경은 생각보다 쓸쓸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디에도 도착해 있지 않았다.
직장 생활은 우리를 쉽게 착각하게 만든다. 바쁘게 일하고, 책임을 다하고, 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목적지 없는 성실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공허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멈춰야 한다. 노를 젓는 일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어 방향을 확인해야 한다. 그 목표가 거창할 필요는 없다. 임원이 되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10년 후의 삶의 모습일 수도 있고, 회사 밖에서의 나의 이름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좋다. 다만 하나는 분명해야 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사람인가.
열심히 노를 저었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곳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은 채 저은 노는, 결국 나를 아무 데도 데려다주지 않는다. 돌아보면 내가 지난 30년 동안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더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은 채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야, 나는 조금 늦었지만 나만의 목적지를 다시 그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