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개 계단이 만든 삶의 변화

운동은 근육이 아니라 '정신적 골조'를 세우는 일

by 카푸치노

어릴 때부터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섯 명이 달리는 달리기 시합에서도 내 자리는 늘 끄트머리인 5등 언저리였다. 성적에 들어가는 수행평가가 아니라면 굳이 기를 쓰고 달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은연중에 운동을 낮게 보는 마음도 있었다. 정신은 고결한 주인이요, 몸은 그저 그 정신을 담아 나르는 투박한 그릇일 뿐이라 여겼다. 그릇이 깨지기 전까지는, 그릇을 닦고 조이는 수고로움이 얼마나 숭고한 지혜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마흔 초반, 결국 사달이 났다. 디스크가 터졌고 두 번의 수술을 받으며 몇 달간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그제야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 몸을 묵묵히 떠받들고 있던 뼈와 근육, 힘줄들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고 있었는지 처음으로 인지하게 됐다.


그전까지 내게 몸이란 그저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뚱뚱한지 날씬한지, 예쁜지 아닌지가 평가의 전부였다. 그러나 수술대를 거치며 기준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 몸은 더 이상 꾸미고 전시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구조였다. 육체가 온전하지 못할 때 삶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지, 그 당연한 진리를 마흔이 넘어서야 배운 내가 참으로 어리석게 느껴졌다.


하지만 재활을 위해 등 떠밀리듯 시작한 운동은 고역이었다. 거금을 들여 PT를 등록했지만, 반복되는 단순한 동작들은 지루함만 더했다. 결국 20회 중 5회를 남겨두고 도망치듯 그만두었다. 매일 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운동선수들이 경외심마저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할 만했던 건 걷기였다. 점심시간 회사 앞마당을 30분 산책하며 대단한 운동이라도 하는 양 자부했고, 가끔 집까지 50분을 걸어 퇴근할 때면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운동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결정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갱년기라는 거대한 파도였다. 호르몬의 변화로 몸무게는 급격히 늘었고, 지독한 불면증이 시작됐다. 사춘기 아들과의 갈등까지 겹치자 삶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해졌다. 절박한 마음에 다이어트 약에 의존해보려 했지만, 카페인에 민감한 내게 약은 손 떨림과 더 지독한 불면이라는 부작용만 남겼다. 결국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파트 30층 계단 오르기'였다. 처음에는 8층만 올라가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꼭대기에 닿기까지 네 번은 쉬어야 했다. 평상시 80이던 심박수는 190까지 치솟았다. 입안은 타들어 가고 심장은 터질 듯 요동쳤다. 7월의 찜통더위 속에서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에도 거친 숨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함의 힘은 무서웠다. 2주가 지나자 쉬지 않고 단숨에 30층까지 오를 수 있게 되었다. 190이던 심박수도 150 정도로 안정되었다. 물론 매일 465개의 계단을 마주하는 일은 매 순간 유혹이었다. 12층 집 앞에 멈춰 서서 그냥 들어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던 건, 몸이 보내오는 예상치 못한 선물들 때문이었다.


가장 반가운 변화는 허리 통증의 감소였다. 한 달쯤 지났을까, 늘 상비약처럼 챙기던 진통제를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30층을 완등할 때마다 나만의 '특별한 능력'이 생긴 듯한 성취감도 차올랐다. 고작 6층 사무실만 걸어 올라가도 세월을 탓하며 숨을 몰아쉬던 내가, 이제는 30층을 가볍게 정복한다니. 달라진 몸이 주는 신호는 경이롭고 뿌듯했다.


주변에서는 안색이 밝아졌다는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꾸준한 식단 관리와 아침마다 땀으로 노폐물을 쏟아낸 덕분인지 피부 톤도 한결 맑아졌다. 평생 피부 좋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갱년기에 이르러서야 인생 첫 피부 칭찬을 듣게 된 것이다.


변화의 파동은 삶 전체로 번졌다. 지겹게만 느껴지던 PT를 다시 시작했고, 계단 오르기를 하루 세 번으로 늘리기도 했다. 운동 후 가장 달라진 것은 삶을 대하는 열의다. 소파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시간이 줄어들었고, 무언가에 새로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샘솟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갱년기라는 거친 파도 앞에서 나는 배웠다. 마음의 병은 때로 마음이 아닌 몸으로 고쳐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많은 현대인이 무기력과 우울의 늪에 빠져들 때,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처방해야 할 것은 화려한 위로의 말보다 땀 흘리며 오를 수 있는 튼튼한 계단 하나가 아닐까.


이제야 깨닫는다. 운동은 단순히 칼로리를 태우는 연소가 아니라, 내 삶을 지탱하는 '정신적 골조'를 세우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운동을 투박한 신체 활동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몸을 정교하게 다스려 마음의 평화를 일구어내는 사람임을, 매일 아침 465개의 계단을 오르며 처절하게 배우고 있다.


가끔은 아쉬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왜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20대부터 꾸준히 몸을 돌봤다면 내 삶의 밀도는 훨씬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운동을 외면하며 보낸 시간들이 못내 안타깝다. 그 시절의 나에게, 운동은 근육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 진심으로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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