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해외 마라톤
내가 본격적으로 달리기에 미치게 된 계기는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우선 그 하나는 학업과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달리기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 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해외 유명 마라톤 대회를 참가한 경험 때문이다.
마라톤은 42.195km 거리의 도로를 달리는, 육상 여러 종목 중 하나이다.
우선 나는 러너이자, 마라토너이다. ‘마라톤’이 아닌 일반 달리기만 하면서는 이정도로 달리기를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을 지 모른다. 이쯤되면 달리기나 마라톤이나 똑같은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이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SNS에서 #마라톤 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짧은 거리의 달리기 대회를 달리고 ‘나 마라톤 뛰었어!’라는 글이 많이 보인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 = 마라톤 이라고 생각하는데, 달리기 대회에는 1mile부터 시작하여, 5km, 10km, 21km 등 다양한 거리의 종목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42.195km의 거리를 달리는 종목만을 공식적으로 marathon이라고 하고, 나머지는 running race라고 칭하는 것이 정석이다. (21km 종목은 마라톤의 절반 거리를 달려 half-marathon이라고도 부른다) 일반 러닝을 차별하는 것이냐(?)고 한다면 그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42km남짓 거리의 달리기를 비로소 ‘마라톤’이라는 종목으로 정의한다 볼 수 있다. 마라톤이 올림픽의 꽃이자 메인 종목인 이유가 있다.
마라톤은 러너들의 동기부여이자, 목표이자 인생 그 자체이다.
국내에서도 계절별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매주 5~10개의 달리기 대회가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3대 마라톤 대회를 나가 완주하는 것이 국내 러너들이 도전하는 가장 높은 단계이자 목표가 아닐까 싶다. 봄에 열리는 JTBC 서울 마라톤(구, 중앙마라톤), 서울마라톤(구, 동아마라톤) 그리고 가을에 열리는 춘천마라톤 이 3대 마라톤은 나를 비롯해 많은 러너들이 새해 목표와 일정을 세울 때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는 이벤트이다.
목표하는 대회 일자에 맞춰 목표 기록을 설정하고 그것에 걸맞은 훈련량과 훈련 일정을 기획하는데, 나는 결혼식도 봄에 열리는 첫 메인 대회와 겹치지 않도록 날짜를 미리 앞당겨 올렸다. 나의 많은 러너 하객들을 배려한 것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 자리를 빌어 나의 아내와 달리기를 하지 않는 장인 장모님께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렇듯 러너의 시계는 마라톤 대회에 맞춰 돌아간다. 그만큼 대회 참가 자체가 러너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며 그 결과에 따라 1년 농사 즉, 그 해의 달리기 목표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국내 대회를 참여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해외 대회에도 눈을 돌리게 되는데, 내가 가장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진 계기이기도 하다.
해외 대회 중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권위 있는 6개의 마라톤 대회를 꼽아 ‘세계 6대 마라톤 대회’로 부르는데, 몇몇 대회는 대회 참여를 위해서도 일정 기록과 자격이 되어야 뛸 수 있다.
마라톤이란 내 땅 한국에서 완주하기도 벅찬데, 자격 요건까지 요구하는 해외까지 가서 달려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해외여행 달리는 이유
1. 해외여행이지만 해외여행과 다르다. 달리며 보는 도시는 택시에서 버스에서 느낄수없는 느낌을 준다.
2. 해외대회는 축제. 각종 러닝이벤트가 열리고 도시 전체가 마라토너를 반기는 분위기. 식당이 할인을 하거나 마라토너는 대중교통이 무료인 등, 환영분위기.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나를 반겨준다.
3. 여행과 다르게 마라톤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처음 보는 현지인들과 깊은 유대감을 공유한다.
4. 국내와 다른 마라톤현장 분위기, 환호. 달리면서 느끼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해외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서는 보통 1년 전에 참가 신청을 받는데, 뉴욕마라톤의 경우 추첨을 통해 참가자를 선정하고, 신청 시에 등록했던 신용카드의 번호로 추첨 발표일에 결제가 완료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뉴욕마라톤이 첫 해외 대회라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신청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약 2달쯤 후. 새벽에 문자 알람이 울렸다. 한 쪽 눈을 게슴츠레 뜨고 확인한 메세지는 ‘결제 완료’. 나의 20대 막바지, 첫 해외 마라톤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랴부랴 비행기, 숙소 예약도 마쳤고, 50:1의 확률을 뚫고 생애 첫 해외 마라톤 참가권을 얻었으니 이제 나에게 남은 건 훈련뿐이었다. 함께 추첨된 지인들과 D-day를 정해 놓고 함께 달리고, 대회 일정도 조율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대회 날을 기다렸다.
대회 전 1주일간은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대회의 골인 지점인 Central park에는 참가하는 전 세계 국가들의 국기가 펄럭이고, 임시 건물에서는 유명 선수들의 인터뷰, 이벤트들이 펼쳐진다. 국제적인 마라톤 대회인 만큼 세계 각지에서 온 선수와 가족들을 위해 대회 전날에는5km의 짧은 패밀리 러닝 레이스도 열리고, 마치 올림픽 개막식처럼 참가 국가의 일반 러너들이 각 나라의 국기를 들고, 퍼레이드도 펼친다. 나도 이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시합 4일 전에 현지에 도착하여 시차도 적응하고, 각종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특히, 나를 비롯한 지인 6명의 친구들과 한국을 대표하여 태극기를 들고 퍼레이드에 참여한 건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다양한 나라의 특색을 엿봤던 그 퍼레이드에서 제일 기억나는 국가는 브라질이었는데, 참가자들이 삼바춤을 추며,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시끄럽게 등장한 덕에 퍼레이드 전체가 들썩였다.. 비록 우리나라는 인원도 규모도 작았지만,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축제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한편으론 이렇게 한국인이 적게 참여한 대회에 선발된 것에 자랑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마라톤 대회를 위해 선수들은‘카보로딩’ 이라는 영양식단을 진행한다. 레이스 당일 짧은 시간에 몇 시간 내내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대회 약 일주일 전부터 몸에 영양소(주로 탄수화물)를 축적시키는 식단인데 엘리트 마라토너들은 과학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시하지만, 사실 나 같은 아마추어 러너들은 대회 직전 카보로딩을 이유로 맛있는 밀가루 음식들을 잔뜩 먹을 최고의 핑계다.. 여기는 미국! 햄버거와 감자튀김의 나라인 것이다. 어렸을 적 보던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뉴욕의 경찰들이 순찰을 하며 햄버거를 맛있게 먹던 모습이 남아 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뉴욕에서 가장 맛있다는 햄버거 맛집을 찾아다니며 하루에 5끼를 햄버거를 먹으며 대회 날을 기다렸다. 이것 또한 해외 마라톤의 묘미니까.
11월의 뉴욕은 제법 쌀쌀했다. 쌀쌀한 계절에 열리는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대회 시작 시간까지 얼마나 체온을 잘 유지하는 가이다. 국내외 대부분의 마라톤 대회는 짐 보관 서비스를 운영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며 6만 명이 참여하는 뉴욕 마라톤의 경우에는 더더욱이나 ‘알아서 와서 알아서 가라’는 시스템을 선호(이런 것 또한 미국스럽다.) 해서 그런지, 알아서 각자의 체온을 유지하여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버려도 되는 옷’을 입고 나온다. 특히, 뉴욕 마라톤은 출발지가 staten island라는 맨해튼 시내에서도 차로 30분을 이동해야 하는 곳에 위치하여 있기 때문에, 새벽 4~5시쯤부터 집 밖을 나서 3시간 정도를 밖에서 대기해야 한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새벽어둠 속에서 거적대기(?) 같은 옷을 입고 대회 측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러 나오는 수많은 참가자들의 행렬을 보면 흡사 재난 영화 속에서의 대피소와 같은 느낌도 받았다. 다만 영화와 다른 점은 참가자들의 얼굴엔 피곤보단 설렘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출발선 근처 대기 구역에서는 이미 도착한 러너들이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1회용 이불을 덮고 잔디밭 위에 누워 있기도 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기도 하고 있었다. 나는 대회 측에서 준비해 준 따뜻한 커피와 도넛을 먹으며 레이스 분위기에 조금씩 적응하였다.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걸 보니 곧 레이스가 시작하나 보다. 주변의 러너들이 부스럭부스럭 입고 있던 옷을 벗기 시작한다. 드디어 출발 총성과 함께 우르르 러너들이 각자의 목표 페이스에 맞춰 달리기 시작한다. 러너들이 동시에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주로 바깥쪽으로 던지는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달리는 러너들 하늘 위로 수천 벌의 옷들이 허공을 가른다. (이 옷들은 대회 측에서 수거하여 노숙자 또는 고아원에 기증한다고 하니 의미도 깊다.)
출발선은 Staten Island와 Brooklyn을 연결하는 Verrazano-Narrows Bridge의 남단에 위치하였는데, 이 다리는 상판과 하판으로 구분되어 있는 즉 2개의 층으로 구성된 다리이기에, 상/하층으로 구분된 출발선에서 수만 명의 러너들이 동시에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4km에 달하는 현수교 좌우로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어, 다리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경험은 참 새로웠다. 나는 하층에서 출발하여 달리기 시작했는데, 수만 명의 러너들이 지면을 박차며 내는 발걸음 소리가 상층부에 반사되어 웅장하게 울리며, 마치 중세 시대 기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7km를 지났을까 서서히 도시와 가까워지면서 아침부터 응원 나온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족을 응원하는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은 단지 가족만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러너 모두를 응원하고 있었다. 동네 록 밴드와 학교 브라스밴드가 거리 곳곳에서 신나는 비트에 맞춰 연주를 하고 있었고, 길가에 빈 공간 없이 꽉 들어찬 응원 인파들의 휘파람 소리, 친구를 부르는 소리, 응원하는 외침이 가득 차서 달리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래서 큰 대회를 나오는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어서 걷고 싶어도 이내 다시 달릴 수밖에 없도록 응원하는 시민들이 러너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뉴욕 마라톤은 건너야 할 다리가 많은 것으로 악명 높다. 코스 중에는 총 6개의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다리가 많다는 것은 기록에 악영향을 끼친다. 왜냐하면, 다리가 지어질 때 구조적으로 다리의 중심부가 가장 높게 건설되는데, 이것은 마치 하나의 오르막을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좌우로 뻥 뚫려 있기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불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 내내 꽉 들어차 있는 응원 인파를 지나치다 보니 오히려 달리는 페이스가 예상보다 더 빨라졌다.
Brooklyn – Queens – Bronx를 차례로 거쳐 최종 골인지가 있는 Manhattan에 입성한다. 32km 지점을 지났으니 이제 10km 정도만 더 가면 골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마라톤은 32km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한다. 거리로는 단순히 1/4만 남았다고 볼 수 있지만, 30km를 쉼 없이 달린 몸은 이쯤부터 여러 부위에서 고통이 찾아온다. 두 다리는 무겁고, 쥐가 올라올 것만 같다. 목표하던 달리기 페이스도 조금 떨어지고, 배도 고프다. 지금까지는 즐거움과 설렘으로 달려왔지만 이제부터는 내 호흡과 몸에 집중하며 정신줄을 꽉 잡아야 한다.
Manhattan에는 이전의 다른 지역보다도 훨씬 많은 응원 인파가 도로가로 나와서 연신 파이팅! 을 외쳐줬지만, 사실 풍경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다리를 움직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짜 내고 있었다. 출발부터 함께 출발한 지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비슷한 페이스로 같이 달려왔는데, 도착 2km 정도를 남기고 그 사람이 갑자기 앞에서 인상을 팍 쓰며 주저앉는다. 다리에 쥐가 난 것 같았다. 나더러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라고 손짓한다. 나 또한, 조금만 페이스를 줄이면 쥐가 날 것 같아서, 가던 페이스를 유지하여 달려 나갔다.
200m, 100m… 골인.
100m 단위로 서 있는 피켓들을 보며 카운트다운을 하듯 골인점에 들어왔다. 뒤를 돌아보니, 쥐가 났던 지인도 마지막에 있는 힘을 쥐어짰는지 바로 뒤이어 들어왔다.
3:17:35
손목에 찼던 GPS 시계의 종료 버튼을 누르고 지인과 하이파이브를 힘차게 나눴다. ‘해냈다!’
첫 해외 마라톤이었던 만큼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잡았던 목표치보다도 훨씬 웃돈 좋은 기록도 기록이지만, 무사히 내 두 다리로 쉬지 않고 달려 완주해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걸을까?’ ‘조금 속도를 늦출까?’ 수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뿌리치고 달려온 내가 기특했다.
‘Congraturation! You did it!’을 외치며 자원봉사자들이 건네주는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뉴욕의 상징인 사과를 받아 들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기분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체온 유지를 위해 나눠주는 판초 우의를 두른 나는 마치 뉴욕을 정복한 장수처럼 기세 등등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첫 경험이라 강렬했던 것일까? 그 이후로 도쿄, 바르셀로나, 베를린, 시카고 등 여러 해외 마라톤을 달렸고, 각 대회마다 이색적인 풍경에서 달리며 즐거운 추억을 쌓아왔지만, 그 중에 최고의 마라톤 대회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앉고 뉴욕 마라톤을 꼽는다. 달려온 코스 중간중간의 디테일한 것 하나하나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 뉴욕을 방문한 사람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그 도시를 추억하겠지만, 나는 나의 두 발로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달리며 오감으로 그 도시를 추억하고 있다. 이것이 해외 마라톤을 참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2015년 이후로 지금까지 매년 뉴욕 마라톤 추첨에 응모하고 있지만, 그 이후로 연거푸 낙첨되고 있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앞으로도 매년 추첨에 응모할 예정이다. 다시 뉴욕의 Central park를 가로지르는 그날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