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 그래서 봄

텃밭의 속사정 ① 완두콩

by 황반장

유독 긴 겨울이었다. 그래도 봄을 처음 알리는 전령은 꽃이다. 집을 나서는데 아파트 화단이며 통행로에 여기저기 심어진 매화, 산수유 가지에 푸른 기운이 돌고 조금씩 물이 올랐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작년에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올해에는 그래도 계절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고 다시 한 해 농사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생기고 있다.


매년 새봄이면 텃밭에 심을 씨앗을 고르며 농사 계획을 세워보게 되는데 그중 빠지지 않는 작물이 완두콩이다. 가장 먼저 심는 것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유난히 맑은 초록색과 동글동글한 콩알, 그리고 풋풋한 꼬투리의 향까지, 겨우내 얼어 있던 마음을 녹여주는 것 같아 봄이 되면 완두콩 심을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특히나 아직은 차가울 것 같은 땅을 뚫고 나와 지지대를 붙잡고 서는 여린 넝쿨손을 보고 있으면 생명은 얼마나 위대한가!라는 다소 상투적인 멘트를 떠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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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완두콩에 대한 이런 애정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부모님이 농부였기 때문에 농사에 익숙하게 살아왔지만 우리 집은 완두콩을 심지 않았다. 봄에는 감자를 심고 모내기를 준비하는 일로 쉴 틈 없이 바빴었다는 기억만 가득하다. 장시간 보관해두고 먹을 구황작물이나 돈도 되고 밥도 되는 벼농사가 위주였으니 완두콩은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관계로 나에게 완두콩이란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멘델의 유전법칙’에 등장하는 그 완두콩으로만 기억됐었다.


오스트리아 수도원의 수도사였던 멘델은 완두콩을 키우며 유전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자식은 부모의 성질을 반반 닮게 되는 것이 아니고 우성의 성질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빨간 꽃과 하얀 꽃을 교배하면 분홍 꽃이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빨간 꽃이 우성이었다면 다음 세대는 모두 빨간 꽃이 나오게 된다. 이게 멘델의 법칙 중 첫 번째 법칙인 ‘우열의 법칙 (우성의 법칙)’이다. 하지만 2대째로 가면 우성과 열성이 3대 1의 일정한 비율로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두 번째 법칙인 ‘분리의 법칙’이다.


사실 이걸 배운지는 워낙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우성, 열성, YY, yy 같은 시험에 나오는 단어로만 각인되어 있지 완두콩으로 기억되지는 않았다. 물론 멘델은 완두콩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고 내가 배운 생물 시간에도 유전에 대한 기초지식을 공부한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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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멘델의 유전법칙을 다시 생각나게 된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도시농부로 살아가게 되면서부터다. 내가 심고 가꾸는 채소들의 상당수가 F1작물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이 F1작물의 씨앗을 받아 다음 해에 심으면 희한하게 꽃이 안 핀다던지 열매가 잘 맺히지 않는다던지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제야 이 F1작물은 멘델의 유전법칙에 나오는 그 1세대 작물, 그러니깐 우성만이 나타나는 작물이었고 이것의 씨앗을 받은 2세대 (F2)는 열성이 나타나게 되니 원래 심었던 그 작물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농기업이 만들어낸 많은 환금성 작물이 F1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유전의 법칙에 따라 교배가 계속되면 유전적 성질이 일정하게 고정된 씨앗을 얻을 수 있다. 하나의 새 생명, 신품종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농기업은 우성만이 나타나는 F1 작물을 개발해 판다. 이러면서 농부들은 씨앗을 받지 못하고 계속 사서 심어야 하는 일이 생겨나게 되었다.

씨앗을 받아서 심으면 당연히 똑같은 채소나 열매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얼마나 순진한 일이었는지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해가 여러 번 바뀌면서 새로운 것도 알게 되었고 멘델의 유전의 법칙으로만 기억되던 완두콩은 의외로 나의 봄 농사 최애 템이 되었다. 처음에는 학교 텃밭에 교육용으로 많이 심어지니 공부도 할 겸, 거기에 더해 예쁜 색감이 주는 느낌이 좋아 심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한해 텃밭 농사를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초록 완두콩도 심어보고 노랑 완두콩, 토종 완두콩도 심는다. 모양과 색은 달라도 작고 가늘지만 가장 확고히 가지를 붙들고 나가는 넝쿨손, 하얀색 보라색 꽃과 세상 가장 예쁜 꼬투리, 옹기종기 모여 앉은 콩알들, 그리고 살짝 데쳐서 먹는 그 푸른 맛은 모두 같았다. 더불어 씨앗이 누군가의 소유나 이윤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널리 퍼져 나누는 것이라는 바람도 커졌다.


단순히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시간은 쌓여 도시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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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텃밭에서 완두콩 키우기>


1) 완두콩은 연작피해가 큰 작물이다. 작년에 심었던 곳을 피해서 다른 밭이나 조금 떨어진 고랑에 심어주어야 한다. 작은 상자텃밭에도 잘 자라지만 작년에 완두콩을 심었다면 새 흙으로 바꾼 후 심어준다.


2) 넝쿨이 자라며 의지할 수 있는 지지대를 세워 주어야 한다. 주변의 나뭇가지 등을 30cm~50cm 정도로 잘라서 줄기 옆에 약간 간격을 두고 꽂아 준다. 두꺼울 필요는 없으며 매끄러운 것보다 옹이나 마디 같은 것이 있는 것이 더 좋다.


3) 누렇게 익으면 오히려 딱딱하고 맛이 떨어진다. 꼬투리가 탱글 하게 차오르면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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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농부포털' 에 실린 글입니다.

[작물인문학1] 완두콩의 계절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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