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반장의 米식 일기 ④ 밥맛을 좌우하는 완전미
이제껏 전기밥솥으로 밥을 했었다. 취사 버튼 한 번만 누르면 40분 정도면 밥이 되고, 보온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 무척이나 편리한 도구다. 하지만 전기밥솥 밥맛은 늘 비슷해서 어떨 땐 좀 지루하다 느껴질 때도 있었다. 밖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비슷하다. ‘밥’ 먹으러 가자고 해놓고는 ‘반찬’을 고른다. 김치찌개냐 육개장이냐, 아니면 생선구이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나오는 공깃밥이야 다 거기서 거기니 밥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예외가 있는데 바로 ‘돌솥밥’을 먹을 때다. 돌솥밥을 선택할 때는 다른 걸 많이 고민하지 않는다. 돌솥이냐, 아니면 아예 다른 메뉴냐를 결정하면 된다. 돌솥에 갓 지은 윤기 있고 고슬고슬한 밥맛 그 자체가 돌솥밥을 찾는 가장 큰 이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덜어내고 물을 부어 놓고 다시 뚜껑을 닫는 ‘밥 먹는 순서’도 재미있다. 여기에다 밥을 다 먹고 돌솥 바닥을 긁어내 먹는 누룽지와 숭늉도 돌솥만의 매력이다. 밥의 완성형 같은 느낌이라 할까.
그래서 샀다. 도기솥. 곱돌솥이냐 도기솥이냐를 고민하다가 도기솥으로 결정했다. 선택의 이유는 단순하다. 도기솥이 더 가벼울 거 같아서. 설명서에 있는 대로 밥을 안치고 센 불에서 시작해 중불로 10분, 그리고 불을 끄고 10분 뜸을 들였다. 첫 솥밥 짓기의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까? 밥이 좀 되게 됐다. 사실 안쪽선까지 물을 맞추라고 했는데 왠지 물이 많아 보여서 좀 덜어냈는데 그게 문제였다. 역시 매뉴얼대로 해야 한다. 다음 날, 두 번째로 지은 밥은 아주 잘 됐다. 고슬고슬하면서도 부드럽다. 압력이 없는 솥밥 특유의 맛이다. 거기에다 쌀의 단맛에 누룽지 향이 배어서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맛있는 밥이 되었다.
쓸만한 도구도 준비했겠다 더 맛있는 밥을 위해 좋은 쌀에 욕심이 났다. 마침 집 앞 대형마트의 쌀 코너에서 고시히카리를 거의 50%나 싸게 이벤트를 하고 있어서 냉큼 집어왔다. 무려 임금님을 모델로 기용한 쌀이다. 기대에 기대를 하고 밥을 지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매뉴얼대로 했고 몇 번 밥을 지으면서 제법 안정적인 스킬을 익혔다 생각했기 때문에 기대도 컸는데 이번엔 실패다. 쌀알이 뭉개지고 달라붙어 끈적끈적한 식감의 밥이 되었다. 향도 별로 좋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원인 파악을 위해 이번에는 전기밥솥에 밥을 해보았다. 계량컵으로 정량의 쌀을 준비하고 내솥 눈금에 딱 맞게 물을 부어 맞춘 교과서적인 밥 짓기였다. 하지만 역시나 결과는 대 실망. 이건 쌀이 문제라는 얘기다.
쌀을 찬찬히 살펴봤다. 쌀알이 제 각각, 부러진 것 같은 쌀알이 아주 많다. 그리고 아주 작은 쌀 조각 수준인 것도 많았다. 그제야 쌀을 씻을 때 유독 물과 함께 떠내려가는 작은 알갱이들이 많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러니깐 이건 쌀 부스러기인 '싸라기'와 금이 간 쌀을 말하는 '동할미'가 많이 섞인 저품질의 쌀이었던 것이다. 이런 쌀을 경우는 불리거나 밥을 하는 과정에서 전분이 흘러나와서 끈적해지고 골고루 익지도 않아 밥맛이 많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런 정보를 잘 모르고 확인하기도 어려우니 이런 쌀을 가지고 생색내기 이벤트나 특별 할인을 해도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다.
이 일을 겪고 난 후로는 가격을 먼저 보지 않고 쌀의 정보를 우선 확인한다. 그리고 완전미율이 높은 쌀을 구입한다. 쌀알이 부서지거나 금이 가지 않고 제 모양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색감도 투명한 쌀을 완전립이라 한다. 이 완전립이 많은 쌀을 완전미라고 하는데 쌀 포장지에 특, 상, 보통으로 표시된 것이 이 완전미율을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완전립이 많을수록 밥맛이 좋다. 완전립이 90% 이상이면 특 등급을 받는다. 그리고 완전미 비율이 96%가 넘어가면 포장지에다 ‘완전미’라고 표기할 수 있으니 가장 온전한 최고품질의 쌀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쌀을 고르는 방법이다.
밥맛을 규정하는 기본은 쌀의 품종이다. 품종별로 고유의 맛과 향, 식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건 농사가 잘 되고 건조, 도정하는데 문제가 없으며 보관, 유통도 잘 되었을 때 얘기다. 아무리 좋은 품종의 쌀이라도 이런 조건이 잘 갖춰지지 않으면 맛없는 밥이 되고 만다. 다양한 맛은 개인의 취향이라지만 그 다양한 맛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완전미율이 높은 쌀을 선택해야 한다.
다시 솥밥을 지었다. 물론 완전미를 선택했다. 밥이 끓고 김이 나는데 벌써 구수하고 달큰한 향이 퍼진다. 뚜껑을 열면 쌀알이 알알이 살아있는 완전한 밥이 우리를 반길 것이다.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