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반장의 米식 일기 ⑤ 지역을 대표하는 쌀 품종
사실 쌀에도 각기 다른 품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밥을 먹어온 소위 ‘짬밥’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밥이야 하얀 쌀밥이 제일이고, 여름철 별미로 좋아하는 강낭콩을 두어 지은 밥도 좋고, 라면에 말아먹는 찬밥도 맛있고 정도지 이 쌀의 품종이 무엇이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쌀에도 여러 가지 품종이 있다는 것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언뜻 기억나는 것은 정부미는 맛이 없다. 일반미가 훨씬 맛있다. ‘아끼바리’가 제일 좋은 쌀이다. 같은 말들이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들어와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뭐 옛날 일들이라 생각되고 딱 여기까지다. 어릴 적 기억은 이렇게 디테일한 밥맛보다는 일 년 중에 모내기하는 날과 벼 베는 날은 몹시 바빴다는 것, 축제 같았던 그날에는 어머니를 따라 논두렁을 오가면 고기볶음이나 생선찌개 같은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었다는 것 같은 농촌의 노동에 대한 일들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밥 짓기와는 일면식도 없었던 내가 왜 쌀의 품종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의 기억은 명확지 않다. 아마도 밥을 사 먹게 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은데, 밥을 지은 지 언제인지도 모를 맛이 떨어지는 공깃밥을 주는 것이 늘 마뜩지 않았다. 꽤 유명한 음식점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메인 메뉴가 되는 음식은 진짜 맛있는데 밥은 왜 죄다 별맛이 없거나 무성의했다. 사 먹는 밥이 다 그렇지 하고 넘어가야 하는 시절이었지만 아마도 이때 사 먹은 맛없는 밥들이, 역으로 ‘밥맛’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은 분명하다.
<경기도 '참드림'>
경기북부에서 나고 자랐으니 늘 먹어온 쌀은 아무래도 ‘아키바레’일 듯 싶다, ‘아키바리’라고도 부르는데 일본에서 개발된 쌀 품종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한자를 그대로 읽어 ‘추청’이라고 표기된 것이 많다. 2019년을 기준으로 경기도 쌀 생산량의 65%를 일본 품종인 ‘추청(아키바레)’, ‘고시히카리’ 등이 차지하고 있다. 몇 년 전 일본 제품 불매운동 때 이 쌀들이 일본으로 로열티가 지급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아끼바레는 워낙 오래전에 개발었되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도 60년대 이기 때문에 이건 그냥 루머다. 하지만 이제는 이미지가 좋지 않고 너무 오랫동안 경기도 지역에서 키워져 오면서 병충해 등에 약해져 있다는 지적이 있다. 때문에 경기도 농업기술원에서는 신품종을 대거 선보이고 있는데 대표적인 품종이 ‘참드림’이다. 찰기가 적당한고 맛도 좋아서 기존에 경기미를 좋아하신 분들에게도 호평받을 만한 쌀이다. 여기에 이천시가 고시히카리를 대체하는 품종으로 선보이는 품종 ‘해들’도 부드러운 단맛이 좋다. 조생종이어서 9월부터 햅쌀을 구매해 먹을 수 있다.
<강원도 '오대'>
강원도는 역시나 ‘오대’가 유명하다. 강원도에서는 기후 변화 등으로 신품종 육성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오대’의 인지도가 워낙 강하다. 철원오대가 워낙 알려져 있지만 평창, 인제, 양양 등등 강원도 전역에서 많이 생산된다. 오대는 조생종 품종으로 다른 지역의 대표 품종이 나오기 전에 먼저 시장에 선보인다는 큰 장점이 있다. 덮고 습한 여름 내내 눅눅해진 작년 쌀을 먹다가 선선한 바람과 함께 만나는 식감 좋은 오대쌀은 오래된 품종이지만 아직도 그 명성을 지켜나가는 힘이 있다.
<충청도 ‘삼광’>
충청도는 지역적인 특성으로 전국에서 재배되는 다수의 품종이 모두 재배되는 장점이 있었지만 대표적인 품종이 부각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삼광’ 이 친환경 재배와 가성비를 중심으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밥맛이 좋다는 입소문이 있어 충청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지역명과 품종명을 함께 네이밍 한 브랜드들이 등장하면 ‘삼광’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차진 맛을 좋아하시는 분께는 충청도의 ‘삼광’을 추천해본다. 또 최근에는 ‘십리향’이라는 신품종도 인지도를 얻어가고 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향이 좋고 부드러운 밥맛이 특징이다.
<경상도 ‘영호진미’>
경상도 역시 다양한 품종들이 재배되고 있지만 최근 인기를 끌며 떠오르고 있는 품종이 바로 '영호진미‘ 다. 적당한 찰기와 단맛, 그리고 식어도 밥맛을 잘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집밥으로도 좋지만 도시락, 주먹밥 같은 용도로도 훌륭하다. 이런 장점은 배달음식에도 적합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어서 이 ’영호진미‘의 인기가 점점 높아져 갈 것으로 보인다.
<전라도 ‘신동진’>
전라북도에는 ‘신동진’이라는 대표 품종이 있다. 쌀알이 굵고 단맛도 좋아서 다양한 음식에 활용하지고 좋고 질리지 않아 이제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품종이다. 또 덮밥, 볶음밥 같은 한 그릇 밥으로 식사를 하는 경향이 확산되는 것도 ‘신동진’의 인기 요인이다. 이런 음식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동진’에 더 집중하는 전북지역과는 달리 전남지역은 ‘새청무’라는 신품종을 전남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육성해 나가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물론 지역마다 단 하나의 대표 품종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새일미, 친들, 일품, 호품, 백진주, 하이아미 등 다양한 맛과 향의 여러 품종들이 지역마다 키워지고 있으니 브랜드와 쌀 품종을 함께 확인해 본인의 취향에 더 맞는 품종을 찾아가면 더 맛있고 다양한 米식생활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