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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히카리 vs 참드림

황반장의 米식 일기 ⑧ 경기미

by 황반장


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경기미’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으리라 생각된다. 고품질 브랜드의 이미지가 강하고 밥맛이 좋다는 입소문이 있는 쌀이다. 경기도 전역의 쌀은 ‘경기미’라는 브랜드로 대표되지만 ‘경기’라는 살 품종이 있는 것은 아니고 경기도에서 재배되고 관리, 유통되는 쌀을 통칭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경기미 품종은 ‘추청’과 ‘고시히카리’다. 이 두 가지 쌀 모두 일본에서 개발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품종으로 이중 ‘추청’ 은 일본어 발음 ‘아끼바레’를 한자음으로 읽은 것. ‘추청’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아하는 쌀’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니 우리나라에서 꽤 오랫동안 재배되거나 먹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 ‘추청’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추청’은 일본의 아이치현 농업연구소에서 1962년 개발되어 우리나라에는 1969년 도입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이나 경기도 전역과 충청북도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는 품종이다. 이 정도면 외래 품종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에 토착화된 품종이라고도 볼 수 있는 세월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키워지고 먹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밥맛이다. 쌀알이 작지만 수확량도 좋은 편이고, 무엇보다 찰기가 아주 강한 품종이어서 윤기가 좋고 차진 밥맛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70년대 보급된 통일벼가 인디카 계열로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더 밥맛으로 유명세를 탄 것으로도 보인다.


[꾸미기][꾸미기]20210513_180018.jpg 일본 품종 '아끼바레'를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어이없는 문구가 등장한 경기미



최근의 지명도 면에서는 ‘추청’보다도 더 많이 알려져 있는 품종이 ‘고시히카리’가 아닐까 싶다. 일본에서 1944년부터 농림 1호와 농림 22호를 교배해 개발했고 1956년 ‘고시히카리’라고 이름이 붙여져서 일본에서는 65년의 세월 동안 가장 많이 키워지고 가장 알려진 품종이니 대단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품종이다. ‘히토메보레’ ‘사사니시키’, ‘아키타코마치’ 같은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다른 품종들도 있지만 전체 재배면적에서 10%를 넘는 품종은 거의 없다. 다만 이 고시히카리만이 30% 이상의 재배되고 있어 일본에서는 너무 ‘고시히카리’ 일변도의 쌀 재배는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가장 널리 재배되고 있는 품종이다.


‘고시히카리’는 우리나라에서도 지명도가 높아 ‘추청’ 만큼이나 오랫동안 키워져 온 것으로 오인되지만 실제로는 2002년 당시 임창렬 경기도지사의 지시로 도입되어 국립종자원에 품종명칭 등록을 한 품종이다. 당연히 경기도에서 들여왔으니 등록 출원인은 경기도지사로 되어있다.


경기도가 ‘고시히카리’를 적극 도입해온 과정은 아쉬움이 남는다. ‘고시히카리’가 보급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중반이면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최고품질 쌀로 불리는 ‘삼광’, ‘영호진미’, ‘하이아미’, ‘운광’ 등의 우리 품종이 개발 완료된 때다. 경기도에서도 이를 활용해 경기도 지역에 적합한 고품질 쌀을 개발하고 농촌현장 적응에 좀 더 힘을 쏟았다면 지금은 경기미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품종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몇 년 전에는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기도 했었다. 경기도 강화군의 이야기다. 당시의 신문기사 제목은 ‘고시히카리 육성정책으로 진퇴양난 강화군 (2019.9.4 강화뉴스)’이다. 기사에 따르면 강화군은 ‘대한민국 1% 최상위 쌀 고시히카리 플러스’라는 사업을 통해 ‘고시히카리’를 집중 육성하는데 많은 예산을 들였으나,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여파와 경기도의 일본 품종 보급 중단 정책에 의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의 몫이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이천시 같은 경우에는 몇 년 전부터 일본 품종 일변도의 벼 재배는 오히려 이천쌀 이미지에 좋지 않다는 판단하에 ‘해들’ 이라는 국산 신품종을 농업진흥청과 손잡고 개발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어 강화군과 비교된다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다.


경기도의 여러 지자체는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쌀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이천시의 ‘임금님표 이천쌀’, 여주시의 ‘대왕님표 여주쌀’, 강화군의 ‘강화섬쌀’, 파주시의 ‘한수위’, 김포시의 ‘김포 금쌀’ 등등 지자체별로 유명 브랜드들이 포진하고 있다. 하지만 쌀의 품종으로 본다면 그다지 다양한 품종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2019년 기준 경기도 벼 재배면적 7만 8천12 헥타르 중 50.9%가 ‘추청’, 12.5%가 ‘고시히카리’이며 ‘히토메보레’ 같은 많이 재배되지 않는 품종까지 합치면 일본 품종이 64%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미는 이름처럼 경기도의 쌀이지만 품종에서는 일본 품종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분명 장기적으로는 고급쌀 경기미 이미지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또 ‘추청’ 같은 경우는 50년 동안 재배되면서 병충해에 취약해졌다는 점이 큰 문제가 된다. 경기도 전체 벼 재배면적의 50% 넘게 한 품종이 점유하면서 기후환경 와 병충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이유로 경기도에서는 2019년 4월 기자회견을 통해 경기도의 일본 품종 벼 종자 보급을 단계적으로 줄여 2023년에는 보급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기도에서 가장 많이 키워지는 품종 '추청'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품종이 있는데 바로 ‘참드림’이다. 최근 경기도와 서울지역의 마트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품종으로 경기도 농업기술원과 국립 식량과학원이 2004년도부터 육성하기 시작해 10여 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15년에 ‘참드림’으로 이름 붙여져 재배되지 시작했으니 쌀로 본다면 신상, 즉 최신 품종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이 ‘참드림’은 우리나라 최고품질 품종 중 하나인 ‘삼광’과 토종벼인 ‘조정도’를 교배해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토종벼인 ‘조정도’라는 이름이 흥미롭다. 일제강점기 사라진 토종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는데 쌀 품종을 개발할 때 여러 가지 다양한 품종을 교배해 선발하지만 토종벼를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참드림’이 일본 품종 ‘추청’을 대체하기 위한 품종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런 시도에 좀 더 의의를 둘 수 있겠다.


‘참드림’이 일본 품종을 대체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기 때문에 ‘추청’이나 ‘고시히카리’와 비교하는 항목이 많다. 각종 테스트나 소비자 평가에서도 ‘추청’이나 ‘고시히카리’보다 좋은 성적을 보여주면서 점점 더 지명도를 높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밥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인 아밀로스 함량이 19.5%, 단백질 함량이 5.4% 로 부드러우면서도 차진 맛이 특징으로 여기에 밥향도 너무 강하지 않고 은은하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즐겨먹을 수 있는 맛이니 앞으로의 성장도 기대해 볼만 하다.


좀 눈여겨 볼만 성적표는 <상온저장성>이라는 부분이다. 상온에서 저장했을 때의 밥맛의 변화를 말하는 것으로 가장 뜨거운 8월을 기준으로 ‘추청'의 신선도가 50이라고 한다면 ’ 참드림‘은 70선을 유지하지 때문에 한여름에도 밥맛을 유지하는, 상당히 좋은 품질을 보여준다. 13℃로 저온저장할 때 에도 아주 큰 차이는 아니지만 ’ 참드림‘이 더 좋은 저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전반적으로 밥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무더운 여름에는 저장 신선도가 좋은 ‘참드림’을 선택하는 게 좀 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경기미를 대표해온 추청(아키바레)과 고시히카리의 이미지는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신품종 참드림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최근 선호도 조사 등에서 알 수 있다. 과연 사람들은 새로운 경기미로 어떤 밥맛을 선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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