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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밥맛의 미래

황반장의 米식 일기 ⑨ 기후변화와 신품종 쌀

by 황반장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에는 불볕더위, 가을에는 늦장마와 태풍이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기예보부터 챙겨보는 버릇이 있는데 강수량, 일조량, 온도 등등 농사에 영향을 주는 날씨에 민감하게 되니 만들어진 버릇인 듯싶다.


일기예보는 당일과 일주일 정도의 단기예보도 하지만 장기적인 날씨 예보도 한다. 봄철 이상저온 때문에 과수나무 꽃이 잘 피고 않고 수정에도 문제가 생겨 과수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정보 같은 것이다. 나와는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봄철의 이상기온이 한 해 농사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면 농사가 잘되지 않아 가을에 여러 과일값이 비싸지고 추석 즈음에는 과일값 폭등 같은 뉴스를 어김없이 접하게 되는 것이다. 추석 차림을 위해 지갑을 열기가 걱정될 수 도 있고, 외식업에 종사하시는 자영업자들은 원물 재료비에 변동이 생길 수 도 있다.


올해도 폭염은 계속됐다. 여름철에 최고기온이 33도를 넘는 날이 이틀 이상 계속되면 지역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지게 되며 미리 정해둔 전국의 45개 기준 지역에서 모두 33도를 넘게 되면 그 해 여름의 폭염일로 기록된다. 1980년대에는 폭염일은 평균 8.2일이었는데 2018년에는 무려 31.4일이나 되었다 온도는 높아지고 강수량이 줄어드는 것이 어느 한해의 일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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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후변화가 쌀에도 영향을 줄까? 사과의 산지가 경상북도에서 강원도로 이동하고 있고 전라남도에서는 열대과일이 재배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은데, 쌀도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아 품종에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적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상도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쌀은 ‘새누리’라는 품종이었다. 이 ‘새누리’는 다수확 품종으로 2014년에서 2017년도까지 우리나라 전체 벼 재배면적의 20% 내외가 키워지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의 쌀이었다. 이 ‘새누리’는 다수확 품종이고 병충해에도 강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중부지방에서 키워지는 ‘고시히카리’나 ‘삼광’ 같은 품종에 비해 밥맛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생겨났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다.


벼의 성장에는 ‘출수기’라는 시간이 있다. 벼꽃이 피고 수정이 되어 벼이삭이 나오게 되는 아주 중요한 시기인데 ‘새누리’는 이 출수기가 8월 16일이다. 이 시기가 이전에는 벼 성장에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계속되는 열대야로 밤 기온이 너무 높아져 버려 밤낮의 기온차가 별로 없는, 오히려 벼의 성장에 좋지 않은 기후가 되자 새누리의 밥맛도 변변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 개발된 품종 ‘영호진미’는 출수기가 8월 21일로 ‘새누리’에 비해 5일이 늦다. 5일이 그렇게 큰 영향을 주는가 싶지만 하루하루 날씨가 변하는 8월 중하순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또 벼는 출수 후 45일이면 벼베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이 되기 때문에 뜨거운 열대야가 사라진 바로 이 5일이라는 시간이 막 나오는 벼이삭에는 알이 잘 들어차게 하고 외관도 좋게 만들며 밥맛이 더 좋아지게 했다. 이런 이유로 출수기가 늦은 영호진미가 밥맛에서 이전의 새누리보다 월등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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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품종으로 알려진 ‘오대’ 역시 이런 변화에 직면해 있는데 이제 강원도가 그렇게 일교차가 크지 않고 온도는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남지역에서 많이 키워지는 품종 ‘신동진’과 ‘새일미’ 역시 밥맛도 좋고 병충해에도 강하기 때문에 재배하는 농민들과 소비자 모두 선호하는 품종이었다. 그런데 이 ‘신동진’과 ‘새일미’가 병충해 문제가 아닌 전남지역에 잦아진 늦은 태풍에 큰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2019년 한 해에만 전체 전남지역 벼 재배면적 15만 ha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5만 ha가 이 태풍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었으니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남도 농업기술원에서는 ‘신동진’이나 ‘새일미’ 보다 키가 작아서 잘 쓰러지지 않아 태풍 피해를 덜 받는 품종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는데 신품종 ‘새청무’가 그것이다.


기후변화는 쌀의 맛도 변화시키고 있다. 예전의 쌀들은 뜨거운 여름이면 밥맛이 급격히 떨어져 버렸지만 새로운 품종들은 여름에도 보관성이 좋고 좋은 밥맛을 유지하도록 개량되고 있다. 최근에 변화된 기후 환경에 맞는 이런 쌀 품종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지역 브랜드 외에도 새롭게 개발된 품종을 확인해야만 더 좋은 밥맛을 찾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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