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햅쌀의 여정

황반장의 米식 일기 ⑩ 맛있는 밥의 조건

by 황반장

11월은 밥이 맛있는 계절이다. 김치찌개, 제육덮밥, 해장국, 순대국 같은 음식이나 식사로서의 포괄적인 의미인 밥이 아니라 쌀을 익혀서 그릇에 담아 나오는 밥 그 자체 말이다. 11월까지 전국에서 수확되는 햅쌀이 380만 톤이나 되니 지금부터는 어디를 가도 햅쌀을 찾을 수 있다. 갓 수확되어 도정까지 마치고 식탁에 오른 윤기 좌르르 흐르는 햅쌀밥은 그 자체로 밥도둑이다.


누구나 다 이구동성으로 햅쌀이 맛있다고 하지만, 한 가지 이견이 있는데 올해 수확된 쌀을 언제까지 햅쌀로 부를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깐 매해의 햅쌀은 ‘수확이 시작된 후부터 12월 31일 까지다’. ‘아니다. 내년 설날 전까지라고 해야 한다’. 심지어는 ‘내년 봄, 새로 모내기를 할 때까지를 말한다’ 등등 다양한 의견이 많다. 실제로 해가 바뀌어 1~2월까지는 햅쌀이라고 인쇄되어 포장된 쌀들이 유통되니 이러쿵저러쿵 누구나 말을 보탤 만도 하다. 정확한 정보는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에서는 ‘햅쌀’을 ‘당해에 새로 난 쌀’로 규정하고 있다. ‘당해’라고 하였으니 12월 31일까지로 해석되는 게 맞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좀 더 세부적으로 규정하는데 ‘당해 연도에 생산되어 12월 31일까지 현미 또는 백미로 정미되어 포장된 쌀’ 까지만 햅쌀이라고 규정한다. 여러 사람들의 나름 일리 있는 이야기나 남의 나라 규정까지 따지지 않아도 아무튼 11월이 햅쌀의 계절임은 분명하다.



봄부터 논에서 자라난 나락은 콤바인으로 수확된 후 곧바로 건조기로 들어가 수분이 15% 내외가 되도록 건조하게 된다. 이래야만 최상의 밥맛을 유지하고 보관할 때도 변질이 적게 된다. 건조기를 운영하는 기술도 중요한데 너무 높은 온도로 나락을 말리거나 급하게 말리게 되면 쌀알에 금이 가서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 쌀농사를 짓은 것도 어려운 과정이지만 이 수확한 나락을 밥상을 올리기 전까지 가공하는 일도 꽤나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다.


건조된 벼의 겉껍질인 왕겨를 벗겨내면 현미가 된다. 이 현미의 표면에 해당하는 호분층을 깎아 내는 도정 작업까지 마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쌀, 백미다. 이제 이 쌀들은 농민의 손을 떠나 소비자에게로 전달된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좋은 쌀을 눈으로 보고 골라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현미경을 들고 다니면서 쌀알의 상태를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다행히 쌀 포대의 적힌 품질표시를 통해 좋은 쌀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깨진 쌀, 금이 간 쌀, 덜 여문 쌀 같은 것이 없고 제 모양 가진 것을 완전미라고 하고 이 비율을 완전미율이라고 하는데 90% 이상이 넘을 때 좋은 쌀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입장으로 일일이 이런 비율을 다 따질 수는 없지만 쌀의 등급으로 이를 표시하고 있으니 표시란에 보통, 상, 특상 등으로 표시된 것을 보고 쌀을 고르면 된다.




이제는 밥을 해보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촉촉하며, 윤기가 흐르고 입에 넣었을 때는 은은한 단맛이 돌면서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아 식감이 좋은 밥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상하는 맛있는 밥일 것이다. 누구나의 로망인 어머니의 밥맛이란 게 이런 밥맛이지만 이런 밥을 짓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저금 더 좋은 밥맛을 원한다면 쌀을 불리는 과정을 꼭 거치길 권장한다.


밥맛의 차이는 밥을 짓는 솥에도 생겨난다. 이건 밥을 잘 짓는 기술과는 별개의 문제로 아주 찰기가 강한 밥이냐 고슬고슬한 식감의 밥이냐의 문제다. 유독 찰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입맛의 특성으로 압력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바쁜 일상생활에서 편의성을 강조한 전기밥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밥을 짓는 다면 쌀도 완전미율이 높은 상등품 이상의 쌀을 권장한다. 압력 때문에 깨진 쌀과 금 간 쌀에서 전분이 더 많이 흘러나와 밥맛을 망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밥의 조건은 역시나 기본에 충실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잘 여문 쌀과 숙련된 가공 기술, 그리고 신선한 유통이 필요하다. 좋은 쌀을 구했다면 잊고 있던 밥 짓는 기술을 다시 몸에 익혀야 한다. 쌀을 불리는 솥에 안쳐 밥을 짓고, 맛이 잘 들도록 뜸을 들이는 과정을 알고 있다면 맛있는 밥의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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