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연대기

어쩌다 목공 ④ 원목 미니 자동차

by 황반장

이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을 동시에 켜놓고 유튜브와 게임을 즐기시는 아드님이지만 유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미니 자동차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신 로봇 ‘또봇’이나 팽이 ‘베이 블레이드’에 잠시 한눈을 팔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잠시뿐이었고 다시 자동차로 돌아오곤 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토미카’라는 브랜드의 미니 자동차. 세계 각국의 자동차를 미니어처로 만든 것인데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아이 손에도 쏙 들어가는 크기와 실제 차와 같은 디테일로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걸 다 갖춘 장난감이다. 어른들에게도 매력적인 요소가 많아서 아이 핑계로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의 자동차를 몇 개 슬쩍 사기도 했었다.


몇 번 목공에 맛을 들이다 보니 수업 내용에 있는 것 말고도 간단한 것은 도움 없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들은 생각이 아이에게 원목으로 장난감 자동차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것. 어릴 적 직사각형 나무토막에 싸인펜 같은 것으로 바퀴며 창을 그려 넣어 모래 위에서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 일단은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마침 초보용 목공 DIY 책을 한 권 샀는데 여기에 장난감 자동차 만들기가 소개되어 있었으니 필요충분조건이 완성된 셈이었다. 책에 나온 사진을 보고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실제 만들 크기로 그려보고 다시 나무에 그려서 잘라낼 계획이다. 자동차 몸체를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바퀴. ‘쌩쌩’까지는 아니더라도 ‘동글동글’ 구르기는 해야지 굴러가지 않는 바퀴라면 옛날 나무토막에 그려 넣은 자동차와 별 차이가 없지 않겠는가! 일단 네모난 바퀴를 만들고 울퉁불퉁을 거쳐 동그랗게 될 때까지 사포로 갈아내면 된다는 그럴듯한 계획이 완성됐다.


수요일에는 목공수업 진도를 따라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D-Day는 자유 작업일인 금요일이다. 먼저 두께 18t짜리 레드파인 원목을 이용해 자동차 몸체에 해당하는 밑그림을 그렸다. 아이가 가지고 놀 것이니 만큼 모난데 없이 둥그렇게 곡선을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나무를 곡선으로 어떻게 잘라내는가 하는 것이다. 목공은 나무의 가공에 따라서 각각의 기계가 필요한데 이번에도 새로운 기계가 등장해야 했다. ‘스크롤 쏘’라는 기계를 이용하면 곡선을 가공할 수 있는데 어깨너머로 구경만 한 것이라 살짝 긴장이 되었다. 이 ‘스크롤 쏘’는 작은 재봉틀처럼 생겼는데 얇은 톱날이 위아래로 진동하듯이 빠르게 움직여 나무를 자르는 기계다. 톱날이 얇고 가늘기 때문에 천천히 나무를 움직이면 둥그렇게 곡선 가공이 가능하다. 쉬워 보이지만 역시나 초보에게 호락호락한 기계는 없었다. 빠르게 상하 진동하기 때문에 나무가 들썩이지 않도록 꼭 누르듯이 잡고 조금씩 회전시켜 곡선을 잘라 내야 한다.


곡선을 가공하는데 쓰이는 목공기계 '스크롤 쏘'



처음부터 그려진 곡선을 따라 자르다가 나무를 회전시키지 못해 자동차 안쪽까지 톱날이 쑥 들어가 버렸다. 딱 1초쯤 되는 찰나에 ‘망했다’는 느낌이 머리를 스쳐갔다. 처음부터 다시. 이번에는 곡선을 바로 따라가지 않고 불필요한 부분을 사과 깍듯이 깎아 내고 시작했다. 처음보다 많이 수월해졌다. 기계 앞에서 한참을 고뇌하듯 서서 작업한 후에 자동차 비슷한 모양으로 나무를 잘라낼 수 있었다.


다음은 바퀴 만들기. 일단 네모난 긴 각재를 샌딩기로 동그랗게 될 때까지 가는 게 플랜 A다. 이번에도 ‘벨트 샌더’라는 새 기계가 등장했다. 아들이 가지고 노는 큰 탱크 장난감처럼 생겼는데 무한궤도처럼 생긴 샌드 페이퍼가 ‘위에엥’하는 거창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말이 쉽지 사각 나무를 원형으로 갈아낸다는 게 쉽겠는가. 갈고 또 갈고 또 갈아냈다. 역시 모든 계획에는 플랜 B가 있어야 한다고 되뇌며 겨우 겨우 바퀴 하나를 완성했다. 세 개나 더 남았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몸체에 바퀴를 달 구멍을 내고 목심을 이용해 갈아 만든 타이어를 연결했다. 쌩쌩은 아니어도 동글동글 구르는 자동차가 완성됐다.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나무의 촉감이 좋고 나무향이 나는 세상 하나뿐인 자동차를 아들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다.


초보는 바퀴를 갈아서 만들었다.



어릴 적에 아버지는 다정한 분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가끔 막내아들 놀잇감을 만들어 주시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얼레’. 연날릴 때 실을 감아두는 그 얼레 맞다. 지금이야 연이란 게 한강 고수부지 편의점이나 유원지 매점에서 판매하는 것이지만 예전에 겨울이면 스스로 만드는 놀이도구였다. 어린 나는 방패연처럼 기술이 좀 필요한 건 만들지 못했지만 가오리연은 혼자서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연을 잘 날리고 연싸움에서도 지지 않으려면 얼레가 필요했다. 줄을 풀어주고 당기고 연을 높이 올렸다 내렸다 하려면 좋은 얼레의 힘이 컸다. 어느 겨울 아버지는 나무를 다듬고 깎아 맞추고 굵은 철사를 달궈 구멍을 내서 육각 얼레를 만들어 주셨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얼레를 들고 기세 등등 연싸움에 나섰는데 동네 형들에게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 같은 게 생겼던듯하다.


조그만 장난감 자동차 하나 겨우 만들고 놓고 감회는 최신형 전기 자동차라도 뽑은 듯하다. 아이에게 이 장난감이 최고는 아니지만 아빠의 손으로 만들어진 마음의 표현 같은 것쯤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내 아버지의 수고가 나에게 그렇게 기억되는 것처럼 말이다.

둥글둥글 천천히 가는 자동차



여담 하나

아들은 아빠가 만들 장난감을 무척 좋아했다. 물론 잠깐 가지고 놀고 다시 토미카로 본격적인 놀이를 했지만 말이다. 이 원목 자동차는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들 책꽂이에 놓여있다.


여담 둘

장난감을 만드는 일을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만들어 주는 장난감의 유효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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