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목공 ③ 반문 수납장
어린 시절 쿵쾅쿵쾅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로 아침잠을 깨곤 했었다. 집 앞 수풀이 무성했던 자리가 말끔히 치워지더니 어느 날 커다란 공장이 들어섰을 때부터다. 철판을 가공해 책상이며 수납장, 서류함 따위를 만드는 캐비닛 공장이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소음이 대단했다. 요즘 같으면 민원이 수백 번은 들어갔을 것 같은 커다란 소리였는데 당시에는 이런 모습이 활기찬 아침을 여는 신호 같았다. 조용하던 마을에 들어선 공장은 집집마다 캐비닛 책상이며 수납장 등을 들여놓게 했다. 돈 들여 사는 것은 아니었고 아마도 공장 직원들을 알면 생산과정에서 하자가 생긴 물건이나 재고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겐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는데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나만의 가구를 가질 수 있었다. 면사무소에나 가면 볼 수 있는 청회색 철판으로 만들어진 사무용이었지만 여기에 교과서를 이리저리 꽂아보고 연필이며 공책도 차곡차곡 정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미닫이문이 아래쪽에 있는 수납장은 정리와 보관에 여러모로 유용했는데 위쪽 칸에는 책을 꼽고 아래쪽 문이 있는 칸에는 잡다한 문구류나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하는 나에게만 소중한 물건들을 넣어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철재 수납장의 기억은 목공교실 세 번째 시간에서 소환됐다. 오늘 만들어야 하는 것은 반문 수납장이다. 4단으로 되어 있지만 아래쪽 두 단 앞에는 문짝이 달려있는, 그 시절 철재 캐비닛과 거의 같은 디자인이다. 틀린 점이 있다면 옛날 철재 캐비닛은 문짝이 옆으로 미는 미닫이였고 이 원목 반문 수납장은 싱크 경첩을 사용해 앞으로 여는 여닫이 문이라는 것이다. 싱크 경첩은 말 그대로 싱크대 수납장에 많은 사용되는 경첩으로 문 하나에 아래 위쪽으로 두 개가 사용된다. 간단하게 문을 달수도 있고, 거기다 견고하기도 해서 가구에 많이 사용되는 경첩이다.
이번에 사용하는 나무는 두께 18mm의 레드파인이다. 해석하면 붉은 소나무나 적송(赤松) 쯤 되는데 나무가 가볍고 가공하기가 좋아 목공에 애용되는 나무 품종이다. 우리 목공방에서는 핀란드산 레드파인을 주로 사용한다. 이 레드파인 한판의 사이즈는 1,220 mm× 2,440 mm 크기로 규격화되어 있다. 흔히 원장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큰 사이즈가 나오려면 나무가 엄청나게 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초보다운 생각이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원목은 어마 어마 큰 나무를 저미듯 자른 것이 아니었다. 원목을 좁고 길게 잘라서 붙이는 집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솔리드 집성목이라고 부른다. 원장은 성인이 양손을 벌여 잡을 수는 있지만 높이가 키를 훌쩍 넘기기 때문에 혼자서는 옮기기 조차 어렵다. 물론 이것을 원하는 크기로 재단해 내는 것도 쉽지 않아서 초보들은 다른 사람을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이 레드파인 원장을 도면에 맞게 ‘테이블 쏘’를 이용해 여러 모양의 직사각형으로 재단하고 조립하면 반문 수납장이 완성된다. 시작이 반인 것처럼 목공에서는 재단이 반이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원장을 크기에 맞게 잘라냈고 이전 시간에 배운 데로 피쓰(비스)를 사용해 조립했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마지막에 싱크 경첩을 이용해 문을 다는 것이 새로운 숙제다. 물론 바니쉬로 마감칠을 해주어야 한다. 싱크 경첩을 달려면 '포스너 비트‘라는 새로운 도구를 전동드릴에 장착해 구멍을 가공해야 한다. 완전히 구멍을 뚫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깊이까지만 파내야 하는 작업이다. 일반적인 싱크 경첩의 크기는 35 Ø 이므로 이 크기와 같은 포스너 비트로 구멍을 파내고 나니 싱크 경첩을 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의외로 쉽게 풀린다 했더니 문짝의 크기를 너무 딱 붙게 만드는 바람에 약간 잘라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문짝의 두께가 18mm 이기 때문에 문과 문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야 문이 잘 열리게 되고, 원목이기 때문에 계절별로 수축 팽창이 생겨서 2mm 정도의 여유를 둔다는 것이다. 소위 짬밥이 있어야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니 내가 모르는 건 아마 당연한 게 아니냐 항변하려는 순간, 우리 반 에이스 안경점 사장님을 비롯해 부부 목공단, 출판사 팀장, 설계사무소 젊은이까지 줄줄이 문을 수정하고 있었다. 내가 꼴찌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완성된 반문 수납장은 높이가 1,000mm, 폭이 600mm. 깊이가 300mm가 되는 제법 크기가 있는 편이다. 주방에 두고 전자레인지를 올리고 물건을 수납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도 있지만 그때 그 시절의 철재 수납장처럼 책상 옆에 두고 문구와 사무용품을 정리 수납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책상 옆에 자리를 잡고 잡다한 문구류나 컴퓨터 케이블 같은 걸 정리했다. 앨범 없이 사진관 봉투에 넣어 두었던 예전 사진들도 수납해 두었다. 작은 바구니 두 개를 이용해서 건전지 따위를 정리하니 어느새 한밤중이다. 어린 시절 쿵쾅거리는 소음을 내던 캐비닛 공장에서 만들어진 철제 가구를 처음 가졌을 때처럼 설레는 날이었다.
여담 하나.
그 시절 내게 철제 책상이 생기기 전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큰 재봉틀에 천을 덮어서 책상 대용으로 사용했었다. 숙제하다 지루할 때 발판을 밟으면 윙윙 벨트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신기한 책상.
여담 두울.
지금은 이 수납장을 아들이 사용하고 있다. 언젠가는 자기 가구를 직접 만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내 바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