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민트, 내가 이런 색을 좋아한다고?

어쩌다 목공 ② 좌식 책상 만들기

by 황반장

초등학교 시절, 전국 농촌 어린이 사생대회에서 무려 장려상을 받은 적이 있다. 모내기하는 풍경을 크레파스로 그린 것으로 기억한다. 논에는 사람들이 못줄잡이의 소리에 맞춰 모를 심고 있고 배경으로 둘러선 산등성이도 유록색으로 물들어 있는 그런 그림이었다. 초록, 파란색 크레파스로 논이며 산을 그리고 황토색으로 논두렁 밭두렁을 칠했다. 딱히 미술을 배운 적이 없으니 실력이 좋았을 리 없었지만, 운이 따랐는지 여러 우수상 중 하나가 되어 부상으로 큼지막한 영한사전을 받았다.

이후론 수업시간 외에는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데 주변인,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면서는 더욱더 멀어지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색이란 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옷을 고를 때 정도나 색을 선택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래야 베이지, 카키, 네이비를 벗어나지 못했다. 큰 일탈이라야 체크 정도. 색을 선택해야 하는 고민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뜻밖의 일은 목공 수업에서 일어났다.


두 번째 목공수업은 좌식 책상 만들기. 일단 첫 시간의 모니터 받침대보다는 크기가 커졌다. 또 다른 제품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독으로 쓰이는, 조금 작지만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수업의 목표는 나사못 없이 목심을 사용해 나무 판재를 연결하는 것. 목심은 연필 정도의 굵기에 크기는 그 4분의 1 정도가 되는 나무 조각이다. 이 목심의 지름이 8mm, 길이는 30mm이니까 결합하기 원하는 목재 양쪽에 지름 8mm, 깊이 15mm의 구멍을 뚫고 목공 본드를 조금 넣고 목심을 박아 고정시키면 된다. 이렇게 하면 나사못을 박은 자국이 없이 책상 상판을 아주 깔끔하게 붙일 수 있다.

일단 시작하니 어렵지 않았다. 첫 시간에 했던 모니터 받침대와 구조가 비슷해 더 쉽게 느껴졌다. 안경점 사장님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부부 목공단보다는 빨랐다.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안경점 사장님을 어느 순간 따라잡을 것 같았다.


애플민트로 상판을 칠한 좌식 책상, 상판과 하부를 목심으로 결합해 상판에 나사못 자국이 없다.


두 번째는 모양이 완성된 좌식 책상에 칠로 마감하기 목재를 보호하고 오염을 막는 용도로 수성 바니쉬나 오일 중에 선택해 칠을 한다. 바니쉬를 사용하려면 원하는 색상의 목재용 수성페인트를 칠하면 되고, 오일은 색상을 선택해 한 번에 칠하면 된다. 붓이나 작은 스펀지 조각을 이용해 쓱쓱 칠하면 되니 어려울 것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으니 바로 색상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화이트, 밀크, 핑크 같은 밝은 색부터 가구에 많이 쓰이는 월넛, 티크 같은 색상들, 그리고 스카이 블루, 애플민트 같은 다양한 색상의 페인트들이 줄을 서 있었다. 화이트나 밀크는 때가 잘 탈 거 같고, 월넛이나 티크는 가구에 흔하고, 애플민트는 너무 튀어 보였다. 이를 어쩐다 하고 잠깐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시간은 나만 빼고 흐른 듯이 다들 색을 칠하고 마무리를 하는 중이었다. 안경점 사장님은 월넛으로 칠하고 바니쉬로 마무리하는 중이다. 부부 목공단은 의견이 갈렸는지 밀크와 티크를 각자 칠하는 중이고 출판사 팀장님은 화이트로 화사하게 칠했다. 설계사무소 젊은이는 색 없이 나무 그대로 색상을 살려 바니쉬만 칠했다. 저런 방법이 있었다니.


더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순간의 선택으로 딱 집어 든 것은 난생처음 접해본 ‘애플 민트’. 이름도 처음 들어 봤지만 이게 내가 쓸 물건의 색이 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었다. 색이 잘 나오도록 스펀지 조각에 페인트를 묻혀 나뭇결에 따라 칠을 해 나갔다. 한 번에 쓱 지나가야 결도 예쁘고 색도 잘 든다. 완성해 놓고 보니 책상의 색보다도 내 취향을 알 것 같았다. 색상 선택에 만족도가 높았다. 내가 이런 색을 좋아하는구나.


살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많았다.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고 어색하지도 않았다. 어쩌다 목공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상상하고 선택을 하게 되는 일이 점차 늘었다. 내가 원하는 나무, 디자인, 크기는 뭔지, 색상은 어떻게 하고 장식은 어떤 걸 다는 게 좋을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선택하고, 그리고 만든다.


살짝 어색하고 상상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살면서 들여다보지 못했던 자신을 보게 된다. 살던 그대로 일 때도 있고, 전혀 짐작도 못했던 것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별일 아닌 걸로 너스레 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고백컨데 기성세대 소리가 어색하지 않은 나이에는 제법 긴장되는 일이다.


아이패드와 책 한 권을 올리는 것을 상상하고 크기와 모양을 정했다.





여담 하나.

선생님의 자꾸 ‘피쓰’를 사용하지 않고 목심을 사용하라고 한다. 눈치로 ‘피쓰’가 나사못을 말하는 것이라는 건 알겠는데 왜 ‘피쓰’ 일까? 나무 두 개가 ‘피쓰’로 결합되면 평화(peace)가 온다는 말인가? 국립국어원의 게시판을 보니 나사못을 뜻하는 프랑스어 ‘비스(vis)’가 어원이다. 이 말이 일본어 ‘비스(ビス)’가 되었다가 우리나라에서 ‘피스’, ‘비스’를 혼용하게 되었다는 것.


여담 둘.

‘바니쉬’로 마감을 하라고 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한참 고민했다. ‘니스’는 익히 알고 있는데. 차마 ‘니스는 없나요?’를 물을 수는 없었다. 이것 역시 일본어 ‘니스(ニス)’ 가 유래. 목재 보호재인 ‘바니쉬’ 중에 수성은 그냥 바니쉬’라고 하고 유성 바니쉬를 구별하기 위해 ‘니스’가 혼용되고 있다고.



keyword
이전 01화다짜고짜 삼나무 모니터 받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