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의 첫인상은 가볍고 부드러운 촉감이나, 군데군데 들어찬 옹이가 보여주는 나무의 원초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나무에 대해 각인되어 있는 이미지는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 길가의 은행나무나 플라타너스, 혹은 가구로 만들기 위해 가공해 쌓아놓은 판재 같은 것으로 대부분 그 생김새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삼나무는 좀 달랐다. 비 갠 후 들어선 숲의 향이 먼저 느껴졌다. 아마도 이전에는 맡아본 적 없는, 하지만 어딘가 기억 속의 숲이 열리고 뻗어있는 가지 사이로 나무의 향이 쏟아진다면 그게 바로 삼나무의 향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후각으로 먼저 만나게 된 것이 삼나무였다.
이 포스터를 보고 무작정 목공교실의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기초지식도 없이 무작정 찾아간 목공교실은 삼나무 모니터 받침대 만들기로 시작됐다. 2015년 11월 4일 수요일로 기록되어 있다. 구로시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세 번째 목공교실이었는데 제법 여러 명의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안경점을 하는 사장님도 있었고, 함께 온 부부이 눈에 띄었다. 직장인들도 여럿 있었는다.
약간의 긴장과 살레임이 교차되며 첫 수업이 시작됐다. 첫날이니 만큼 공구 사용법과 기초지식 같은 걸 알려주고 이후 일정 전달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추측과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다짜고짜 삼나무 판재를 들이밀고는 모니터 받침대를 하나 완성해 내야 집에 보내 준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름의 추측이 무너진 나에게는 딱 이런 느낌이었다.
처음 손에 받아 든 삼나무는 가볍고 매끈했다. 아니 세상 첨 접하는 단단한 부드러움이라는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강하게 풍겨온 삼나무의 향은 아직도 잊히지 않고 후각의 어딘가에 남아있다. 이전의 일상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향이라는 게 비누나 샴푸, 방향제 같은 인공향이 대부분이고, 천연향이라야 과일에서 풍겨 나오는 달달한 향이 전부였는데 이 삼나무의 향은 그동안은 느껴보지 못한, 나만 몰라서 억울한 마음이 생기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본격적인 목공수업이 시작됐다 안경 쓴 안경점 사장님이 제일 손재주가 좋아 보였다. 나는 아직 반도 만들지 못했는데 안경점 사장님은 벌써 완성, 함께 온 부부도 얼추 마감을 하는 거 같았다. 출판사에 근무한다는 마케팅 팀장님과 나는 비슷한 속도로 삼나무를 자르고 드릴로 구멍을 뚫고 나사못을 박아 모니터 받침대의 꼴을 갖춰가고 있었다.
가구를 만드는 것은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망치로 못을 박아 만드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테이블 쏘’라는 탁구대만 한 기계에 커다란 목재 원판을 올리고 필요한 크기로 재단해냈다. 디지털화되어 있어서 몹시 편리한 기계였다. 재단한 나무는 목재용 드릴비트로 미리 나사못이 들어갈 길을 뚫어 놓고 다시 나사못으로 튼튼하게 체결하는 방식이었다. 그냥 못을 박았다면 못이 들어갈 공간이 없기 때문에 나무는 결대로 갈라지거나 못이 들어가는 부분이 터져 나갔을 것이다. 전동드릴과 전동드라이버가 한 쌍으로 필요한 작업이었다.
왼쪽이 못 길을 미리 뚫어주는 드릴비트, 오른쪽이 나사못을 조여주는 드라이버 비트가 장착된 전동드라이버,
대체 이런 기초적인 지식도 모르고 스스로 손재주가 좋다고 착각하고 있었을까를 증명해주는 시간이 쭉 흐르고 모니터 받침대의 형태를 갖추었다. 마지막으로는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샌딩작업을 했다. 이것도 손으로 사포질을 할 것이라는 원시적인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동그란 사포를 동그란 회전판이 달린 스팀다리미 같은 기계에 붙여서 작동시키니 웨에엥 소리를 내며 빠르게 회전해 나무의 표면을 다듬어준다. 이런 기계 샌딩작업으로 나무의 결도 살아나 촉감이 월등히 좋아지는 데는 채 2~3분이 걸리지 않았다.
마감 중인 모니터 받침대, 왼쪽이 보이는 것이 원형 샌더.
표면에 마감 칠을 하면 삼나무 향이 갇혀 버리게 되니 오일이나 바니시 마감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각자의 완성품을 놓고 보니 안경점 사장님이 월등, 다른 분들은 비슷, 나는 나만 아는 흠집에 자꾸 눈이 갔다. 전 공정을 직접 내 손으로 만들어 보니 내 눈에만 보이는 속살의 상처가 커 보인 모양이다.
다 만들어진 모니터 받침대를 들고 버스를 타고 보험회사에 가서 서류를 접수하고 다시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손에 쥔 삼나무에 눈이 갔다. 아무런 형태가 없던 판재를 자르고 맞추고 고운 사포로 다듬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해 탄생한 새로운 쓰임새를 가진 나무를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이걸 내 손으로 만들었다니깐!
완성된 삼나무 모니터 받침대
여담 하나.
몇 년이 흐른 지금 다시 보니 이 모니터 받침대는 모서리도 딱딱 맞지 않고 드릴 구멍도 제각각이다. 그래도 내 눈에만 예뻐 보이는 세상 신기한 물건 중 하나.
여담 둘.
다음 해 제주도에 갔을 때 절물 자연휴양림에 빽빽이 올라선 나무들이 삼나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려니숲길의 아름드리나무도 삼나무고, 붉은오름의 높이 솟은 나무들도 삼나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