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도마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당장에 필요한 것은 책상, 의자, 책꽂이 같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가구를 만들면서 습득되는 기능과 기술에 대한 성취감도 한몫한다.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며 살살 난이도를 높여 나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직접 만든 가구들로 집안을 제법 채우고 나니 조금 더 디테일한 부분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집성목이 아닌 통원목에 관심이 생기거나, 당장의 실용적 쓰임세가 아니더라도 일상을 환기시켜주는 오브제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그냥 나무여서 좋은 것이 도마다. 나무의 향기가 다가오고, 나이테와 결이 보이기 시작하며, 그대로 일상에 있는 것으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경험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당신의 도마
창고를 정리하다가 오래된 도마를 발견했다. 아마도 아버지가 만들고 엄마가 쓰던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여기저기 패이기도 하고 갈라져 있어, 세월의 흔적을 몸으로 담아내고 있는 두껍고 단단한 느티나무 도마였다. 더 이상 갈라지지 않게 하려고 대못이 박혀 있었고, 칼질을 한 자국이 파이고 파여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모양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닳고 닳아 날렵해져 버린 엄마의 부엌칼 자국일 것이다. 똑똑똑 명량한 소리를 내었지만 식구들의 끼니를 차려 내느라 하루에도 수십 번 자기 몸을 두드리던, 가난한 칼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는 것이다.
도마를 공방에 가져다 대못을 빼내고 썩어 버린 부분을 잘라냈다. 대패로 아래 부분의 수평은 잡아주었지만 칼질로 패인 배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당신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사포질을 하고 좋은 주물 손잡이를 달아 두었다.
살림을 꾸려나가는 일
나이 든 아들이 장가를 갈 때, 엄마는 우리 부부에게 부엌칼과 도마를 장만해 주셨다. 독일제인가 하는 유명 브랜드의 세트였는데 얼마 못하고 칼날이 부러져버렸다. 뭔가 꽝꽝 얼어있는 걸 강제로 자르려다 일어난 일이었다. 도마는 아직도 쓰고 있는데 재질이 뭔지는 모르지만 합성수지 느낌의 것인데 이것 하나만 사용했었다. 살짝 비틀리기도 하고 칼자국이 당연히 있으며, 뜨거운 냄비를 내려놓은 적이 있었는지 아주 살짝 눌은 자국이 있기도 하다. 낡았지만 도마를 버릴 생각을 없어서,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앉은 이 도마를 보조할 작은 원목 도마를 하나 새로 만들어 채소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요즘 여러 종류의 원목으로 도마를 만들고 있다. 그동안 만들어 온 도마는 대게 지인이나 집안사람들에게 선물을 해왔다. 따뜻한 나무의 질감을 통해 마음을 전달하고, 누군가의 삶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는 생각도 담아왔다. 하지만 정작 내가 쓰는 도마는 없었다. 요즘, 내가 사용할 요량으로 느티나무, 캄포, 월넛, 편백 같은 여러 수종으로 도마를 만들어 보았다. 칼도마로 쓰기에는 너무 작은 원목은 플레이팅 도마가 되었다. 당분간은 살림을 잘 꾸려나가라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낡은 도마와, 내 살림을 지켜나가 보려 내 손으로 만든 원목 도마를 같이 사용해 보려고 한다. 원목 도마는 이렇게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하는 당부이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