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속사정 ㉑ 에필로그
날이 풀렸다. 그리고 땅이 녹았다. 땅이 녹았다는 것은 이제 땅을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겨우내 얼어 있던 땅에 퇴비를 뿌리고 밭갈이를 하면, 이미 새로운 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가을, 겨울의 텃밭 작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농사철이 성큼 앞에 와 있다. 아직 새 텃밭에 대한 계획이나 준비가 부족해서 마음이 조급하긴 하지만 어차피 벌어질 일이다. 내 마음에 따라 꽃 피고 지는 일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듯이 농사철도 그렇게 시작된다. 그저 이 시간에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십여 년간 일구어온 텃밭은 내 삶을 이루는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봄, 여름, 가을의 주말이면 빠짐없이 텃밭으로 나가 씨앗을 심고, 가꾸고, 돌보고, 수확했다. 상추며 고추, 토마토, 감자, 배추 같은 것을 얻어 가족들의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었는데, 양도 제법 많아 푸성귀가 떨어지는 날은 없었다. 물론 땡볕 아래에서 풀을 멘다거나, 삽 하나로 밭을 갈아야 하는 노동은 감수해야 했다. 가족과 함께 다른 여가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것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럼에도 텃밭을 일구며 무엇을 얻었는가?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텃밭의 시간은 ‘돌봄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경쟁과 비교와 성과를 얻는 것으로 이어온 사회생활이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고, 살피고, 함께하는 일에는 인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래 생활하다 보니 관계를 돌보는 방법을 못 배우거나, 잃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씨앗을 그저 뿌려 놓는다고 싹이 트지는 않는다. 필요한 수분과 양분이 공급되어야 하고,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잎이 시드는 것도 이유가 있고, 열매가 실하지 않으면 그 또한 합당한 원인이 있다. 오래도록 살펴야 하는 일도 있고, 즉시 조치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요모조모 잘 돌봐야 푸르고 싱그럽다. 사는 것도 그렇다는 것을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된다. 텃밭을 통해서다.
물론 이 돌봄을 익히는 과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겨울은 텃밭을 쉬는 시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자신을 향한 돌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텃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