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목공 별책부록 : 그것도 알고 싶다.
‘솥뚜껑! 홍의장군 곽재우가 큰 소리로 명령하면 의병들은 일제히 등에 둘러메고 있던 무쇠 솥뚜껑을 방패처럼 앞으로 내밀었다. 일본군의 조총 탄환은 이 솥뚜껑을 뚫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의 의병에 조직되어 있었다는 솥뚜껑 부대다. 이 솥뚜껑 부대가 조총을 막으면 뒤에 섰던 불화살 부대가 화살에 불을 붙여 솥뚜껑 사이사이에서 불화살을 쏜다. 일본군은 위력적인 조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다.’
진짜냐고? 모른다. 어릴 적에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조선왕조 오백 년의 임진왜란 편인지, 의병을 다룬 특집 드라마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솥뚜껑 장면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는데, 이 앞 장면에 일본군의 조총 앞에 맥없이 무너져가는 조선군과 의병들의 모습이 연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억울하고 참담한 모습만 보다가 솥뚜껑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순간이 어린 마음에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실제 역사에서도 솥뚜껑 이야기가 언급되기도 하지만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드라마 같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군의 조총은 위협적인 무기였다. 발사되며 나는 굉음부터가 그렇고, 긴 사거리도 그렇다. 탄환의 속도도 빨라서 피하기 어려운 무서운 무기였음이 틀림없다.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사(螺絲 : Screw)'에 대한 것이다. 목공에서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데 쓰는 나사 또는 나사못 말이다. 그런데 왜 임진왜란과 조총 이야기냐고? (얘기가 멀리 갔지만 다시 돌아온다, 때때로 이러는데 너무 걱정은 마시라.)
조총의 핵심기술이 이 나사에 있다. 일본이 포르투갈로부터 조총 제조 기술을 전수받는 데 있어서도 이 나사 제조 기술 때문에 상당히 애를 먹는 것은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조총을 분해해 똑같이 만들어 보았지만 화약이 터지는 순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몸체가 부서져 버리거나, 용케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어도 불발탄을 꺼내거나, 고장을 수리하기가 어려웠다. 이후 어렵게 암나사와 수나사를 깎는 기술을 입수해서 조총을 완성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조총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이 나사 깎는 기술이 아주 중요했다. 해서 나사못을 깎는 장인을 따로 양성했는데 그 이름을 '나사정장(螺絲釘匠)'이라 했다. 폭발적인 압력을 견디면서도 안전하고 쉽게 조이고 풀 수 있는, 조총의 핵심 기술이 바로 이 나사에 있었던 것이다.
나사가 이렇게 큰 힘을 가질 수 있는 비밀은 일반 못과는 사뭇 다른 나사못의 모양에 있다. 나사 기둥 부분에 산처럼 솟아 있는 부분이 나사산(山,) 나사산과 나사산 사이를 나사골(谷), 그리고 나사산에서 나사산까지의 거리를 피치(Pitch)라고 한다. 이 부분 때문에 일반 못에 비해 접촉 표면적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튀어나온 나사산으로 인해 강력한 결합력을 가지게 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이 나사가 표준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각종 무기의 수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나사봉의 크기와 나사산의 각도 등의 규격을 정했다.
나사의 역사에 빼놓은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십자 머리 나사못의 발명이다. 1930년대, 미국의 라디오 수리공 ‘필립스’씨는 일자(-) 홈이 있는 나사 머리가 자꾸 뭉그러져 나사를 빼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예비 홈을 하나 더 파놓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십자(+) 머리 나사다. 처음에는 일자 드라이버의 예비 홈이었지만 십자드라이버까지 만들어 사용하니 힘을 더 잘 받아 쉽게 조이고 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필립스 씨는 ‘필립스 스크루 컴퍼니’라는 회사를 창립해 십자 머리 나사못을 양산했다. (우리가 아는 믹서기 만드는 '필립스'와는 다른 회사다) 이후로 규격화되고 일반화된 십자 머리 나사못을 '필립스 헤드(Phillip's Head)'라 부르게 되었다.
이제 나사못이 사용되지 않는 곳은 없다. 우주로 쏘아 올려지는 로켓이나, 생활을 바꾼 스마트폰까지 나사못 하나가 성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목공방에 막 돌아다니는 작은 부품이라고 아무렇게나 사용할 일이 아니다. 인류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도구라 불리니 말이다.
<목공에서 사용하는 나사못의 종류>
목공용 나사못은 일반 나사보다 나사산에서 나사산까지의 거리(Pitch)가 긴 편이다. 이러면 나사못이 한 바퀴 회전했을 때 전진하는 거리(Lead)가 길어진다. 나사못이 나무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더 잘 파고들기 때문에 작업에 유리하다. (참고로 Pitch와 Lead의 값은 동일하다.)
① 접시 머리 나사못 (Flat Head)
목공에서 주로 사용하는 나사못이다. 머리 부분이 접시 모양으로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목공에서는 보통 머리 부분이 목재 안으로 매립될 수 있도록 이중 드릴비트로 못길과 홈을 파준 후 체결하는 게 보통이다.
② 와샤 머리 나사못 (Washer Head)
나사와 부재의 결합력을 높이기 위해 나사를 끼울 때 같이 사용하는 동그란 링을 Washer라 하는데 이 와샤가 달려있는 나사못이다. 나사 머리 때문에 목재가 손상되지 않고, 안정적이면서도 결합력을 높여준다. 서랍이나 문의 손잡이를 달 때, 싱크대 등에 사용한다.
③ 트러스 나사못 (Truss Head)
머리 모양이 둥글기 때문에 목재 위로 돌출되는 특징이 있다. 목공에서 많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테이블의 하단, 다리 고정 등에 사용된다.
<드라이버 비트의 종류>
앞서 말한 것처럼 목공에서는 십자 모양의 홈을 가진 나사못을 거의 사용하므로 이를 체결하고 푸는 드라이버 비트 또한 규격에 맞아야 한다. 십자 머리 나사못을 발명한 필립스 씨의 머리 크기를 말하는(?) Phillip's Head의 약자인 'PH'로 표기한다. 크기순으로 PH000, PH00, PH0, PH1, PH2, PH3, PH4 등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크기는 PH2다. 별 모양 홈의 나사못과 짝을 이루는 비트는 ‘포지 헤드(Pozi Haed)라 하며 'PZ'로 표기한다. 보통 비트에 표시되어 있다.
<나사못 체결 팁>
나사못의 머리가 뭉개지거나 나무를 갈라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동드라이버 토크가 너무 세게 설정된 경우, 또 하나는 나사못과 드라이버 비트가 수직이 아닌 경우이다. 당연히 수직으로 나사못 작업을 할 것 같지만 의외로 잘못된 자세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전동 드라이버 토크 확인, 바른 자세 유지를 항상 의식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