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때때로 ‘장래 희망’을 묻는 설문이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기억에는 과학자나 선생님이라고 적어내거나 발표한 것 같은데, 진짜로 희망한 것은 아니고, 질문을 하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듣기에 그냥 무난한 답을 했던 것이었다. 사실 정말 되고 싶었던 것은, 오늘 처음 밝히는 것인데, 바로 ‘마징가 제트’였다. 지구를 점령하려는 헬 박사와 아수라 백작에 맞서 싸우는,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그 ‘마징가 제트’ 말이다. 특히나 주먹 불끈 쥔 팔이 불을 뿜으며 발사되는 ‘로케트 펀치’를 꼭 장착하고 싶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팔뚝이 발사돼 악당 로봇의 몸통을 뚫어 버리고 기어이 승리하는 멋짐이라니! ‘나에게도 로케트 펀치가 필요해’라고 생각했지만 장래희망을 마징가제트라고 써냈다가는 엄청 혼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가슴속에 꼭꼭 묻어 두고 있었다.
중학생 이후로는 ‘커서 뭐 될래?’라는, 다소 어감이 다른 질문을 받다 보니 이런 꿈은 상당히 실용적으로 바뀌었다. 마징가 제트는 너무 비현실적이니 ‘나와라, 가제트 만능 팔’하고 외치면 망치, 드라이버, 돋보기, 렌턴 같은 온갖 공구를 든 관절 팔이 쑥 나오는 ‘가제트 형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래, 내가 악당들을 물리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다소 어설프지만, 원하는 공구가 다 튀어나오는 ’ 만능 팔‘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인생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바꾼 것이다. 물론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이런 꿈을 접은 것은 스무 살 넘어, ‘팀 버튼’ 감독의 영화 ‘가위손’을 보고 나서다. 가위손으로 사랑받았지만 가위손 때문에 모든 걸 잃게 되고, 폐허가 된 성에서 홀로 애닮은 가위질로 얼음을 조각하고 있는 주인공 ‘에드워드’는 팔팔한 이십 대 청년의 롤모델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마징가 제트에서 가제트 형사로 이어지던 꿈은 가위손에 이르러 ‘그래, 가위손을 가지고 있어 봐야 애닮은 생을 깎고 또 깎으며 외롭게 살아야 할 거야’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그리곤 꿈은 아파트나 자동차 같은, 보편적인데 이루기 어렵고, 노동 집약적인데 운이 따라야 하는 것들로 바뀌었다.
그런데! 잊고 지내던 로케트 펀치, 만능 팔, 가위손의 꿈이 다시 스멀스멀 살아나기 시작했으니, 이게 다 목공 때문이다. 목공 공구의 세계는 실로 놀라웠다. 굉음을 내뿜으며 커다란 나무판을 반으로 잘라버리는 ‘테이블쏘’가 그랬고, 휘어진 나무를 먹고는 평평한 수평을 만들어 뱉어내는 ‘전기 대패’도 한없이 신기했다. 사실 전동 드릴드라이버도 몹시 신통했다. 이렇게 쉽게 못 길을 내고 나사못을 박을 수 있는데 여직까지 왜 몰랐을까 싶었다. 그리고 또 눈에 들어오는 대단한 공구가 있었는데 바로 ‘트리머’였다. 나무의 모서리를 다듬기도 하고 홈을 파내는 데 사용하는 공구다. 한 손에 쥐고 사용하는 공구인데 이게 생김새는 로케트 펀치요, 쓰임새로는 만능 팔이고 작업 결과는 마치 가위손으로 다듬어 낸 듯했다.
‘트리머’는 흔치 않게 손에 쥐고 사용하는 전동공구다. 물론 ‘오비탈 샌딩기’나 전동드라이버 같은 것도 있지만 쓰임새가 일정하고 회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트리머는 이 공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강력하게 회전하는 모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처음 손에 잡고 스위치를 누르며 흠칫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공구를 내가 손에 들고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첫 순간만 지나면 나무를 자유롭게 깎고 다듬을 수 있다. 부재를 움직여서 가공해야 하는, 바닥에 고정된 공구를 이용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내 손이 가는 대로 목재들이 반응한다.
이 트리머의 특징 중 하나는 비트 날을 갈아 끼워서 사용하기 때문에 대단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하는 모양으로 모서리를 가공하는 건 기본이다. 지그를 이용해 컴퍼스처럼 중심을 고정하고 트리머를 돌리면 원하는 대로 목재를 동그랗게 잘라낼 수 도 있다. 서랍장이나 책꽂이 뒤판을 끼우는 홈도 가공할 수 있고 서랍의 손잡이도 깔끔하게 파낼 수 있다. ‘그래 비트가 필요하구나’, 처음 목공방에서 트리머를 접하고는 당일 바로 공구상가에 가서 비트 세트를 구입했었다.
목재를 가공하는 목공 기계와 공구는 수없이 많다. 다 각각의 기능과 역할이 있다.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일을 수행하지 않는다. 트리머는 이 여러 공구들이 협동해서 만들어낸 작업물에 미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 이름처럼 다듬고, 둥글게 만들고, 홈을 파서 새로운 감각을 불어 넣는 것이다. 자르고 조이고 붙여서 만들어진 사각형이 비로소 다듬어져 완성되는 순간이다. 마치 마법 같은 가위손이 스친 듯 말이다.
트리머 작업
트리머를 이용해 둥글게 다듬은 원목 도마 모서리
<트리머? 루터?>
트리머와 같은 쓰임새로 조금 더 큰 루터(라우터)라는 공구가 있다. 둘의 차이는 체급이 다르다는 것이다. 루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더 큰 비트를 끼워 사용할 수 있지만 크기가 크고 두 손을 이용해야 한다. 헤비급이라 말할 수 있겠다. 트리머는 라이트급으로 한 손으로 사용하기 편리하다. 게다가 기술의 발달로 크기에 비해 능력이 출중해지고 있으니 웬만한 작업은 트리머로도 모두 가능하다.
<이런 트리머, 누가 만들었을까?>
최초의 휴대용 '루터'는 미국의 Kelley Electric Machine Company가 1906년 판매한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서 1930년대에는 Stanley Works사의 제품이 출시되었고, 1949년에 DeWalt사가 현재와 같은 형태의 루터(트리머)를 개발, 판매했다. 이후 DeWalt사가 Black & Decker (우리나라에서는 홈쇼핑에서 전동드라이버 많이 파는)로 인수되었고 다시 Stanley Works사가 Black & Decker를 합병하면서 Stanley Black & Decker가 되었다. DeWalt는 이 회사의 브랜드로 남았다. 현재는 이 회사 이외에도 마끼다, 밀워키, 보쉬 등에서 루터와 트리머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트리머 사용 가이드>
현재 우리 공방에서는 마끼다(まきた)社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비트를 끼우는 부분을 ‘콜릿 척’이라고 하는데 6mm 비트를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전체 길이는 200mm, 무게는 1.8kg이다.
① 온오프 스위치와 속도 조정 다이얼
사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콜릿 척(Collet Chuck)’에 원하는 비트를 끼우고 고정한 후, 온오프 스위치로 작동시킨다. 속도 조정 다이얼이 있는데 1~6까지 회전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보통 목공에서는 4~6단으로 사용한다. 1~2단의 저단 가공은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등의 재료에 사용된다.
② 작동 방향
비트는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방향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재료를 절삭한다. 그러므로 트리머의 진행방향은 외곽선을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같은 원리로 안쪽 같은 경우에는 '시계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 부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공구가 움직이는 것이므로 작업할 때 너무 빠르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무가 깎여 나가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트리머의 작업 방향
③ 가이드의 이용
직선 가이드나 원형 가이드, 기울기 베이스 등을 이용해 작업할 수 있다. 또 플런지 베이스를 이용하면 루터처럼 양손으로 잡고 안정적인 작업도 가능하다.
직선가이드(좌)와 플런지 베이스(우)
④ 비트의 종류
비트는 칼날 부분과 몸통에 해당되는 생크(샹크, Shank, 자루)로 이루어져 있다. 날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비트가 있는데 날의 끝부분에 동그란 링이 달린 것들을 ‘라운드 오버 비트’라고 부르며 모서리를 다듬는 데 사용한다. 일자 비트는 홈을 파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들이다. 보통 비트를 담는 케이스에 가공된 모양을 그림으로 표시하고 있다.
* 비트를 끼울 때 완전히 안으로 밀어 넣고 고정시키면 오히려 콜릿 척이 비트를 완벽히 잡아주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비트를 밀어 넣고 다시 3mm 정도 앞으로 꺼낸 후 완전히 조여주어야 한다. 반대로 너무 비트를 앞으로 빼는 경우가 있는데 비트 날과 생크가 연결되는 부분이 부러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바로 그 날 산 트리머 비트
⑤ 작업 유의사항
특히 홈파기의 경우는 여러 번 조금씩 작업해야 공구에 부하가 걸리지 않고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다. 매끈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트리머를 밀어가는 속도 역시 너무 빠르면 재료가 잘 절삭되지 않고 비트에 무리를 주게 되니 유의해야 한다.
둥근 머리 비트를 이용한 홈 파기. 여러 번 작업해 돌출되지 않는 서랍 손잡이를 완성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