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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반장 Jan 08. 2024

나도 나이테가 있었으면 좋겠다.

쌩초보 우드 카빙 도전기 ⑥ 느티나무 요리 수저

도시에 오래 살다 보니 나무의 나이테를 볼 일은 별로 없다.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나이테는 병들거나 삭아서 베어진 가로수의 그것이다. 6512번은 3분 후 도착한다고 번쩍이는 버스 정거장 전광판 아래쪽, 보도블록 위로 덩그러니 남아있는 나뭇등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드러난 나이테가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해 하나둘 세어보았다. 작은 동심원부터 출발해 한 20여 개를 세었는데 버스가 도착했다. 창가에 앉아 밖을 보며 내가 본 나뭇등걸의 나이테는 플라타너스의 속모습이겠구나 싶었다.

      

사람들은 보통 나무의 생김새를 보고 이름을 떠올린다. 나무의 모양을 수형(樹形)이라고 하는데 나무의 큰 줄기, 가지, 이파리 같은 것을 종합해 알 수 있는 나무마다의 특징을 말한다. 거북이 등딱지 같은 껍질에 구불구불한 줄기, 사시사철  파란 바늘 같은 이파리를 달고 있다면 소나무. 밝은 줄기와 가지에 세모난 쥘부채 모양의 이파리가 달려있고, 가을에 노랗게 물든다면 은행나무. 쭉쭉 하늘 높이 곧게 뻗은 적갈색 줄기와 가지에 바닷가에 있는 퉁퉁마디를 책갈피에 끼워 눌러놓은 듯 납작한 이파리가 달렸다면 편백나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나무의 종류를 분류할 수는 있지만 각각의 나무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자신이 뿌리내린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의 기록을 나이테에 담았다. 보통은 1년에 하나씩 나이테가 생겨나니 이걸 세는 것만으로도 나무가 살아온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연륜(年輪)이라고도 부른다.      


나이테는 숫자 이상이 것도 담고 있다. 봄이 되어 나무에 물이 오르고 유록색 잎이 찬란한 초여름까지 나무의 성장은 절정에 달한다. 이 시기 생겨나는 부분을 춘재(春材, spring wood) 또는 조재(早材, early wood )라고 부르는데 조직과 색이 모두 맑고 부드럽다. 늦여름에서 가을을 거치면서는 성장이 더뎌지는데  추재(秋材, autumn wood) 또는 만재(晩材, late wood)라고 부른다. 조직이 치밀해지고 색은 짙어진다. 이 둘은 합쳐져서 사계절을 보낸 하나의 나이테가 된다. 


이런 나이테는 1년에 하나씩 생기는 게 보통이지만 특별한 경우도 있다. 초여름에 갑자기 날이 너무 차가워진다거나 가을에 불볕더위가 찾아온다거나 하면 나이테가 두 개 만들어지기도 하고, 혹독하게 덥고 추운 게 반복되고 척박한 땅에서 버틴 나무에는 나이테가 생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따뜻하고 해가 잘 드는 쪽 나이테의 폭이 넓고, 수분이 충분히 잘 공급되는 곳에서는 나이테가 안정적이고 고르다. 변화무쌍한 세월을 수 십 년 혹은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의 나이테는 좁고 넓고 짙고 옅다. 맑고 어둡고 얕고 깊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걸 인간사의 희로애락이나 오랜 세월 축적된 능력이나 지혜에 비유한다.      


손잡이가 기다란 요리수저를 깎아보기로 했다. 우드카빙을 시작하면서 나이테를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나뭇결에 따라 나무를 깎는 칼과 조각도를 쓰는 방향이 다르고 힘의 조절에 유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나무의 일생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구불구불 짙고 옅게 흐르는 나이테를 가진 느티나무 한 토막을 잘라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도 나이테가 있었으면 좋겠다.”           





느티나무 요리수저 카빙노트      


1. 나뭇결을 고려해 요리수저의 블랭크를 만든다. 이번에는 나이테의 동심원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도록 했는데 눈에 보이는 부분 아니어서 여러 번 가늠해 자리를 잡았다.    

  


2. 수저의 오목한 부분, 뒤쪽, 손잡이 순으로 나무를 깎아내어 대강의 모양을 잡는다.      



3. 요리수저는 손잡이가 길기 때문에 중간중간 확인하며 모양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한다. 초보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4. 수저의 오목한 안쪽을 나뭇결에 따라 정리하고 최종 마무리한다.      



5. 미네랄 오일을 바르고 하루 있다가 닦아내고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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