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만 따라준다면, 조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여건을 보장하자
야근을 하던 어느 날, 화장실을 가다가 마주친 찬우가 나에게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넸다. 갑자기 나에게 감사하다고 하길래, ‘얘가 무슨 속셈이지?’하며, 물어보았다. 찬우는 KCTC를 하다가 팔 신경을 다치어 치료를 받는 친구였다. 예전에는 병원을 가는 게 제한사항이 많았는데, 내가 부임하고 나서 병원을 가는 기회를 보장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도 나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찬우가 얘기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괜스레 뿌듯했다. 왜냐하면, 나의 의도대로 중대가 굴러가고 있는 것이 찬우를 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중대 병력들이 꾀병이든 아니든 나는 무조건 병원을 보내고, 웬만해서는 CT, MRI까지 찍게 한다. 결과를 보고, 그들을 겁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꾀병인지 병인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용사들의 불안함을 달래주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생도 때 무릎이 아프고, 발목이 아파 ‘이걸 MRI를 찍어야 하나, CT를 찍어야 하나, 혹시 신경이나 연골에 문제가 있으면 어떡하지?’라며 고민했던 적이 많았다. 이런 불안감은 내가 경험했던 것이었고, 결코 나의 자식들인 중대원들이 이런 불안감에 휩싸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좋지 않은 의도로 꾀병으로 속이는 용사들도 간혹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같이 생활한 우리 7중대는 그럴 친구들이 없었다. 그리고 꾀병도 병이다.
그래서, 팔 신경이 아픈 찬우에게 어떻게든 병원의 기회를 보장해 주었다. 여기서 규정을 무조건 찾아보았다. 그리고 행정병과 친구와 의사 친구에게 의견을 구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찬우에게 안된다며 설명해 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육군 규정 상에도, 실제 의사의 소견으로도 찬우가 군대 밖에서 치료를 못 받을 이유가 없었고, 나는 찬우의 치료 여건을 보장해 주었다.
그렇게 찬우는 나에게 한 발짝 다가와주었고, 나는 그런 찬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찬우는 자신의 미래에 관해 고민이 많은 친구였는데, 진로 상담도 해주고 찬우의 전역 날까지 잘 지냈다. 물론 처음에는 찬우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대화로 서로의 감정을 잘 풀어내 이렇게 찬우와의 추억도 잘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