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잡으면,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설을 맞아, 중대원 병문안을 가기로 하였다. 특히 이번 설 연휴는 길어서 대대에서는 미리 다녀오라고 얘기를 하였다. 중대원 몇십 명 중 병원에 입원한 친구들은 3명이었는데, 1명은 안동이라 멀어서 못 다녀오고, 1명씩 포반장과 나누어 다녀오기로 했다.
내가 만날 친구는 성윤이었는데, 정신적으로 힘든 친구라 외부 병원에 입원한 친구였다. 미리 병원에 연락하여 면회를 잡았는데, 확실히 정신건강의학과는 외부 손님에 민감했다. 원내 산책이라고 1시간 30분가량 볼 수 있는 면회는 직계가족이 동반되어야 했고, 직계가족이 없어도 되는 일반면회는 30분 밖에 시간이 없었으며, 외부 외출은 금지였다. 아쉽지만, 입원해 있는 성윤이에게 연락하여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고,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해서 포장해서 갔다.
병원은 매우 컸다. 의정부 을지대병원이었는데 밖에서 보았을 때는 웅장하고, 내부는 엄청 깔끔했다. 이런 병원을 자유롭게 못 돌아다니고 병실과 면회실만 오갈 성윤이를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그렇게 들어온 면회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30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 급하게 배달 봉지를 뜯고 음식 세팅을 하였다. 성윤이 얼굴은 군대에 있을 때보다 백만 배 밝아보였다. 물어보니 확실히 군대에 있을 때보다 병원에 있을 때 마음이 놓인다고 하였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사람은 거리가 있어야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했던가. 중대에서는 중대장과 중대원의 관계라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었지만, 작은 3평 남짓 면회실에서는 우리의 거리만큼 마음도 더 가까워진 듯했다. 옆 대대도 같은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한 이야기, 병원 밥은 생선만 나와 군대 밥이 그립다는 이야기, 어쩌면 군대보다 통제가 더 심하다는 이야기 등 여러 주제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나오면서 마음에 박힌 한마디가 있었다.
“이렇게 면회 오시는 분은 처음이에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면회를 오는 것이 최초였다. 그러면서 문득, 푸코의 『광기의 역사(2020)』가 떠올랐다. 처음에 다 같이 생활했던 환우들을 광기라는 단어 아래 사회로부터 격리시키어 그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역사가 광기의 역사다. 이곳, 의정부 대학병원에서도 푸코의 그 말이 실현이 되는 듯했다. 그들은 갇히고,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잊히어 간다. 그들은 ‘광기’라는 단어 아래 일종의 구속을 받고 일반 사회와 점점 멀어져 간다. 면회 온 사람이 내가 최초라는 게 어쩌면 그 반증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신경 쓸 겨를도, 이유도 없다. 다만, 군대라는 사회에서 입실이라는 명목 아래 그저 ‘잘’ 관리되고 있다고 느껴지며 우리에게 그들은 서서히 잊혀간다.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 기분도 며칠 지나면, 언제 그 친구가 있었냐는 듯 홀연히 사라져 버리곤 한다. 어쩌면 구슬픈 ‘광기’라고 불리는 그들의 역사는 바삐 굴러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양한 방법으로 잊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