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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개국에서 뒤집어본 유럽과 켈트

혼 빠진 껍데기 켈트족

by 윤옥환

영국 제도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잉글랜드, 웨일스를 모두 통틀어 지칭한다.


잉글리시 하면 영국 사람, 언어, 문화 등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면 이해가 빠르겠다.

영국 제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국기도 대영제국 국기가 있고 영국 국기 두 가지가 있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는 따로 독립된 국기를 가지고 있다.

1922년에 아일랜드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아일랜드는 한반도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 비극적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아일랜드의 동북부에 위치한 북아일랜드는 내전으로 혼란의

시간을 겪었다.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의 영토이지만 영국 편과 아일랜드 편으로 갈려있다.

궁극적으로는 종교 세력 간의 다툼이다.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영역 분쟁이다.

서로 간에 타협과 일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지경이다.


북아일랜드의 분열과 대립은 오랫동안 상호 희생과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아일랜드와 함께 독립을 원하는 가톨릭과 영국에 속하기 원하는 개신교도 사이 분쟁은 오래 지속되었다.

식민지 국가가 독립 후에 겪는 내전인 셈이다.

북아일랜드는 극심하고 과격한 테러와 파괴로 얼룩졌다.


아일랜드는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과 많은 희생을 치렀다.

오늘날 대영제국 하면 영국 본토,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를 묶어서 이르는 말이다.


대영제국은 영국의 주권이 미치는 추상적인 의미가 포함된다.

로마의 이주민들이 유입되었다.

앵글로색슨족이 대량으로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영국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가 변화를 거듭하였다.

영국의 일부 원주민과 켈트족은 외침을 피하여 이동하였다.

오늘날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는 대영제국의 영토 하에 있지만 각각의 자치권을 인정받는다.


런던 광역시에는 '런던시' 또는 '스퀘어 마일'이란 구역이 있다.

대영제국 내의 바티칸이라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바티칸과 유사한 법률적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런던시 자치시장, 자치경찰, 자치법률이 존재한다.

런던시는 영국 내에 있는 별개의 특수구역이다.

전체 공간이 1 스퀘어 마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의 맨해튼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잉글랜드'라는 명사는 5~7세기경 생겨났다.

북유럽 독일계의 '앵글로족''색슨족'이 대거 이동한 후 지칭한 '앵글로란드'에서 기원하였다.

스코틀랜드 남부에서 런던까지는 주로 앵글로족이 차지하였다.

영국의 남부는 주로 색슨(작센)족이 들어와 정착하였다.

그 외 외섹스,메르시안, 픽츠 등이 잉글랜드의 구성원이 되었다.


아일랜드에는 기원전 약 1만 2천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고분과 거석문명들이 있다.

아일랜드는 겨울이 혹독하다.

풍토가 매우 춥고 바람이 거세고 땅은 거친 곳이다.

동부 유럽에서 중앙유럽에 걸쳐 켈트족이 살고 있었다.

켈트족들은 서유럽을 향하였다.

이탈리아의 북부지역을 위협했다.

켈트족들은 더 좋은 환경과 도전을 위해 다시 이동을 했다.

로마는 켈트족들을 '갈리'(야만인)이라며 배척하였다.


일부의 켈트 부족은 북쪽으로 향하여 스위스에 거주하였다.

일부의 또 다른 켈트들은 유럽의 남부지역인

스페인의 북부로 이주하였다.

스페인으로 이동한 켈트족들은 '갈라티안'으로 불렀다.

어느 켈트족들은 프랑스 지역인 '골'에 정착하였다.

스위스로 이주한 켈트족들은 '헬베티'라 불렀다.


로마는 켈트족의 출현을 위험한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로마는 지속적으로 켈트족들을 공격하였다.

로마의 대대적인 군사 동원으로 켈트족들은 정주와 이동을 거듭하였다.

프랑스 서쪽 지역으로부터 영국으로 시선을 돌렸다.


약 3천 년 전 켈트족들은 영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1000년 경이다.

영국에 상륙한 켈트족들은 북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거나

정주했다.

영국의 서해안에 있는 웨일스에 켈트족이 정주하여 대를 이어나가고 있다.

아일랜드로 건너간 아이리쉬 켈트족이 있다.

스코틀랜드에는 스콧 게일이 켈트족의 후손이다.


영국의 내륙 잉글랜드에 정주했던 브리톤이 있었다.

앵글로색슨들이 대거 영국으로 이동하여 세력이 강해졌다.

앵글로색슨의 강세와 가중을 피해 브리톤은 프랑스 북서부 지역 브리타니로 이주하게 된다.


브리타니 브레이츠에 정착한 브리톤들은 브레톤이라 한다.

브리타니 브레이츠는 프랑스에 속해있는 소수 켈트 민족이다.

영국에 웰쉬(켈트족)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브리타니(켈트족)가 있다.

브리타니는 프랑스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브리타니의 인구는 약 4백7십만 명 정도이다.

브리타니의 수도는 '렌느'이다.


브리타니 대부분의 인구는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켈트어는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인구 중 20퍼센트만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원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오늘날 켈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5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부분은 70세에 달한 노년층이다.


고대의 켈트족은 한때 앞선 우수한 문명을 날렸었다.

고유의 전통적인 다신교적 신앙을 보전하였다.

높은 정신적 경지에 오른 신적인 제사장 신분들이 있었다.

성자나 현자들의 계급이었다.


드루이드는 유대교의 랍비와 같은 존재였다.

드루이드는 과거 한반도의 '도사'였다.

드루이드는 지식이 깊고 혜안을 가진 신인으로 대접받았다.

각 절기마다 종교적 의식을 주관하였다.

현세와 내세를 넘나드는 영적인 존재들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사제들처럼 온갖 주술과 치료술을 주관하였다.


우수한 철기문명 시대를 구가하였다.

전사들은 인내심이 강하고 용맹스러웠다.

예술가들은 고도의 조각, 공예 등의 예술품들을 제작하였다.


로마의 가톨릭이 유럽을 지배하면서 켈트족들은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정신과 신앙에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적인 종교, 문화, 풍습 등이 변형되고 후퇴하였다.

민족 고유 정신이 무너져갔다.

같은 민족 간에 분열과 이견이 빈발하였다.

세대 간의 분쟁과 긴장이 발생하였다.


가장 오래전에 영국을 거쳐서 아일랜드에 정착한 켈트족들이 있었다.

켈트족은 태양신을 숭상하는 다신교인 드루이드교다.

전통 축제 때에는 자연의 불을 신성시하며 피웠다.


고대 켈트 민족들의 전통적 신앙, 풍습, 문화를 간직하면서 강인하게 살았다.

아일랜드에는 고대 습속을 간직하며 살던 켈트 민족이 있었다.

오늘날의 할로윈은 켈트 민족의 추수감사절에서

유래한 것이란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오늘날 성 패트릭은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패트릭은 아일랜드의 켈트족을 뒤집어놓은 역사적 인물이다.

침략자가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매년 3월 17일 아일랜드는 성 패트릭의 날로 지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패트릭은 누구인가?

영국인이라는 설과 아일랜드인이라는 설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영국인이라는 설이 거의 굳어진듯하다.


아무튼 패트릭이 16살 때 아일랜드 침략자 일당에 포획되었다.

아일랜드로 이송당하여 억류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아일랜드에서 약 6년 동안 옥살이를 체험하였다.

옥살이를 하면서 야외에서 양을 치는 업무도 맡았다.

거칠고 험한 자연적 환경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 깊어졌다.

가족과 가정의 음식이 얼마나 그리웠겠는가?

야외에서 전원생활 중에 묵상과 기도생활에 전념했을 것이다.

어느 날 절은 패트릭은 환상을 보았다 한다.

환상이 아니면 꿈이었을 것이다.


유대교에서 모세는 시내산에서 계시를 보았다.

이슬람에서 마호메드는 사막에서 계시를 보았다.


패트릭은 아일랜드를 떠나는 탈출에 성공하였다.

패트릭은 고향을 거쳐 프랑스로 건너갔다.

프랑스에서 레랑 섬의 수도원에 들어가 신앙생활을 했다.

나중에 오세르에서 가톨릭 공부를 한 후에 사제로 임명을 받았다.


로마 교황으로부터 아일랜드 주교로 임명을 받아

아일랜드로 돌아갔다.

패트릭 주교는 북아일랜드에서 성공적이고 왕성한 사역을 수행하였다.

패트릭에 의해 설립된 성당은 3백여 개를 넘었다.

패트릭 주교가 아일랜드에 흔하게 자라는 샴록이라는 세 잎 클로버로 삼위일체를 쉽게 설명하였다.


패트릭에 의해 켈트족은 급속도로 개종을 하였다.

가톨릭의 교리와 설교는 켈트족들을 사로잡았다.

켈트족 대대로 믿어왔던 신앙은 야만인의 신앙으로 치부되었다.

로마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드루이드교는 이단이었다.

전래되어 오던 자신들의 다신교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성당에 모여 예배를 보는 것이 훨씬 그럴듯했다.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나 다름없는 이상적인 도시였다.

로마로부터 앞선 학문과 지식들이 들어왔다.

문화와 사상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다.

아일랜드는 로마에 동화되어갔다.

아일랜드 지식인 사이에는 라틴어가 필수적으로 인식되었다.

선진 로마에서 경제, 문화, 건축, 천문 등에 관한 학문들이

밀려들어왔다.


유럽은 종교개혁하에 개신교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대영제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퇴하였다.

세계의 중심적인 추가 바뀌었다.

영국이 날로 번성하며 팽창하였다.

세계의 곳곳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등을 밀어내었다.

로마의 번성기가 막을 내리고 대영제국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영국의 놀라운 세력 팽창과 더불어 개신교가 힘을 받았다.

아일랜드에는 가톨릭에 이어 상륙한 개신교 역시 급성장하였다.

아일랜드는 영국 중심의 국제정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일랜드는 1600년 경부터 영국의 지배적인 영역 하에 놓이게 되었다.

기독교인 가톨릭과 개신교는 아일랜드를 양분하였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의 세력 확장을 추구하였다.

아일랜드 켈트와 스코틀랜드 켈트인 스콧겔릭은 더 이상 켈트라 할 수 없이 바뀌었다.


고대 켈트어는 이미 사멸 상태로 변하였다.

영어가 모국어로 자리 잡은 지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외세 종교의 침노는 본래의 의식, 사상, 신앙, 풍습을 변화시켜 버렸다.

고유언어가 밀려나고 멸종되었다.

로마에서 기독교(구교)가 공인을 받고 국교로 승인된 이후

기독교는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한때 유럽은 종교의 광란 시대였다.

기독교에 반대하거나 모욕하는 경우에는 처벌을 받았다.

화형식이나 교수형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유럽은 기독교의 전횡에 맞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종교의 모순과 부패에 항거하여 개혁을 요구하였다.

중세의 유럽은 기독교 만능시대였다.

14세기를 지나면서 중세는 근세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인본주의가 발아하였다.

그동안 자연의 신성과 인간의 존엄성은 기독교적 신에

의해 제압당하였다.

자연과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가 위력을 발휘하였다.


아일랜드에서 자신들의 고유언어와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켈트어 교육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다.

전통적인 의상과 축제 등을 복원하는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성과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아일랜드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은 모르는 것이다.

자신들의 고유한 민족 신앙, 언어와 풍습들이 오히려 낯선 세대들이다.

껍데기만 켈트족이다.

패트릭 주교는 아일랜드를 정신적 노예들로 개조하였다.

아일랜드는 본래 주인 자리를 속절없이 내주었다.

자진하여 노예로 들어간 것이다.

패트릭을 성인으로 신처럼 받들면서 기념하는 쓸개 빠진

국민이 되었다.

너무도 감쪽같이 당하였다.

자신들은 알지 못한다.

깨달아도 너무 늦었다.

기독교에 빠졌던 광신의 시대는 지나갔다.

오늘날 영국은 무신론자가 절반 정도이다.

요가와 명상 인구가 더욱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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