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개국에서, 크리스틴은 그 하늘 아래
한국의 딸, 스콧 켈틱의 가문으로
크리스틴 맥컬록은 그곳에 살고 있었다.
2019년 가을 어느 날 여동생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오빠, 보낸 사진 잘 봐요?"
"기억을 살려보면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핸드폰으로 보내온 사진을 살펴보았다.
'이런! 누구야? 조카 아니야?'
'판박이네! 누가 봐도 여동생의 딸인데!'
발신지는 한국 홀트 아동복지회였다.
영문으로 작성된 이메일도 첨부되어 있었다.
여동생에게 보낸 날짜도 있었다.
여동생은 연락을 받았지만 이틀 넘게 혼자만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딸로부터 받은 소식에 실감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동생은 혼자 울었을 것이다.
크리스틴 맥컬록은 여동생 딸의 이름이다.
우리는 여동생의 딸과 34년 전에 헤어졌다.
여동생의 딸은 미국의 맥컬록 집안으로 입양을 떠난 것이다.
서양인들은 성을 보면 그 가문의 혈통이나 유래를 대부분 짐작 가능하다.
매컬록이란 서양인 성은 스코틀랜드 켈틱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대 유럽의 중앙으로부터 퍼져 나갔던 전설적인 족속이다.
대부분이 붉은 머리털을 하였고 턱수염이 덥수룩한 것이 유전적 특징이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정착하였던 고대 켈트가 유명한 편이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스토리는 스코틀랜드 켈트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1985년 이후 옥환이는 산발적이고 지속적인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고문 후유증은 개선되지 않았다.
어머니도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 간신히 대학교를 졸업했다.
여동생은 사랑의 결실로 딸을 낳았다.
여동생은 남자와 함께 하지 못하고 외동딸을 떠맡았다.
최악의 환경에서 여동생은 감당할 수 없었다.
여동생은 막다른 길에 섰던 것이다.
결국 여동생은 딸의 장래를 위하여 입양을 결심하게 이르렀다.
여동생은 용기를 내어 힘든 삶에 저항하며 살았다.
눈물을 삼키고 억지로 미소를 보이면서 살았다.
오빠는 고통 속에 한국을 떠났다.
오빠 또한 그 길 밖에 방법이 없었다.
여동생은 평생 죄인의 심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조카는 조카대로
옥환이는 옥환이대로 흩어져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여동생은 엄마로서 권리와 의무를 포기했다.
친딸을 보내고 모든 욕심도 내려놓았다.
여동생은 혼자 가끔 울었다.
딸을 다시 본다는 희망도 포기하고 살았다.
그런데 미국에 살고 있다는 딸로부터 엄마를 찾는다는 연락이 도달하였다.
우리는 무어라 말을 할 수 있는 염치가 없었다.
딸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는 여동생을
위로하였다.
일단 만나보자고 설득을 했다.
여동생의 딸은 미국의 덴버에 살고 있었다.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한다 했다.
우리가 미국으로 갈 수도 있다고 연락을 보냈다.
크리스틴은 무슨 사정이 있는지 답장을 바로 보내지 않았다.
자신이 없다는 여동생을 간신히 설득한 것인데
조카는 그 사정을 이해 못하였다.
조카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우한 코로나가 발생을 하였다.
그렇다!
조카는 조카대로 심리적인 공황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았던 것이다.
어느 날 미국인 부모와 색이 다른 것을 알았을 것이다.
어느 날 미국인 부모로부터 자신이 입양아라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외롭고 아픈 날들을 견디면서 살았을 것이다.
친엄마에 대한 애증으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친엄마를 찾기로 결심을 했을 것이다.
막상 보고 싶었던 친엄마의 생사가 확인이 되자
심정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엄마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할까요?"
"아빠도 같이 살고 있나요?"
"엄마는 지금 어디 살고 있나요?"
"엄마는 누구랑 살고 있으며, 자식들은 몇 명인가요?"
"엄마는 영어를 얼마나 할 줄 아나요?"
크리스틴 엄마는 다시 마음을 바꾸었다.
모든 연락을 받지 않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우리가 먼저 찾지 않은 것이 얄미웠을 것이다.
그리고 1년 정도 지나갔다.
크리스틴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크리스틴의 복잡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크리스틴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기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엄마가 궁금해요? 엄마는 어떻게 지내는지요?"
"네 엄마는 모든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걱정마라! 삼촌이 잘 타이를게!"
서로가 씻기 힘든 아픔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모녀가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상호 신뢰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는 엄마의 정신적 아픔으로 살고 있다.
입양아들은 평생 자신만의 아픔을 안고 산다.
입양아들은 정신적 트라우마로 고민한다.
서로 간 과거의 상처가 아물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193개국을 모두 달려 지나갔지만 사랑하는 조카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다.
염치가 없는 짓처럼 여겨졌다.
미국의 어디선가 모른 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크리스틴은 한국인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크리스틴은 미국인의 정신과 사고를 가진 미국인으로 자라났다.
서로의 의식과 생활풍습이 설악산과 로키 산처럼 다르다.
'크리스틴아 걱정 말거라!'
'네 엄마는 잘 이겨낼 거야!'
'34년을 기다렸는데 이쯤이야!'
'비록 만나지 못한다 해도 사랑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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