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개국 지나며 독일의 나체 문화
에덴의 계승
독일 하면 떠오르는 말이 너무 많다.
도이치란드는 '국가' 또는 '국민'의 뜻으로 독일인 원주민만을 의미한다.
도이치란드는 '토이톤란드'에서 유래한다.
오늘날은 'Germany'를 국제적으로 애용하고 있다.
대한민국과 코리아의 구별과 유사한 것이다.
Germani는 Gauls 지역의 강가에 살았던 부족에서
유래하였다.
아마도 '골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제르마니아의 어원일 것이다.
로마제국은 독일을 '제르마니아'라 불렀다.
한국에서는 게르마니아로 발음하고 있다.
프랑스어로는 '알마뉴'이다.
스페인어로는 '알레마니아'이다.
프르시아 혹은 프러시아가 강성해졌다.
;프르시아가 본래의 발음이다.
프르시아는 발틱의 연안에서 발원하였다.
프르시아는 독일 북부와 폴란드 북부를 아우르는 지역이
되었다.
프르시아는 한반도의 고구려 같은 강인한 존재였다.
1870~1871년 프르시아의 비스마르크는
프랑코-프러시아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1918년 프르시아 왕조는 빌헬름 2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1800년대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었다.
1938년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합병되었다.
2차 대전 후 1955년 오스트리아는 독일로부터 독립을 했다.
2차 대전 이후 패전국인 독일은 '포츠담 회담'에 의해 퀘닉스버그를 비롯한 프러시아 지역을 러시아에 넘겨주었다.
2차 대전에서 만일 독일이 승리했다면 러시아 일부, 폴란드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영토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독일은 명실상부한 강대국이다.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부자 나라이다.
독일에서는 칸트와 괴테의 감동이 묻어난다.
독일인은 여전히 근면하였고 절제력 있었다.
많은 가정마다 차고에는 자동차 수리 공구가 가득했다.
자동차 수리는 각자 집에서 처리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만났던 독일인의 초대를 받았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독일어보다 영어로 의견교환을 하게 되었다.
사이클 타고 전 세계를 돌고 있는 것에 감동을 받은 부부였다.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시간과 국적, 인종을 초월한 사이가 되었다.
결혼 여부나 나이 등을 묻지 않는 것이 유럽의 문화이다.
중년의 나이를 훨씬 넘어 보이는 부부였다.
독일인 부부는 매사에 사려가 깊었다.
지성과 연륜이 묻어났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어려서부터 해외여행에 익숙하다.
노르웨이에서부터 아프리카까지 틈틈이 다녀온다.
독일에는 사이클 경주도 인기가 높다.
자전거 출퇴근자들도 아주 많은 편이다.
독일인 부부는 한국에서 온 유색인을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집안의 구석구석은 정성스레 천연의 장식을 해놓았다.
머무를 방으로 안내하였다.
책들로 가득 채운 서재를 구경시켜주었다.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어도 되는가? 미리 양해를 구했다.
아들이 퇴근 후에 합석을 했다.
부인이 손수 만드는 음식을 함께 즐겼다.
'백인들은 정말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군!'
이전에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에서 민박체험은
소중했다.
독일인 부부 집에서 남다른 편안한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더욱 값진 체험의 기회가 왔다.
아들 부부 가족과 함께 떠나는 야외 캠핑이었다.
독일인 부부가 한국인 친구(?)를 위해 준비했다는 특별
이벤트였다.
독일인 가족들과 두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소풍을 떠났다.
사이클과 소지품은 남겨두었다.
간편한 짐만 챙겼다.
어디서 출발하여 어디에 도착하였는지는 모르겠다.
독일이나 프랑스 근처에서는 안전했다.
일단 백인 가정집에서는 소지품 안전은 문제가 없었다.
백인들 집에서 머물렀던 체험이다.
절대 타인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름 모를 산의 계곡이었다.
별장 같은 목재 건물 몇 채 정도 보였다.
산의 배경과 아름다운 녹색의 목초지가 펼쳐져있었다.
그곳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에서 짐들을 가지고 건물로 들어가서 물건을
풀었다.
저녁식사는 건물 밖 야외에서 준비하였다.
야외에는 간이 주방과 식탁등이 배열되어있었다.
남자들은 고기와 소시지 등을 날라다 굽는 역할을 맡았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왔다.
나무장작을 쌓아서 불을 태웠다.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더욱이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기에 느끼는 것이다.
항상 그랬다.
항상 먼길을 앞에 두고 혼자였다.
편안한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다.
한참 즐겨야 할 시간이 오면 고독해진다.
왜냐면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낯선 가족과는 괴리감을 좁혀나가기 쉽지 않다.
그들과 즐겁게 대화를 하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지만,
마음은 벌써 떠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
숲에서의 밤하늘은 아름답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마쳤다.
각자 방에서 옷을 벗고 나온다 했다.
"걸친 옷을 모두 벗도록해!"
독일 아이들부터 모두 알몸으로 나온다 했다.
태연한 표정으로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가끔 뉴스에서나 보았던 일이다.
그들과 오래전부터 살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자연스럽게 옷을 모두 벗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백인들은 누드로 햇빛 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아이들은 제세상처럼 좋아했다.
마음은 다소 불편했으나 최대한 표 내지 않도록 연기했다.
낯선 한국인을 자신 가족처럼 대해주는 모습은 신뢰감의
표현이다.
독일인들은 가족들의 나체 캠핑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태고에는 인류 모두가 나체 생활을 했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아니다.
아프리카는 고대의 나체 문화가 아직 건재하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으니 마음마저 투명해졌다.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벼웠다.
'성추행' '페미니즘' '남녀차별' '음란' '몰카'니 하는
말은 꺼내는 자체가 부끄럽다.
백인들의 생활은 다르다.
;여기서 특별히 백인이라 하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이다.
결코 인종차별적인 동기는 없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유럽인'이라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 유럽은 너무 많은 유색인이 섞여있다.
유럽인들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다.
직접 유럽인들과 생활해보면 실감하게 된다.
유럽인들 부모는 아이들과의 신체접촉이 몸에 배어있다.
가족 간, 친지 간, 친구 간의 건전한 스킨십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익혀진다.
백인사회에서는 '몰카'뉴스를 들은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받는 가정교육의 질이 다르다.
사전 준비되지 않은 아시아인은 실수하기 쉬운 문화이다.
유럽의 사회는 아시아의 사회와 완전히 다르다.
누드 문화는 불건전 문화가 아니다.
누드 문화는 모두의 이상적인 문화이다.
누드 문화는 성범죄를 제거하는 청소다.
누드 문화는 고대의 의식으로 회귀하는 문화이다.
누드 문화는 인본주의 문화이다.
누드 문화는 예술과 인성의 르네상스다.
누드 문화는 타락한 정신을 회복하는 문화이다.
이성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자녀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