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부속품이라고 우겼다
두 개의 깃털만큼 자유로워졌을까
그는 골문을 향해 퍼덕거렸던 적이 있다
이 디카시를 몇 년 전 모 디카시 카페에 올린 적 있다.
댓글을 몇 분이 써주었는데, 그중 한 분이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유상철 축구 선수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를 생각하며 쓴 글이 전혀 아니었고, 그런 종류의 그리움을 중심에 두고 쓴 문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댓글을 달아준 분에게는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촉발시킨 디카시가 되었다.
이런 게 문학예술의 본질이겠다,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은유하고 상징하려는 노력이 약간은 모호한 표현 방식을 작동시키고, 그런 문학적 모호함은 독자에게 개인적 경험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저마다 다른 사유를 발화케 하는 것이다. 뇌과학에 준하여 말하자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상관없을 것 같은 뉴런과 뉴런 간에 새로운 연결선을 만드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상관없을 것 같이 멀리 떨어진 뉴런 간에 연결선이 많이 생성될수록 창의성이 높은 뇌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뇌 속의 뉴런 간의 연결은 문학에서 수준 높은 은유 방식과 닮아 있다.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사물들을 연결해서 은유하는 것을 문학가들도 좋은 은유라 칭송하지 않는가.
오늘도 멀리 떨어져 있던 뉴런 간에 새로운 연결선이 생성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노화를 받아들이되 창의와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기를.
사족 하나,
이 사진을 지인에게 보여주니 연출된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질(^^)을 해댔다.
해명할 일은 아니지만,
연출이 아니다.
내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일터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서 사내 운동장에는 갈매기 깃털이 드물지 않게 떨어져 있다. 오전 근무 후 축구장 주변을 식후 산책하다가 깃털을 발견했고, 날개 가진 것의 비상을 위한 퍼덕거림이 시가 되는 찰나를 나는 사진 찍었다.
사족 둘.
이 축구장에서 깃털이 아닌 솔방을 사진을 비슷한 구도로 찍었었다.
그 사진에 몇 문장을 매달아 "인성의 향 디카시 공모전"에 응모해 장려상을 받았다.
위 디카시와 한 배에서 태어나 무려 장려상까지 받은 디카시는 아래와 같다.
이리 차이고 저리 구르던 공이었다
골문을 향해 스스로 날아가겠다는 기척
오그라들어 비늘처럼 누워 있던 온몸의 날개를 펼친다
무리에 섞이는 걸 즐기지 않는 편이다. 군중 속에서 탈진하기 일쑤였고 혼자일 때 충만해지곤 했다.
혼자 이곳을 산책하며 풍경의 일부가 되어 흐르면 겨드랑이가 근질거리며 날개가 돋는 듯했다. 그러다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내 주변을 지나다니는 짧은 문장들을 잡아채서 기록도 하고 드물게 상을 받기도 하고...
내겐 매우 상서로운 축구장이다.
사족을 조금 더.
이때 인성의 향 디카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분이 김성미 님으로 기억한다. 나는 김성미 님이 디카시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몇 공모전 수상으로 평가를 끝내기에는 아까운 감각의 소유자다.
내가 쓰는 디카시는 시선이 자꾸 먼 곳을 향하는 게 고민이었다. 지금 여기를 써야 한다는 내 생각과 문학적 시선은 어긋나기 일쑤였고, 문장에는 허세와 과장 그리고 힘을 빼야 하는 숙제들로 가득해 진땀 흘렸다.
그런데 김성미 님의 디카시는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어 찍은 사진에 담담히 매달아 놓은 기교 없는 문장이 감탄스러웠다. 자주 오래 들여다보았다.
브런치에서 "당근"이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얼마 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작품을 평가하는 건 내게 주제넘는 짓이고, 단지 추천은 가능하리라는 생각이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