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싸한 오늘에 건배를

'시'도 '힙합'도 아닌 낭독,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

by 밀란킴데라

셰인 코이잔(Shane Koyczan)의 동영상을 보며 나는 봉준호 감독을 생각했다. 지난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을 때, 그는 영화학도 시절부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가슴팍에 새겼다고 했다.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라는 책에서 마틴 스콜세지는 “왜 영화가 반드시 개인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관점이 명확하고 개인적일수록 예술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독창적이면서 동시에 많은 이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는 뜻이라면, 곧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인 게 아닐까. 셰인의 슬램을 보며 “가장 내밀한 내 상처가 모두의 아픔”이 될 수 있고 동시에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공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필요한 건 아마 용기뿐일 것이다.


어릴 때 난

폭찹과 가라테 찹이

같은 거라 생각했어

나는 둘 다 폭찹이라 생각했고 둘 다 좋아했어


우리 할머니는 그걸 귀엽게 여겼고

그냥 내버려 두었어

정말 별일 아니었어


뚱뚱한 애들은 나무 타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알지 못할 때

나는 어느 날 나무에서 떨어졌어

몸 오른쪽에 멍이 시퍼렇게 들어 버렸어

며칠 후에 체육 선생님은

멍 자국을 보고 나를 교장실로 데려갔지


나는 작은 방으로 갔고

거기서 어떤 상냥한 선생님이

우리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온갖 질문을 해댔지

그때의 내 삶을 꽤 즐거웠어

나는 그분께 말했지

“내가 슬플 때마다 할머니가 가라테 찹을 해 줘요.”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종합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지

나는 사흘 동안이나 집에 갈 수 없었어

이 유치한 이야기가 순식간에 학교 전체에 퍼졌고

난 첫 번째 별명을 얻었어

폭찹


지금까지도 나는 폭찹이 싫어

이렇게 자란 아이는 나만 아니야

막대기와 돌멩이로 맞은 것도 아닌데

별명 좀 불리는 게 뭐 그리 대수냐

뼈가 부러지면 놀림받는 것보다

더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런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

우린 계속 그렇게 별명으로 불렸어

학교 복도는 전쟁터였어

비참한 나날들이 계속되리라는 걸 우리는 알았어

셰인 코이잔의 ‘지금까지도’(To This Day) 중에서


그는 학교 폭력을 당했던 아픈 경험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왕따 예방의 날'에 올린 이 영상은 빠르게 퍼졌다. 고요한 무대 위에서 시를 낭독하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음악이 깔린다. 얼핏 음악은 그저 시를 위한 배경인 것 같지만, 언제부터인가 음악과 말이 나뉘지 않는다. 음악이 고조되고 말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어조가 격양된다. 무엇이 먼저 절정에 다다랐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니 마치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숨을 멈추고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어느새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작은 꼬마 아이가 되어 버린다.


42537_1614063437.jpg 셰인 코이잔의 슬램과 그에 어울리는 이미지들이 실려 있는 책 <아마도 그건 아물 거야> 중에서


그가 한 작업은 ‘포에트리 슬램’이라 불린다. 그것은 시이면서 랩이고, 랩이면서 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인과 래퍼들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낸 게 시작이었다.


“포에트리 슬램은 시와 랩의 연결고리 어디쯤에선가 서성거리는 말들의 웅성거림”이라고, 김경주 시인은 『일인詩위』라는 책에서 표현했다. 이 작업자들은 “눈으로 읽는 시보다 들리고 몸으로 울리는 시를 지향”하며 그렇기에 “시집 발간보다 음원 발표나 공연을 더 시적인 작업”이라는 것이다.


시와 랩은 ‘고백’이라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편견’과 싸운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고 음악 평론가 김봉현 씨는 말한다. 다만 시에는 랩과 달리 행간이라는 ‘침묵’의 공간이 있으며, 랩은 기본적으로 ‘속도’가 없으면 리듬이 전달되지 않지만, 시는 속도를 거부하는 것이 차이라고 그는 짚는다.


영화 <러브, 비츠, 라임스>(Love Beats Rhymes)의 주인공인 힙합 디바, 코코는 “100년 전 죽은 웬 놈이 끄적거린 시가 오늘날의 힙합보다 중요한가”를 물으며 “랩에 쫄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걸 배울 텐데”라고 말한다. 같은 영화에서 시인 콜트레인은 “시가 망친 부분을 포에트리 슬램이 발견하고 고치려는 거야. 시인의 손에서 자라났지만, 힙합을 들으며 커 온 세대를 위해서 말이야”라고 정의한다.


무엇보다 ‘랩 배틀’과 대응되는 단어를 쓴 게 재미있다. 상대를 향한 무차별적 공격이 난무하는 ‘랩 배틀’과 달리, ‘포에트리 슬램’은 조금 더 자기 고백적이며, 어느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대하는 날카롭고 예민한 시선을 보여 준다. 율리아 엥겔만의 ‘언젠가’는 스물둘 대학생의 고민을 표현해 인기를 끌었다.


“우리의 삶은 텅 빈 대기실/ 아무도 우리를 불러 주지 않아/ 우리는 에너지를 아껴 두고 있어/ 언젠가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젊고 시간은 많은데/ 왜 알 수 없는 일에 모험을 걸어야 해?/ 우리는 실수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아…”

“언젠가 우리도 나이가 들 거야/ 그러면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떠올릴 테지”

“결과야 상관 말고/ 우리 자신을 믿어 봐/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은/ 용기가 행복의 동의어라는 걸 알 거야/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든/ 미래에는 원하는 사람이 될 거야…”


율리아 엥겔만 ‘언젠가’(RECKONING TEXT) 중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아무렇게나 떠도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국의 청년들은, 율리아 엥겔만이 살아가는 독일보다 나을까.


Poetic justice팀의 MC메타가 부른 ‘청년 정신1_수능’에는 “떡볶이는 영어로 쌀 케이크란 뜻이야/ 그런데, 영어로 케이크는 전부 단맛이야/ 난 매운 떡볶이가 좋아 치즈랑/ 난 배고파, 늘 배가 고파/ 내가 죽으면 못 먹은 떡볶이 생각이…/ 눈물이 날 것 같아/ 못 먹은 내 떡볶이도 날 생각하며 울어 줄까?/ 떡볶이에 눈이 있다면 빨갛고 눈물의 맛은 매울 것 같아”라고 말한다. 원래 단맛인 케이크마저, 한국에서는 매운맛만 남긴다는 뜻일까. 달콤함이 증발된 채 말이다.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주장 따위, 여기선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리 맵싸하게 살아간다는 게 재채기가 난다.


“지옥은 괴롭겠지만 wifi만 있으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걱정하지 마 근데/ wifi는 있는데 아무도 wifi 비번을 알지 못하는 곳이/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면”

“엄마, 도착하고 wifi 터지면 톡 보낼게”

“엄마, 이제 내가 자랑스러워?/ 내가 죽으면 프로게이머나 유튜브 스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와우!”


MC메타(Slam text_ Jake) '수능' 은 0:55부터


* 이 글은 독립 음악잡지 <gem megazine>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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