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듣던 노래를 광장에서 함께 부를 때

운동가가 아닌 유행가로 목소리 내기

by 밀란킴데라

방에서 벗어나 이어폰을 빼고 광장에서 듣는 노래의 힘은 어떨까? 인종 차별 항의 집회에서 대중들이 ‘Lean on me’를 따라 부르고 있다. washingtonian.com에서 인용.


‘운동권’이라고 할 때 느껴지는 강성의 느낌, 허름하고 낡은 옷을 입고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채, 맨바닥에 앉아 목청껏 구호를 외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은, 왠지 멀게만 느껴진다. 그 고루한 느낌 때문에 더욱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몇 번 광장에 나가서 구호도 외치고 행진도 했는데. 그때 우리는 다 함께 바라는 무언가가 있어 절박하고 답답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모여 있는 그 시간과 시간을 축제처럼 즐기기도 했다.


저마다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고, 거리에 나앉거나 걸었지만, 우리 모습은 흔히 ‘운동권’이라 할 때 상상했던 모습과는 영 달랐다. 그보다는 덜 허름하고 더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움직임은 훨씬 굼뜨고 덜 조직적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만큼 조금 어설펐다. 전경이 다가와 해산하려 하고 무력으로 제압하면, 우리는 그들이 전열을 흐트러지지 않도록 뻑뻑하게 앉아 팔짱을 끼며 ‘스크럽을 짰’다. 방관자 기질은 거기서도 발휘되었으므로 나는 주로 뒤에 빠져서 앞사람들이 스크럽을 짜서 앉거나 눕는 것을 뒤에서 어설프게 따라 하며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군중 집회는 상상했던 그것보다 덜 낯설고, 제멋대로일 정도로 충분한 자유가 있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몇 년 전, 학교에 맞서 밤샘 농성을 벌이며 다 같이 소녀시대의 노래를 불렀다는 걸 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단체로 모이기 싫어하는 세대라고들 하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뭉칠 줄 안다는 것을 알려준 느낌이었고, 다른 하나는 운동권의 명맥이 끊어져서가 먼저겠지만, 그런 것 따위 아무렇지 않게 던져버리고, 전통을 벗어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세대니, 그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이었다.


반면, 처음에 광장에 나갔던 나에겐 이런 자세가 없었다. 그곳의 노랫소리와 문화가 낯설어 ‘대중 속의 군중’처럼 멀뚱멀뚱하게 덩그러니 앉아 있던 기억이 났다. 시위 현장의 노래라는 것이 주로 어려울 것이 없고 신나는 리듬이며 반복되므로 몇 번 안 듣고 익숙해졌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었다. 그것들은 나를 주체적이라기보다 방관자의 위치를 잘 선점하게 해 주었다.


나는 그 방면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되므로 그냥 묻어가는 사람이었다. 운동권 노래나 민중가요도 모르고, 구호를 선창 할 줄도 모르고, 팔뚝질 하는 법도 모르므로(대학 선배 하나는 전설에 가까운 학번의 선배에게 배웠다며, 구호를 외칠 때 주먹을 쥐고 앞뒤로 흔드는 시범을 보이며, 그걸 팔뚝질이라고 부르며, 거기에도 주먹을 쥐는 세기와 팔을 흔드는 나름의 각도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며, 으스대고 또 재미있어하며 설명했다.), 나는 감히 투쟁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을 보며 ‘그것이 뭣이 중요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부당한 처사에 관해 힘을 합쳐 말할 때, 그냥 우리의 언어로, 우리가 아는 노래로,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돌의 노래여도 되고, 심지어 동요면 뭐 어떤가. 모두가 잘 알고 금세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새로 배워야 하고 잘 모르는 운동가를 그때 배워서 언제 퍼뜨리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말인가.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단과대(일명 미래 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에 반발해, 대학 본관을 점거하고 밤샘 농성을 벌였다. 이때 경찰 1,600명이 투입되어 학생들을 한 명씩 잡아갔다. 학생들은 민중가요 대신 익숙한 노래를 합창했는데, 이때 왜 GOD의 ‘하늘색 풍선’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채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 가.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다시 만난 세계’ 중에서)와 “열려 있어. 언제든 들어와도 되는 걸,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걸, 너희가 있는 걸, 모두 웃는 얼굴 되는 걸, 하나 되어 앞으로 가는 걸”이라는 가사는, 함께 운동에 동참하게 할 만큼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들은 학교의 계획을 무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화여대 본관 점거 농성 영상 3분 8초부터 ‘하늘색 풍선’, 4분 5초부터 ‘다시 만난 세계’를 들을 수 있다.


부활의 ‘네버엔딩 스토리’도 원래 곡을 만들 때와 다른 새로운 상징을 띄게 되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후에, 유가족들은 이 노래를 합창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하는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라는 가사는, 처음 만들어질 때는 헤어진 연인을 향한 것이었지만, 이후엔 뜻하지 않게 생을 다한 어린 학생들을 향해 집단적으로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이 되었다.


미국에서도 팝송이 이렇게 불리고 있다. 지난해, 백인 경찰의 부당한 과잉 진압으로 인해 죽은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망 사건을 기점으로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흑인 인권 운동(BLM: Black Lives Matter) 현장에는 이 노래가 있었다. 솔(soul) 싱어송라이터이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2015년에 헌정된 빅 위더스(Bill Withers)가 불러, 1972년 빌보드에서 1위를 했던 ‘Lean on me’는 그가 어린 시절에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가난한 탄광 마을인 슬랩 포크에서 살면서 마을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들을 서로 도우며 살았던 기억을 되살려서 쓴 곡이라고 한다.


희한하게도, 어려움이 없어 내줄 것 많은 이들보다 힘든 시절을 겪었거나 그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자기 것을 더 잘 나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정석. 그것이 기대라는 말이든, 기대 울고 갈 어깨든, 그들에게 필요한 함께하는 시간이든, 실질적인 도움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지친 이에게 ‘내가 함께할 테니 나에게 기대“라는 말보다 더 위안이 되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드러난, 미국의 뿌리 깊은 문제, 인권 차별 문제에 함께 맞서며, 이 일을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여기고 함께하겠다는 의미로, 이 노래를 한 목소리로 불렀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Lean on me’를 들으며 노래에 얽힌 개인의 추억으로 돌아갈 것이고, 작년에 타계한 빌 위더스를 그리워할 것이고, 가난한 탄광 마을을 생각할 것이고, 서로를 생각하고 다른 이를 생각하며 모여 행진했던,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그 광장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떤 노래를 어떤 장소에서 다 같이 한 목소리로 부르는 것은, 그리고 귓속에 박혀 있는 이어폰을 빼내고 귀를 사방으로 여는 것은, 홀로 작게 흥얼거리던 것을 넘어 다 함께 소리를 내는 것은, 노래에 이전에는 없던 또 다른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인 게 분명하다.


You just call on me brother when you need a hand

도움이 필요하면 그냥 나를 불러요


We all need somebody to lean on

누구나 기대고 살 사람이 필요하죠


I just might have a problem that you'll understand

당신이 납득해야만 하는 문제가 내게도 있을지도 몰라요


We all need somebody to lean on

누구나 기대고 살 사람이 필요하죠


Lean on me

내게 기대요


When you're not strong

당신이 강하지 못할 때는


And I'll be your friend

내가 친구가 되어


I'll help you carry on

버틸 수 있게 도와줄게요


For it won't be long

머지않아


Till I'm gonna need somebody to lean on

나도 기댈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If there is a load you have to bear

그대가 져야 하는 짐이


That you can't carry

감당하기 힘든가요


I'm right up the road

내가 그 길에 있어요


I'll share your load

당신과 함께 짐을 질 거예요


If you just call me

그대가 나를 부른다면


‘Lean on m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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