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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 GO STUDIOS Jul 22. 2021

포드 GT, 과거를 따라가 미래로 나아가다

이현빈 작가

1966년은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에겐 역사상 최고의 해 중 하나였다. 모터스포츠를 잘 모르더라도 영화 '포드 v 페라리'를 본 적이 있다면 포드가 페라리에게 어떻게 설욕했는지를 잘 알 것이다. 이 시절의 포드는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은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유럽의 모터스포츠에 참가하고 싶어했고, 이것에는 포드의 이상과 잘 맞으면서 세계 최고의 위상을 가진 프랑스의 르망에서 펼쳐지는 24시간 동안 피트 스탑(간이 정비소인 피트로 들어가 타이어 교환이나 연료 보충, 수리를 위해 멈추는 것. 최근에는 피트 레인 내에서의 제한 속도도 있어 상당한 시간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을 제외하고는 멈추지 않고 달리는 세계 최고의 내구 레이스, 르망 24시가 제격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기술력을 빌려와도 모자랄 판에 미국에서만 개발해서 유럽의 레이스에 출전시켜 우승시키겠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융통성이 없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포드는 유럽의 명망도 있으면서 웬만하면 자금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레이싱 팀들을 사들여서 그들의 기술력과 헤리티지를 흡수하고자 하였고, 그런 부류의 최고봉에 있던 것이 바로 페라리였다.


마침 당시의 페라리 또한 돈이 매우 궁했기 때문에 포드에게 인수당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모터스포츠에서의 노하우란 노하우는 전부 꿰고 있는 페라리를 포드의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아주 든든한 아군이 될 터였다. 그렇게 포드는 부푼 꿈을 안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페라리의 수장, 엔초 페라리

하지만 페라리와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세간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레이스 운영권에 관한 분쟁. 엔초 페라리는 자신이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유일한 수장으로 남고 싶어했고 심지어는 페라리의 이름으로 미국 최대의 모터스포츠인 인디 500에 진출할 의사까지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발을 넓히려고 했던 포드인데 되려 유럽 팀이 미국에 발을 들여 놓겠단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페라리를 인수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되고, 애초부터 포드에 운영 권한을 넘길 생각이 한 치도 없던 페라리에서 이리 융통성 없게 나오니 포드의 입장에서도 그런 식의 계약을 승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고, 포드가 말하자 마자 엔초 페라리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결국 계약은 보기 좋게 파투가 났다. 문제는 포드가 이 계약에 투자했던 돈이 수백만 달러였다는 것. 길을 가다 지폐 한 장을 잃어버려도 화가 나는데 그보다 몇십만 배는 많은 돈을 날리고 눈 앞에서 코를 베이며 자존심도 제대로 꺾인 포드로서는 열이 뻗치지 않을 수 없었다.


흐음, 이렇게 된 거, 자존심 강한 페라리에게 한 방 먹어서 열받은 포드가 페라리를 레이스에서 정정당당하게 박살낸다는 시나리오도 마케팅에 꽤 괜찮아 보인다. 성공만 하면 '페라리를 이긴 브랜드'로서 팬들의 기억에 단단히 박힐 것이다. 마음을 굳힌 포드는 본래 목적이었던 유럽에서의 모터스포츠 활동도 전개할 겸 아득하리만치 강한 페라리를 부숴버릴 만한 차를 만들 방법을 갈구하기 시작한다.

포드 GT40의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롤라 Mk6 GT

그래서 포드는 모터스포츠의 본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국을 방문했다.


영국의 여러 팀들과 담소를 나누며 이렇게 저렇게 잘 구슬려 봤지만 다들 사정이 맞지 않거나 관심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인수 대상으로 적합한 브랜드는 한 개의 브랜드로 좁혀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영국에서 레이스카를 만드는 업체였던 롤라.


포드가 찾아오기 전에 롤라는 1963년에 포드의 4,736 cc V8 엔진을 가지고 만들어 본 차량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Mk6이다. 잘 알려져 있는 차는 아니지만 GT40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차량이 바로 이 모델이다. Mk6는 총 12번의 실전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는 한 번의 우승도 있을 정도로 미드십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갓 적용했기 때문에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음에도 꽤나 경쟁력이 있던 차량이었다.

당시 포드의 회장이었던 헨리 포드 2세

포드는 이 차에 주목했다. 방금 말했듯이 엔진을 앞쪽이 아닌 좌석 뒤에 위치시킨 미드십 마운트 레이아웃이었는데, 지금이야 미드십 레이아웃이 최고급 레이스카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런 차들이 공도에도 널리고 널렸지만 이 당시만 해도 엔진을 뒤에 놓는다는 건 굉장히 생소했다. 독일 아우디의 전신인 아우토 우니온이 1930년대에 리어 엔진 레이아웃을 모터스포츠에 가지고 온 적이 있긴 했지만 이내 사라졌고, 포르쉐도 1940년대 중반에 시제품을 제작해본 바가 있으나 사장되었으며, 엔진을 시트 바로 뒤에 놓는 미드십 레이아웃 자체가 1950년대 극후반에 가서야 F1에서 등장한,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이었다.


롤라의 수장인 에릭 브로들리가 Mk6 두 대를 포드에 매각하고 1년간 포드의 GT40 개발을 도와주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그가 포드에게 공유한, Mk6가 쌓아온 아이디어와 연구 데이터는 GT40의 개발에 엄청난 보탬이 되었다.

그 다음은 팬들이 아는 대로다. 계속되는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캐롤 쉘비를 불러들여 GT40의 개발을 끈기있게 지속해 나갔으며 4년 연속 르망 24시 우승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얻게 된다. 포드는 철옹성 같았던 페라리를 집념 하나로 함락시키며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을 성공시켰고 현재까지도 성조기를 달고 르망 24시에서 우승한 유일한 차량으로 남으며 포드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차량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되었다.

1세대 포드 GT. 필자는 이 차를 보며 진한 감동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III 현재에 과거를 대입하다


그리고 그런 GT40의 유산을 이어받은 차종이 바로 포드 GT이다. 1세대 GT는 포드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GT40를 그 유산을 간직한 채 후대에 되살려서 공도로 끄집어낸 포드 유일의 양산 슈퍼카이며 포드라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헤리티지 중 하나를 계승한 차량이라는 점에서 포드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겠다. GT40의 그것을 직접적으로 이어받은 디자인은 유럽의 디자인과 적절히 혼합되면서도 미국 차 특유의 볼륨감과 각선미도 충실히 구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미국의 자동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세련된 디자인이다.


하지만 과거의 향기를 간직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40년 전의 그것에서 크게 달라지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GT40의 디자인이 단순히 기반이 된 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모든 요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다시 말해 GT40를 계승한 차량을 넘어서서 그냥 21세기 공공도로판 GT40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수준까지 오게 된 것이다. 물론 1세대 GT가 지향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지만, 이는 GT의 디자인에 관해 호불호를 갈리게 하는 데에 충분하였다. 외장 디자인 외의 내적인 부분은 모두 송두리째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만큼 1세대 GT는 완벽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명차의 반열에 들 만했다. 비록 옛 영광을 재현하는 데에만 힘을 쏟은 탓에 참신함이 퇴색되었긴 하지만 적어도 과거의 상징성을 이어가는 데에는 훌륭하게 성공했고, 기존의 미국 차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쇄신하는 차량이면서도 미국 차 중에서도 가장 미국스러운 차였기 때문이다. 5.4리터의 슈퍼차저가 달린 V8 엔진, 6단 수동 트랜스미션과 1단 기어로 100 km/h를 넘길 수 있는 그 기어비만 봐도 이 차가 얼마나 미국스러운지 대략 파악할 수 있다. GT의 디자인 또한 의미적인 관점에서 보면 왈가왈부할 것이 많지만 적어도 그것이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슈퍼카 치고 가격과 콧대가 그리 높지 않았던 차라는 것도 한몫 거들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1세대 포드 GT는 포드의 경영 악화라는 파도를 맞아 출시 2년 만인 2006년에 단종되며 단 4,000대 가량의 생산량을 기록한 채 단명하게 되었고, 애석하게도 그 이후로 새로운 슈퍼카가 출시되지 않아 포드의 슈퍼카 자리는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2015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2세대 GT

III 9년 만에 등장한 2세대 GT


그러던 2015년, 디트로이트에서 차세대 GT가 공식적으로 공개되었다. 자그마치 약 10년 만에 돌아온 포드 GT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마침내 GT라는 차량이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보고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직감케 하는, 새롭고 혁신적이면서도 GT40의 향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한 디자인은 1세대와는 반대로 과거의 헤리티지를 등한시했다는 불만을 낳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부각되기도 한다.

21세기에 들어오며 많이 사그라든 편견이긴 하지만, 대체로 투박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미국의 여느 스포츠카들과는 생김새가 언뜻 보기에도 다르다. 1세대 GT 또한 기존에 미국 차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제대로 탈피해냈지만 1세대가 현역이던 시절만 해도 상대방에게 GT가 정교한 차량이라는 걸 제대로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겉보기에는 투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디테일한 차량이다' 하는 식으로 부가적인 설명이 들어가야 했던 데 반해, 2세대 GT를 보면 그것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특히 측면의 곡면 디자인은 단순무식하지 않고 굉장히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시대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1세대에 비해서 더욱 똑똑해졌다. 1세대가 가지고 있던 1~2단의 기어비가 엄청나게 긴 6단 수동 트랜스미션이 아닌 독일 메르세데스-AMG GT와 동일한 게트락의 7단 듀얼클러치 트랜스미션 같은 요소들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의 고속도로에 어울리던 미국적인 차였던 GT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GT가 점차 유럽의 차량들을 닮아가고 있다고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2세대 GT는 1세대보다도 평가가 더욱 극명하게 갈리는 차가 되었다. 1세대 GT는 불호의 의견이 있더라도 '좋으면서도 아쉽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던 반면, 2세대 GT의 평가는 비교적으로 '좋다'와 '싫다'로 명확하게 갈라졌다. 포드에서도 이것을 예상하지 못하진 않았으리라. 포드는 대체 왜 이러한 평가와 혼란을 감수하고 GT를 환골탈태시킨 것일까?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던 걸까?

III 졸작인가, 수작인가?


사실상 포드는 2세대 GT를 내놓으며 사실상 GT는 이제 더 이상 미국만의 전유물이 아닌 더 큰 것을 바란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유럽을 닮아간다는 것이 미국적인 색채를 잃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것은 실제로도 맞는다. 미국 차만이 풍기는 특유의 느낌은 세계화의 물결 앞에 점점 흐려지고 있고, 미국 차의 큰 특징이던 레트로한 올드스쿨 분위기도 시대의 흐름 앞에 점점 지워져가고 있다.


그리고 2세대 GT는 그러한 흐름과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차량이다. 때문에 2세대 GT는 1세대보다도 같은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굉장히 많이, 그리고 아주 극명하게 갈렸다. 1세대보다 2세대가 더 멋져 보인다는 의견도 많았던 반면, 2세대는 1세대가 지켰던 것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실망스러워하는 견해 또한 많았다. 단순히 관점에 따라서 평가가 이렇게 확연하게 갈리는 차량은 정말로 손에 꼽을 만할 것이다.

GT의 후면부를 뒤쪽 바퀴 커버가 없다고 생각하고 중앙의 차체만 보면 차체가 물방울 모양의 스트림라인을 그리며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2세대 GT는 특별했다. 확실한 것은 2세대 GT는 1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차량이라는 것. 그리고, 점차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에는 바로 후면부의 공기 터널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패키징의 공로가 컸을 것이다. 필자가 2세대 GT를 보고 굳이 '혁신적인' 디자인이라고 평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당대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2세대 GT로부터 5년이나 뒤에 공개된 로터스 에바이어 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최고의 공기역학 성능을 끌어낼 수 있는 파격적인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비록 2세대 역시 그 디자인의 심미성이나 의미를 놓고 보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긴 해도 성능의 측면에서는 모터스포츠에서나 시도할 법한, 아니 모터스포츠에서도 거의 보지 못했던, 그러한 동시기의 최첨단을 달리는 디자인이었던 것이다.

앞서 서술했듯이 2세대 GT의 디자인 또한 완벽한 디자인은 아니다. GT라는 이름을 쓰면서도 아주 미국적이고 GT40를 판박이처럼 재현해 놓으면서까지 과거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을 중요시했던 1세대와는 다르게 GT40의 헤리티지에 유럽과 미래의 색채를 1세대보다 더욱 많이 묻힌 디자인이다. 따라서 여전히 GT40의 색깔이 남아있기는 하지만서도 포드와 미국이 자동차 역사에 남긴 발자취를 동경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실망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자에게는 그것이 그리 나쁘게 다가오진 않는다. 비록 시간이 흐르며 미국만의 클래식하고 원초적인 멋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매우 아쉽게 다가오기는 해도, 그것이 아름답지 못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실제로도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까.

GT는 GT40가 남긴 헤리티지를 따라가고 있지만, 애초에 그 헤리티지부터가 온전한 미국의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GT가 유럽의 차량들을 닮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시대와 세계화의 물결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당연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도입부에서도 깊게 짚고 넘어갔듯이 GT의 직계 조상인 GT40부터가 포드와 롤라, 즉 미국과 유럽의 합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즉 GT가 이어가야 할 유산들을 남긴 GT40 자체가 순수한 미국 혈통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혼혈이었다. 엔진은 미국에서 만들었지만 섀시는 그 태초에 영국의 롤라의 큰 관여가 있었기 때문에 GT40의 역사에는 애초부터 유럽의 향수가 묻어 있던 것이다.

포드 GT40 Mk I와 2세대 GT의 후면부. 서로 상당히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의 레트로한 차량을 잘 재해석했다는 의견도, 유럽 냄새가 나서 싫다는 의견도, 기존의 GT가 가지고 있던 아이덴티티를 갖다 버렸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비록 중화되긴 했어도 GT40가 가지고 있던 디자인적 특징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1세대가 제대로 닮지 못했던 부분에서는 GT40와 더욱 닮았다. 전면부의 2개의 거대한 공기 배출구와 후면부의 동그란 테일 램프, 그리고 후면부 중앙에 있는 2개의 머플러와 그 양 옆에 있는 공기 구멍은 영락없는 GT40의 오마주로 보아도 무방하다. 못생겼다는 지적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이 바로 머플러인데 사실은 GT40의 디자인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는 부분. 1세대와 2세대 GT를 모두 선호하는 필자의 입장에선 요즘 시대 관점의 엑조틱과 아메리칸 스타일 사이의 그 어딘가를 정확히 짚어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세대 GT에 탑재된 엔진은 대배기량의 슈퍼차저 V8이 아닌 3,497 cc의 V6 트윈터보 에코부스트였다.

칭찬이 길었다. 2세대 GT가 디자인 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비판받으며 팬의 입장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요소는 바로 대배기량 자연흡기 V8과 결별하고 3.5L V6 트윈터보라는 새로운 짝을 찾은 것일 터이다. 물론 환경 보호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는 기술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명쾌히 되지 않는 것 같은 찜찜함이 남는다. 요즘도 5리터 이상의 엔진을 사용한 스포츠카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설마 그 시절에 유행하던 다운사이징을 슈퍼카에까지 적용시키려 했던 걸까?

가격 또한 문제가 되었는데, 훗날 포드의 차량들에 적용될 각종 신기술이 적용되었기 때문인지 가성비가 출중했던 1세대 GT에 비해 2세대는 40만 달러, 한화로 4억이 훨씬 넘어가는 가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10년 가까이 지났다곤 하지만 단순히 세대가 교체된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차종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비싸졌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갑자기 이렇게 비싸졌을까? 포드가 돈독이 오른 걸까?

이쯤 되면 이러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GT라 함은 그 이름부터가 GT40를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차가 아니었던가? 왜 배기량만이 아니라 GT, 더 나아가서는 미국산 자동차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8기통까지 포기했던 것일까? 더 나아가서, 포드는 왜 2세대 GT를 1세대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가게 했을까? 그들은 왜 과거를 계승하려는 차량에게 미래를 선도하라는 임무를 내려준 것일까?

그것은 1세대에서 이미 과거의 헤리티지를 충분히 어필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고 GT가 포드 유일의 슈퍼카니까 신기술을 집약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2세대 GT가 모터스포츠에 참가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세대 GT는 자신의 선배보다 과거를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GT40의 헤리티지를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GT40의 생김새뿐만이 아닌 '업적'을 계승하려던 것이다. '모터스포츠'라는, GT40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헤리티지를 계승하려고 했던 것이다.

모터스포츠. 2세대 GT에 그 키워드를 대입하면 지금까지 생각했던, 칭찬했던, 신기해했던, 그리고, 의문을 가졌던 모든 요소들의 존재 이유가 말끔히 설명된다. 사실 1세대가 디자인보다도 더 아쉬움을 많이 샀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디자인은 GT40와 거의 다름없게 나왔지만서도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은 크지 않았기 때문. 그렇기에 포드는 2세대의 모터스포츠 진출에 더 목을 맸을지도 모른다.

2세대 GT의 진보적인 공기역학 디자인은 양산차로서도 최고의 효율과 퍼포먼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양산차 기반의 레이스카로 개조할 때 규정상 튜닝이 불가능한 부분을 양산형부터 파격적으로 설계함으로써 공기역학상의 큰 이득을 볼 수 있었고, GT40의 상징 중 하나였던 천장까지 올라오는 도어 라인을 버린 선택은 여느 일반적인 레이스카들과 같은 설계를 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거대했던 V8와 결별하고 굳이 V6 에코부스트라는 새로운 짝을 만나게 했던 그 선택은, 바로 그 V6 에코부스트 엔진이 2010년대 중반 IMSA(미국 최대의 내구 레이스 시리즈)의 실전에서 사용되던 엔진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배기량을 줄이고 실린더 수를 줄임으로써 엔지니어들이 더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해 주어 더욱 타이트한 패키징을 짜는 것도 가능케 했다. 가격 또한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싸진 것.

그런 이유로 인해 GT의 엔진룸은 3.5L V6 엔진조차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다. 미국의 자동차 튜너인 헤네시에서 말하기를 2세대 GT에는 V8이 들어갈 공간조차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2세대 포드 GT는 1세대와는 나아가는 방향 자체가 다른 차량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1세대와 2세대 간의 차이가 큰 것도 납득이 된다. 1세대 GT는 GT40의 생김새를 닮으려고 했다면, 2세대 GT는 GT40가 남긴 발자취도 따라가려고 했던 것. 닮는다는 것과 따라간다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만 얼핏 보기엔 매우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1세대는 육체를 물려받고 2세대는 정신을 물려받아, 두 세대의 GT 모두가 GT40의 직접적인 후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1세대와는 달리 GT40의 형태를 흔적으로만 남겨둔 것이 '새로운 시대의 GT40'이자 'GT40의 정신적 후속'이라는 것을 오히려 더욱 잘 부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되려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내구 레이스의 환경에 맞게 개량된 포드 GT LM GTE-Pro

III 꿈과 유산을 찾아서


그렇게 GT는 GT40의 업적을 계승한다는 꿈을 안고 본래의 목적지인 모터스포츠로 향했다. GT가 향한 곳은 당연히 내구 레이스. 시대의 흐름에 따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1960년대와 2010년대의 프로토타입(LMP1 등의, 양산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레이스만을 위해 만들어진 차량. GT40 또한 당대 최고의 프로토타입이었으나 현재의 프로토타입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고 GT는 양산차였기 때문에 비록 오리지널 GT40처럼 최고 클래스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양산차 개조 부문인 GTE 클래스에 출전한 것이었지만, GT40의 피를 이어받은 차가 르망 24시에서 경쟁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2016 데이토나 24시에서의 GT

GT가 데뷔한 곳은 IMSA의 데이토나 24시. IMSA에서는 GTE 클래스가 없기 때문에 GTLM 클래스로 출전했다. 서킷의 67%가 풀 악셀 구간이며 대각선으로 기울어진 오벌 트랙의 뱅킹을 24시간 동안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르망 24시 못지 않은 혹독한 레이스이다. 전년도 우승 팀인 칩 가내시 레이싱과 파트너십을 맺고 데뷔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데뷔 시즌이었기 때문에 팬들도 2016년 포드의 그리 높은 등수를 기대하진 않았고 GT가 내구 레이스에 돌아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출전한 두 대의 GT는 예선에서 전체 15위와 25위, GTE 클래스의 등수로 따져도 9위와 10위를 기록하며 석연치 못한 포지션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아무리 데뷔 경기라곤 하지만 야심차게 준비한 차량이 뒤에서 2번째와 3번째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건 경기는 14시 40분, 레이스 시작을 알리는 녹색 깃발이 휘날리며 시작됐다. 시작은 예상 외로 매우 순조로웠다. 66번 GT가 시작부터 치고 올라가서 클래스 1위 싸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 한동안 사투를 벌이다 3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개러지에 급하게 입고된 67번 포드

하지만 희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직 열 바퀴도 채 돌지 않은 67번 차량이 피트로 들어와 개러지에 입고되었다. 변속기에 기어를 6단 기어 하나밖에 사용할 수 없는 큰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 변속기는 빠르게 수리할 수가 없는 부위이기 때문에 개러지로 입고되어 현장 인력들의 대규모 수리가 시작됐다.

설상가상으로 66번 차량조차 브레이크 라인이 탈착되어 피트로 들어왔다. 브레이크 라인을 급하게 수리한 다음 재빠르게 다시 트랙으로 내보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66번 차량까지 변속기가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킬스위치 이슈까지 생기며 갓길에 멈춰서기도 하는 등 차가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66번 차량까지 개러지에 입장하게 되며 24시간 중에 20분도 지나지 않아 포드의 데이토나 24시 우승이라는 달콤한 미래는 산산조각났다.

어찌저찌 고친 끝에 정말 다행히도 두 대 모두 완주에 성공해냈지만, GTLM 클래스에서 완주한 차량들 중에서는 꼴찌였다. 하지만 포드는 이에 낙담하지 않았다. 내구성 문제는 데뷔전에서는 누구나 겪을 수 있으므로 낙관적인 태도를 고수했고, 르망 24시가 열리는 WEC(World Endurance Championship)의 2016년 시즌도 시작함에 따라 포드는 유럽으로 향한다.

그래도 르망 24시는 WEC 2016 시즌의 3번째 라운드였고, 그것은 르망 24시가 열리기 이전에 2번의 실전에서 차량을 테스트하고 데이터를 쌓을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스파 6시에서 사고를 겪은 66번 포드

시즌 1라운드와 2라운드는 각각 영국의 실버스톤 서킷과 벨기에의 스파-프랑코르샹 서킷에서 치러졌다. 데뷔전인 실버스톤 6시간 레이스에서 두 대의 포드는 잠시 2위와 3위의 자리에서 달려 보기도 하고, 클래스 4위와 5위를 차지했다. 해당 경기에 참여한 차량들 중 포드 GT가 소속된 GTE-Pro 클래스의 차량이 7대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지만, 데이토나 24시에 비하면 더욱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 다음 라운드인 스파-프랑코르샹 6시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67번 포드가 하위 클래스인 GTE-Am의 페라리와 충돌하며 느려지는가 하면, 경기 종료 1시간을 남겨둔 시점에서 250 km/h에 가까운 속도로 돌파하는 급격한 오르막 코너인 오루즈-라디옹 구간에서 66번 GT의 오른쪽 뒤 타이어가 터지며 스핀하여 방벽에 추돌하는 대형 사고를 내 버렸다. 드라이버는 문제 없이 걸어나왔지만 이 사고는 GT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암시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마침내 르망의 땅을 밟게 된 GT

하지만 포드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낙관적인 태도를 고수했고, 그렇게 GT는 팬들의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안고 프랑스로 향했다. GT는 마침내 1966년 GT40가 우승을 차지했던 땅을 밟았다. 최대 라이벌은 공교롭게도 또 다시 페라리였다. 이번 라운드는 르망 24시인 만큼 포드는 4대라는 많은 수의 차량을 투입했고 전통 강호인 이탈리아의 AF 코르세 팀이 운용하는 페라리 488은 포드가 포디움에도 들지 못했던 영국과 벨기에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차량이었다. 페라리 488 또한 양산형부터가 모터스포츠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이 다분히 보이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강적이었다.

포드는 GT40의 헤리티지를 등에 업고 페라리와 포르쉐를 비롯한 유수의 브랜드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더군다나 2016년은 GT40가 첫 우승을 거뒀던 1966년으로부터 정확히 반 세기가 지난 해였기 때문에 그들은 칼을 갈았다.

그렇게 시작된 예선을 지켜본 이들은 팬들과 관계자를 가릴 것 없이 하나같이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GTE의 예선 순위표 맨 위에 있던 것은 포드였다. 그 바로 밑에 있던 것도 포드였다. 4위도 포드였고, 5위도 포드였다. 바로 전날까지 치러졌던 테스트 세션에서의 최고 기록보다 5초나 빠른 기록이었다. 당연히 선두에서 예선과 레이스를 지배할 것이라고 믿어졌던 페라리와 포르쉐를, 포드는 처음으로, 그리고 너무나 제대로 눌러 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포드에게 모든 시선이 쏠렸고, BoP(Balance of Performance, 시즌 중 또는 경기 중에 각 차량에 적용되는 일종의 실시간 밸런스 패치. 재밌는 경기를 위해 느린 차에게는 어드밴티지를 주고 빠른 차에게는 핸디캡을 줌으로써 성능 평준화를 시키는데 이 때문에 가끔씩 르망 24시 전까지 힘을 숨기는 팀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득을 보려고 그동안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포드에선 강력히 부인했다. ACO는 예선 결과에 따른 BoP를 적용시켜 예선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 포드와 페라리에게는 성능 하향을, 포르쉐를 제외한 나머지 제조사들에게는 성능 상향 조정을 했다. 포드에게 주어진 BoP 사항은 10 kg이라는 무게 핸디캡과 터보 성능의 하향 조정이었다.

대망의 본선 경기는 시작부터 말썽이었다. 비가 와서 경기 시작이 1시간 가까이 지체된 것. 레이스카들은 53분 동안 세이프티 카(안전을 위해 레이스카들 대열의 맨 앞에서 선도하는 차량. 규정상 레이스카들은 세이프티 카를 추월할 수 없다.) 뒤에서 머무르며 르망 역사상 전례가 한 번도 없던 세이프티 카 발령 상태에서 스타트를 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66번 GT가 세이프티 카 상황 속에서 기어박스 압력 부족을 호소했다. 이는 기어 변속에 지장을 주었고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개러지에 입고되었다.

한 시간의 지연 끝에 비가 그치고 트랙이 마르기 시작하자 경기는 드디어 시작되었다. 아직 노면의 빗물이 완전히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한 리어 엔진(미드십보다도 엔진이 더 뒤에 위치한 방식) 레이아웃의 포르쉐 911 RSR이 강력한 뒷바퀴 접지력을 이용하여 치고 올라가 14초에 가깝게 차이를 벌려냈다. 하지만 이내 트랙이 완전히 마르며 포드에게 한 바퀴당 2초라는 무서운 기세로 따라잡히며 리드를 내 준다.

GTE에서 우승을 다툴 것으로 점쳐졌던 AF 코르세와 포르쉐는 초반부를 제외하면 힘을 전혀 쓰지 못하고 맥없이 쓰러졌다. 3대 중 2대의 포르쉐와 2대 중 1대의 AF 코르세 페라리가 150랩도 채우지 못하고 리타이어해 버린 것. 마지막 남은 AF 코르세조차 엔진 문제로 리타이어했고, 그에 따라 열세할 것으로 점쳐졌던 포드, 그리고 페라리의 차량을 사서 쓰는 소규모 팀인 리시 컴페티치오네의 82번 차량이 우승을 놓고 싸우는 장면이 연출되며 예선에 이어 레이스에서도 대이변이 연출되었다.

위기도 많았다. 선수들과 미캐닉들의 집중력이 점점 흐려져가고 사고가 많아지기 시작할 때인 저녁-밤 시간대에 67번 포드가 제동 실수로 모래밭에 갇히며 그 시작을 끊었다. 67번은 자력으로 탈출하진 못했지만 크레인을 이용해 트랙에 복귀하는 데 성공하였고, 그 여파로 사르트 서킷에는 한동안 슬로우 존(사고 등이 발생할 시 안전을 위해 특정 구간에서 다른 모든 차량들을 일정 속도 이하로 달리게 하는 제도)이 걸리게 되었다.

실수와 사고, 피트 스탑 전략 등을 통해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던 포드 진영과 페라리. 그러던 중 68번 포드가 재급유 도중 엔진의 시동을 끄지 못해 피트 레인에 한 번 강제로 들어가야 하는 드라이브 스루 페널티를 부여받게 된다. 이를 통해 82번 페라리가 선두로 치고 나갔으나 드라이버 교대 후 끈기있게 따라잡아 추월해냈다. 페라리는 뒤에서 68번 포드를 계속해서 압박했지만 연속 코너 구간에서 제어를 잃고 트랙 밖으로 빠지게 되면서 포드는 승기를 제대로 잡게 된다.

이때 연료 전략을 비틀어 반등한 차량이 있었으니 바로 3위로 달리고 있던 69번 포드가 피트 스탑을 다른 차량들보다 한 바퀴 더 늦게 하며 맹추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다른 상위권에게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고 1위부터 3위까지 같은 랩을 달리고 있었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68번 포드 또한 연속 커브 구간에서 있었던 82번 페라리의 실수를 기회 삼아 빠른 페이스로 달리며 승리를 굳히는 데에 들어가고 있었고, 1분에 가까운 차이를 벌린다.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고 우승을 차지한 68번 포드

메인 스트레이트에 위치한 거대한 롤렉스는 마침내 경기 종료 시간인 오후 3시를 가리켰고, 그렇게 68번 포드는 모두를 제치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다른 GT들도 네 대 모두 완주에 성공하고 69번과 66번이 3위와 4위를 차지하는 등 굉장한 결과를 거뒀다. GT40가 르망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지 정확히 50년 만의 일이었다. GT40가 남긴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가, 비로소 궁극적인 목적지에 다다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시상대의 1, 3위 자리에 올라선 포드의 드라이버들

그런데 시상식이 끝나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경기 결과표의 정상에는 68번 포드가 아닌 리치 컴페티치오네의 82번 페라리가 있었다. 바로 우승한 68번 포드에게 70초라는 어마어마한 페널티가 들어와 버린 것. 페널티 사유는 바퀴에 달린 속도 센서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고 슬로우 존에서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않았기 때문. 다른 종목이었다면 그리 큰 타격을 입지 않았겠지만 24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달리는 르망이었기에 페널티 타임도 그만큼 긴 것이었다. 1966년 이후 정확히 50년 만의, 최고 같았던 포드의 우승이 이렇게 허망하고 어이 없게 끝날 줄 누가 알았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82번 리치 컴페티치오네 역시 오렌지볼기(즉시 차량을 수리하라는 명령의 깃발)를 여러 차례 받았으나 차량 수리를 즉시 진행하지 않아 20초 페널티를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은, 포드가 다시 우승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2016 르망 24시의 최종 우승 팀은 포드가 되었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 셀 수도 없이 많았던 반전 속에서 끝끝내 포드는 우승을 쟁취해 냈다. GT40가 남긴 르망 우승이라는 헤리티지를 계승해내는 데 완벽히 성공한 GT의 가장 중대한 임무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헨리 포드 박물관에 전시된 르망 24시 우승 차량. GT의 뒤에 있는 빨간 차량이 바로 1967년 르망 24시에서 우승한 GT40 Mk.IV이다.

포드와 GT는 GT40의 르망 우승 50주년을 맞아 모두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미국으로 돌아왔다. 승리의 영광을 쟁취한 68번 GT는 고국으로 돌아와 내구 레이스의 훈장과도 같은 먼지와 벌레, 기름때를 실컷 뒤집어쓴 레이스 피니시 때의 몰골 그대로 헨리 포드 박물관에 자신의 대선배인 GT40 Mk.IV의 옆에 나란히 전시되는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이 우승은 비록 종합 우승이 아닌 클래스 우승이었지만 포드에게는 의미가 아주 크다. 2016년은 1966년에 이어 포드로서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달콤한 해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이 우승을 통해 포드는 GT의 존재 의의였던 GT40의 모든 헤리티지를 계승해내는 데 성공했고 그것은 GT가 어느새 위대한 차량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그렇다, 완벽이란 단어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던 이전과 달리, GT는 이제 비로소 포드 최초이자 유일의 슈퍼카로서 맡은 임무와 본연의 목적을 모두 달성해낸, 완전히 위대한 차량이 된 것이다. 이제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III CAR GO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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