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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 GO STUDIOS Jul 22. 2021

유니콘에 올라탄 찰나의 기억, BMW E60 M5

문상원 작가

III 선망, 그것은 건강한 꿈

전설은 실존하기 때문에 전설인 것인가? 아니면 누구도 포착하여 실존치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전설인가? 나는 확실히 전자에 속한다. 어쨌거나 누군가는 봤고 그게 퍼져 누구나 관심을 가지면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니까 전설 아니겠는가. 너무 존재론적인 생각이었을까. BMW E60 M5라는 것은 마치 유니콘과도 같은 존재이다. 유튜브에서 볼 순 있지만 실제로 만나볼 수는 없는, 만나봤다는 경험담도 듣기 어려운 그런 느낌말이다. R34 스카이라인을 비롯한 여러 JDM들이 그러하고 페라리 599 GTB 같이 어느샌가 자취를 감춰버린 00년대 슈퍼카들이 그렇다. 그야말로 전설 같은 이야기들 아니겠는가.

첫 사진속의 메르세대스 SLR 멕라렌과 이 사진속의 포르쉐 카레라 GT는 선망의 대상으로 아주 적절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린 선망한다. 911을 사지 못할지언정 가지겠다는 꿈을 가지는 게 건강한 꿈이라고 말하듯 우리의 덕질은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선망의 차들 중에서도 E60 M5가 궁금했다. 그 유니콘의 속살이 무엇인지. E60 M5의 알맹이는 무엇일지.

5리터 자연흡기 10기통, 싱글 클러치 SMG 트랜스미션, 8700 RPM의 한계 회전수. 그것은 확실히 문 네 짝 세단에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다.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동경, 그것은 남자라면 당연히 해보는 일이다. 가지지도 못할 것을 왜 바라는 것일까.


그것은 가지지 못해도 동경함으로써 삶의 동력을 얻기 때문이라 상술했다. 그러면 왜 10년 넘은 오래된 수입차를 동경하는가? 결코 논리적인 행동은 아닌 것 같다. 논리적인 이유로 차가 좋았다면 당연히 스펙 짱짱하고 슈퍼카 콧대를 눌렀다는 자만심에 가득 찬 전기차에 환호성을 질렀을 텐데 고작 507마력짜리 10기통에 환호하다니..... 이것도 정말 웃기다. 고작 507마력이라고 말하다니... 마력 인플레이션이란 무서운 것이다. 전기차 때문에 숫자가 무의미해지고 있으니 내연차의 건재함이 예전 같지 않다.


III 하지만 클래스는 영원한 것

집이 가까우니 데려다 드리겠다는 이사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간 주차장에서 오전 날 감탄했던 E60 M5의 문을 여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영원한 클래스의 실체를 확인하다니, 유니콘의 등에 올라타는 것은 거창하지 않은 찰나에 다가온 기회라고 생각했다. E60의 경우 M 스포츠 패키지가 워낙 많이 보급되어서 다른 세대들의 M5보다도 진짜를 가려내기가 힘들고 고성능 모델에 반쯤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펜더 플레어 하나 없다. 오타쿠의 눈으로 포착하고선 로또라도 사야 할 것처럼 환호하는 덕후와 달리 일반인들 눈에는 도무지 오래된 5시리즈에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 차를 오래됐다고 말하다니, 이상하다. 분명 내 마음속 현역은 F10이었는데 벌써 E60이 두세대나 뒤처져있는 신세인 건가. 여전히 늙지 않은 불로초 먹은 외모를 자랑하는 차의 연식은 2008년. 믿기 어렵다. 논란과 비난으로 점철됐던 크리스 뱅글의 디자인은 한 강산이 변하고도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른 지금에서야 빛을 발했다. 군더더기 없고 초롱초롱한 엔젤아이의 눈빛으로 우릴 맞이하던 M5는 그 연식을 믿기 어렵게 했다. 과연 천재는 시대를 앞서있는 것이다. 너무 앞선 것이 아니라 5년 10년만 앞섰기에 그가 성공했을 터이다. 일반인들이 이해 가능한 신선함이 만인의 인정을 부르는 것이니까.

문을 열고 조수석에 탑승했다. 문을 여는 단순한 감각인데 감동이 밀려온다. 묵직한 감각 때문이다. 무언가 꽉차고 견고한 느낌의 알루미늄이나 주철 계열의 뭔가를 만져보는 듯한 금속의 느낌. 실로 오랜만이다. 아시아 시장, 특히 중국 시장의 압도적인 판매량은 순혈에 다른 피를 섞게 했다. 일본차처럼 가볍고 편하게 열리는 문짝의 감각이 보급된지 꽤 되었는데 자본주의 논리에서 어쩌겠나, 돈 많이 주는 사람 말 들어야 더 돈 많이 벌지. 깔끔한 감정이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제 이런 식의 문짝 감각이 남아있는 독일제 차량은 폭스바겐 정도. 특히 투아렉이나 파사트 B8에서 그런 감각을 맛볼 수 있다.


도어 캐치를 잡고 문을 당겼을 때 철컥과 덜컥 그 어딘가에 있는 느낌. E39에서 느꼈던 기분과 비슷하다. E39가 친절하지 못한 찐 독일차의 기분이었다면 E60은 현대적인 업데이트가 이뤄진 기분. 너무 커져버린 차들의 사이즈 때문에 문짝의 길이조차 길어진 지금, 뒷문짝을 열고 닫는 느낌이 특히 좋다.


실내에 앉으니 여러 군데로 쪼개져서 자세를 주무를 수 있는 시트가 몸을 반기고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철저히 따른 현대식 자동차 인테리어의 정의를 논했던 센터페시아를 바라본다. 옛날 집 장롱 보는 듯한 우드그레인 대신 자리한 강화 플라스틱의 실내. 유지도 편하고 여전히 세련됐다. 흑백으로 아웃라인을 가르고 대비를 주어 눈에도 편하다.

시대가 따라가지 못했던 디스플레이 기술의 이유로 상대적으로 옹졸한 i Drive 모니터가 내심 아쉽다. 이제는 쓸 일이 없다. 너무 낡았고 핸드폰으로도 대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제품은 늦게 사는 게 이득이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전자식 M 전용 기어봉은 처음 봤던 설렘 그대로다. 작지만 존재감이 상당하다. 2003년 그 첫 등장 때는 얼마나 더 충격적이였을까.

시동을 걸어도 흥분하지 않는다. 6기통 이상의 고급차들이 부드러운 진동의 신호만을 전달하듯 507 마력의 S85 유닛도 그렇게 눈을 떴다. 어른스럽다. 진정 비즈니스 세단의 덕목을 지킨 M5는 응당 이래야 하는 것이다. 유단자가 무술을 철저히 숨기듯이 이차도 자신의 실력을 숨기는 것이다. 차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작은 코너들을 해집고 지나면서 느껴지는 잔충격들은 SMG 트랜스미션의 존재감이다.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기뻤다. 평범한 세단의 탈을 쓴 존재의 숨길 수 없는 스포츠카의 본성이 툭툭 튀어나왔다.

엔진의 회전 리미트는 아직 8700 RPM에 다다르지 않았지만 교차로를 지난 이사님은 곧장 킥다운을 치면서 7천까지 엔진을 회전시켰다. 순정 배기의 사운드는 천지를 찢을 굉음을 터뜨리진 않지만, 실내로 유입되는 엔진의 활동은 지구상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다. 가치를 매기기 어려운 바이올린을 키는 듯한 부드럽고도 견고하기 그지없는 회전 감각. 회전계가 6천 RPM을 가리키지만 진동이 적다.


오히려 고회전에 가까울수록 엔진의 장기가 나타난다. 좀 달려보나 싶었지만 여기까지만 맛봤다. 어차피 약간의 고속도로를 타는 나의 귀갓길은 오마카세에서 두번째 코스 정도만 먹고 나가는 것과 같으니까. 너무 아쉬운데 어쩌겠나? 거기서 어딜 또 갈곳이 있었겠나. 동네 안으로 차는 진입했고 엔진 소리는 잦아들며 M5는 다시 영락없는 528i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홀연히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이 날 부추겼다. 하지만 머릿속 망상이였을 뿐이다.

집 바로 앞에 도착한 뒤, 차에서 내려서 짐을 빼는 동안 은근한 마음속에선 본래의 갈길을 찾아나서는 차의 퇴장을 보고 싶었지만, 이를 가로막았던 이사님의 담배 타임은 집으로 발길을 돌리게했다. 탓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집에 가야하는데 돌아가는 자동차 하나 보겠다고 목빼고 차를 지긋히 바라본다는게 더 이상하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 것은 내가 확실히 차덕후라는 반증일테다. 비록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M5와 내가 가진 짤막한 기억은 이 포스트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III CAR GO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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