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중독을 넘어 건강수명까지 좌우하는 독서
1. 어느 날 독서에 관한 일기를 쓴 것이 있어 옮겨 적습니다.
활자중독!
책이 집안의 벽이 되었다.
책이 침대가 되었다.
책에 누워 자는데
책도 나와 함께 잔다.
나도 책이 되는 밤이다.
'한서이불과 논어병풍을 덮고'
차가운 겨울을 이겨낸 간서치 이덕무의 삶에 공감하는 밤이다.
서재와 거실, 그리고 두 딸의 방에도 책이 가득하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이제 밀레의 서재를 책벗으로 삼기로 했다.
검색도 빠르게 할 수 있고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본다.
그런데 허전하다.
활자와 종이 냄새가 나지 않으니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잃었다.
책을 읽는다고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아주 아주 풍요로움을 느낀다.
나는 믿는다.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독서의 힘을.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그래서 또 책을 샀는데
하지(夏至)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미안한 마음으로 새벽배송을 시켰다.
새벽에 현관문을 조용히 열고
책을 펼칠 때
혼자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설렘이 가득하다.
활자가 살아있다.
2. 김찬호는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 책에서
건강수명을 좌우하는 것은 독서라고 했습니다.
미국 예일대에서 이러한 사실을 조사하여 발표했는데,
배움에 대한 열정이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독서를 하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웰빙을 도모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관계가 풍부하고 지성적인 사람들을 가까이하여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높아서 건강하다고 합니다.
3. 책은 시간여행자입니다.
책을 읽으면 가끔 현재를 벗어나 미래에 산다는 느낌입니다.
옛날은 오래된 미래고 미래는 현재이면서 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동시성과 비동시성이라는 말이 있나 봅니다.
지은이와 함께 살고 있지는 않지만(비동시성) 공감하며 함께 느끼는(동시성) 것이
책 읽기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갈 때 행복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좋아하고
4.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피아노를 좋아하고
모두 좋아하는 것을 쫓아갑니다.
글렌 굴드(1932~1982)가 바흐의 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며 책을 읽을 때가 참 좋습니다.
바흐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중에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좋아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벌은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피아노를 좋아했던 그에게 최고의 형벌은 피아노 곁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굴드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맑은 영혼의 손가락에 바흐가 영감을 보낸 듯하고
바흐와 함께 피아노 건반과 수평이 되도록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열정이 가득하면서도 차가운, 모순 가득한 『뜨거운 얼음』이었는지 알게 합니다.
5. 인공지능 챗GPT시대를 살아가면서 독서는 왜 해야 할까요?
인터넷에 다 있는데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검색의 시대에 왜 사색은 필요할까요?
아는데 모르는 모순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데이터는 넘쳐 빅데이터시대가 되었고
정보홍수의 시대에도 지식과 지혜에 대한 갈망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스티븐 킹이 말한 “모든 오래된 것이 머지않아 새로운 것으로 탄생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오래된 미래인 옛것은 어떤 힘을 발휘할까요?
책을 읽는 아날로그는 디지털의 바탕일까요?
6. 정민의 책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에는 <옛 선비들의 독서법> 다섯 갈래를 소개합니다.
➊ 소리 내어 되풀이해 읽는 인성구기(因聲求氣)의 독서: 소리 내서 낭독하며 정독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독서
➋ 정보를 계열화하여 정리하며 읽는 초서(鈔書) 방식의 독서: 수많은 정보의 우열을 판단하고 재배열하여 능동적으로 탐구하는 독서. 다양한 정보 속에서 가치를 판단하고 요령 있게 배열하여 체계적으로 계층화하는 독서 방법.
➌ 의문을 품어 궁리하고 따져 보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독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의심 하며 망설일 때, 따져보며 옳고 그름을 살피고 물음을 던지며 궁리하는 독서. 격물(格物)의 격(格)은 밑바닥까지 다 캔다는 뜻.
➍ 오성을 열어 통찰력을 길러주는 이의 역지(以意逆志)의 독서: 나의 뜻으로 옛사람의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완전히 간격 없이 만나게 되는 경지. 문맥과 맥락을 제대로 짚어 글쓴이의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읽는 독서.
➎ 텍스트를 넘어서서 천하 사물로 확장되는 살아있는 독서 : 활자를 넘어 우주만물, 세상과 소통하는 독서. 꼭 활자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배움이 가득하다는 의미.
7. 유퀴즈에 49년간 청취자들과 함께 한 '싱글벙글 쇼'의 작가 김신욱이 출연하여
일상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를 "쌀로 밥 짓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라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말은 감동을 줄 수 없듯
글을 읽고 뻔한 이야기를 하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정민은 연암의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여 말합니다.
그대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를 읽었다는데, 내가 보니 글만 읽었지 거기에 담긴 사마천의 마음은 읽지 못한 것 같소. 어떻게 아냐고요? 《사기》중 <항우본기>를 읽으면 항우의 용맹에 놀란 제후들이 싸울 생각도 못하고 성벽 위에서 놀란 눈으로 싸움 구정 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약사 고점리가 축筑이란 악기를 던지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말일뿐입니다. 부뚜막 아래서 숟가락 주웠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이가 나비 잡는 모습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잡았다 싶었는데 나비는 그만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본 사람은 없고, 창피해서 씩 웃다가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책을 저술할 때의 심정입니다.
연암은 책을 읽고 사실만 나열하거나 줄거리만 이야기하는 것은 별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사마천의 마음을 헤아려 본질을 파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잡았구나 싶었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을 때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읽어야 사마천의 뜻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문장과 글 속에 담긴 맥락을 헤아려 사마천의 안타까움을 읽어야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8.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교사는 굴뚝청소 일화를 통해 질문 자체를 의심하라고 가르칩니다. 교사는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질문이 잘못된 것을 의심하지 않고 질문 자체에 답을 하려고만 합니다. 두 아이가 굴뚝청소를 함께 했는데 한 아이만 깨끗하다는 전제를 의심하지 않고 답변만 계속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교사는 질문자체에 의문을 가지고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뫼비우스 띠를 통해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도형은 안과 밖이 나누어져 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뫼우스 띠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교사는 학생들에게 질문자체를 의심하고, 고정관념을 버려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9. 이렇게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글의 본질과 중심내용을 사실대로 읽고, 글쓴이의 의도와 숨겨진 의도를 추론하며 읽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글쓴이의 생각과 관점을 따져보면서 읽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의문을 가지면서 대안을 찾으며 창의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독서를 제대로 하려면 고정관념과 편견, 선입견 등 바른 앎을 방해하는 것을 넘어 의문을 가지고 궁리하며 읽어야 합니다. 독서를 제대로 하면 인식(認識)을 넘어 지식(知識)을 쌓고, 밝게 알고 통찰하는 지혜(智惠)를 쌓을 수 있습니다. (식識-그냥 아는 수준, 지(知)-깊이 아는 수준, 지(智)-환하게 아는 수준)
10. 참다운 앎을 위해서는 우리가 대하는 사물과 사실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심하고 선입견과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일상 속박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마르쿠제가 말한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1차원적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올바른 식견을 가지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안목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공지능 챗GPT 정보화 사회 속에서 엄청난 정보를 수렴하기에 급급해하지 말고, 올바른 식견을 가지기 위해 바람직한 목적과 방법으로 독서를 해야 조금 더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좀 더 유능해져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문제해결을 창의적으로 하여 사회에 기여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 아닐까 합니다.
* 다음 글은 <건강>입니다. 건강한 삶은 행복의 기본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