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석 소설 <범도> 중 좋아하는 문장
광복절 전후로 방현석 소설 <범도>나 님웨일즈의 <아리랑>을 거듭 읽곤 합니다.
오늘도 <범도>의 중요한 문장을 읽고 메모한 것을 적어봅니다.
나는 그의 뜨거움이 어떤 일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함의 여러 형태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어떤 필요나 목적을 저울질하지 않고 언제라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드문 인간이었다.
메모: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그의 마음”이 마음에 남는다. 사람을 어진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사람에게 따뜻하게 말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방법이 무엇인지 김수협이라는 멋진 사람을 통해 배우고 느꼈다.
2. 유인석은 나라가 변란에 처했을 때 선비가 취한 처신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가 의병을 일으켜 난적을 깨끗이 쓸어버린다는 것 의거소청(義擧掃淸)
둘째가 다른 곳으로 떠나서라도 대의를 지킨다는 거지수구(去之守舊)
셋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깨끗함을 지킨다는 자정치명(自靖致命)
메모: 진정한 선비정신은 공명정대한 마음이다.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아까운 생명을 내놓을 줄 아는 대의를 실행하는 자가 선비다.
3. 임창근 총대장은 내게 “사람의 말은 감추고 속일 수 있지만, 행동은 숨길 수가 없네”라고 한 말을 생각함. “사람이 하는 행동이란 마치 날아가는 탄환과 같은 것일세. 탄환이 가던 방향을 바꾸어 날아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의 행동도 그런 것이네. 지금까지 그가 해온 행동이 앞으로 할 행동이네.”
메모: 말보다 행동을 보고 판단한다. 사람이 하는 행동은 날아가는 탄환처럼 정직하다. 행동은 그 사람의 신념과 습관이다. 행동을 보며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 씀씀이를 본다. 예전에 <젓가락과 인품>이라는 글을 본적이 떠 올랐다. 아버지가 아들이게 이렇게 말했다.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개는 알 수 있단다! 아까 그 친구는 음식을 집을 때, 습관적으로 접시 아래쪽에 있는 음식을 젓가락으로 위로 끄집어 올려 툭툭 털고 나서야 집어 올리더구나! 입에 맞는 음식은 특히 여러 번 뒤적거리 더라고! 젓가락이 무슨 뒤집개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접시 전체를 새로 한 차례 뒤집어엎더구나!” 이 친구는 사업하는 사람으로 사는 형편이 곤란하지도 않은데, 먹는 모습이 그렇다는 건, 이 친구가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람이라는 증거야! 음식 앞에서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젓가락을 접시 안으로 넣어 뒤적거리는 사람이라면, 앞에 둔 것이 이익에 관계된 유혹일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테지!”
요즘은 대부분 의자에 앉아 밥을 먹지만 예전에는 방석에 앉아 먹는 곳이 많았다.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방석을 던지며 앉는 친구와 거리를 두었다.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 친구들은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다. 사회생활하면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 꼭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살펴보고 판단하는데 행동이 탄환과 같다는 말에 동의하고 공감을 많이 했다.
4. 항일연합포연대와 의병대의 차이는 가장 많이 싸우고 가장 크게 이겼고, 가장 적게 지고 가장 적게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 대원 하나의 목숨이 적의 목숨 열 개보다 귀하다.
메모: 참다운 군인이라면 부하를 아끼고 부대원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의 공을 위해 부하를 사지로 내모는 것은 군인이 아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지휘관은 군인이 아니다. 채해병의 목숨을 앗아간 해병대 책임자들은 대원 하나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기나 했을까? 나쁜 놈들
5. 리범윤의 사포대를 믿고 박기만이 이런 뻔뻔한 일을 했다. 박기만은 수이푼강 유역의 조선인 마을에서 손꼽히는 지주였다.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지주들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불하받은 토지를 자기보다 늦게 이주해 온 동포에게 소작을 주었다. 그런 지주들은 조선 왕실의 후광을 업은 리범윤을 후원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데 사포대를 이용했다.
박기만의 도둑질보다 더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이었다.
메모: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이 판을 친다. 정말 몰염치하고 예의가 없는 정부인사들을 보면 천불이 난다. 예의염치가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고 뻔뻔하다. 도둑질을 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뻔뻔한 철면피다. 우리 사회는 예의염치가 없는 뻔뻔한 사람이 늘어간다.
예의염치는 ‘관자(管子)’ 목민(牧民) 편에 나온다. 나라에는 네 가지의 벼리(원칙)가 있으니 예의염치이다. 네 가지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 국유사유하니 예의염치라 사유부장이면 국내멸망이라(國有四維하니 禮義廉恥라 四維不張이면 國乃滅亡이라) 예의는 사람의 기본적 품격이다. 정의는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공명정대하게 옳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렴은 몸과 마음가짐이 맑고 깨끗하며 청렴한 것이다. 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고 정의감이 없으며 청렴함과 부끄러움이 없으면 개인도 망하고 나라도 망한다는 것이다. 염치가 없는 것을 몰염치(沒廉恥)하다고 한다. 도덕 감정이나 양심이 없다. 몰염치보다 더한 것이 파렴치(破廉恥)한 것을 말한다. 恥(치)는 귀(耳)와 마음(心)이 합쳐진 글자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받아도 못 들은 척하고 한다. 도리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거리낌 없이 하는 뻔뻔한 것이 부끄러울 치(恥)다. 예의와 염치를 지키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6. 한때 훌륭하고 아름다웠던 인간이 변절하고 추하게 타락하는 경우는 많아도 그 반대는 희귀했다. 모자라고 부족한 인간이 나아지는 것은 보았지만 더러운 인간이 아름답게 변한 것은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메모: 한 때는 학생운동을 하며 바른말을 많이 한 사람이 변절하고 추하게 타락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좌파에서 극우 수구 꼴통이 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개관사정(蓋棺事定)! 사람에 대한 평가는 죽을 때까지 알 수가 없다. 관을 덮고 나서야 일의 옳고 그름을 정할 수 있다.
7. 이동휘 선생에 관한 평가
한양의 사관 양성소를 나와 참령으로 강화진위대장을 지낸 이동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행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문무를 겸비한 그가 지나간 마을마다 학교 하나와 운동장하나가 생긴다는 소문을 몰고 다니는 이동휘였다. 연해주로 건너와 대한광복군 정부의 수반을 맡은 이동휘의 해박한 지식과 명쾌한 판단력, 거침없는 실행력은 눈부셨다. 내가 놀란 것은 그의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그 뛰어난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는 손톱만큼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의 문제는 어디서나 지식과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지식과 능력을 자기를 위해서만 쓰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지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조직일수록 분란은 끊이지 않았다. 권업회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같은 일을 두고도 자기 파당의 이익에 따라 어제는 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가 오늘은 이 이유를 내세워 찬성하며 상대를 비난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도 희생과 책임은 피하고 이익과 세력은 챙기려는 의도가 감춰지는 것이 아님에도 그랬다.
이동휘는 달랐다. 자기 파당의 유불리를 염두에 두고 주판알을 튕기는 일이 일절 없었다. 그가 연해주에 오기 전의 대한광복군 정부와 그가 온 다음의 대한광복군 정부는 완전히 달랐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아래였지만 우러러보였다. 대한광복군 정부의 수반으로 조금 모자람도 없었다. 든든했다. 나는 그가 아주 마음에 들었고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도 내가 여전히 노동회를 늘려나가며 비밀리에 군대를 조직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금방 알아차리는 사이가 되었다.
메모: 소설 범도에는 참 훌륭한 사람이 많이 나온다. 그중 이동휘 선생은 공명정대한 마음으로 살아간 어른 중에 어른이다.
8. “세상을 바꾸려 덤벼들었으나 세상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 바뀝니까. 세상보다 훨씬 바꾸기 쉬운 자기를 바꿔 적에게 빌붙는 자가 변절자고, 변절자 중에서 제 능력으로는 차지할 수 없는 것을 차지하려고 동지를 파는 자가 밀정이지요. 단순한 변절자는 저를 팔아 원하는 것을 얻지만, 밀정은 남을 팔아 제 것이 아닌 것을 차지하려 들지요. 저 하나만 팔아먹은 놈은 몰라도, 저 하나로 모자라 팔지 말아야 할 동지를 팔아넘긴 배반자는, 처단해야지요.”
메모: 카피라이터 정철이 <사람사전>에 간첩을 이렇게 썼다.
“스파이와 같은 말. 밀정과 같은 말, 이들은 모두 상대 기밀을 은밀히 알아내는 일을 한다. 그런데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많이 다르다. 스파이는 스마트한 신사, 밀정은 독립투사, 간첩은 악마.”
스파이는 제임스 본드가 떠 오르고 밀정은 송강호가 생각난다. 간첩은 뉴라이트 같은 놈들이다.
전우용 선생은 첩자, 간첩, 세작, 밀정, 오열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1)첩자: 첩자는 적국에 침투한 이제 정보요원이라는 뜻이라서 영어로는 spy고 또 좀 조금 더 높인 말로 첩보원을 말함
(2) 간첩: 첩자 중에서 우리 편에 들어와 있는 적의 첩자를 특정해서 보통 간첩이라고 한다.
(3) 세작: 세작은 정보 수집보다는 이제 민심 교란, 정보 공작, 정치 공작 이런 것들을 담당하는 그런 사람들을 이제 세작이라고 그래요. 세부 공작이라는 뜻이잖아요. 영어로는 Agent 라고 함.
(4) 밀정: 밀정은 이제 영어는 perdue인데 영어로 쓰기보다는 보통 러시아어 프락치라고 함. 우리말로는 끄나풀, 앞잡이 이렇게 써요. 그래서 이쪽은 이제 정의하자면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정보기관의 대민 사찰에 이용되는 하찮은 인간.
(5) 오열: 오열은 이제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 장군이 반파시스트 진영으로 네 개 부대를 이끌고 가면서 적진에 우리 부대가, 숨겨진 우리 부대가 또 하나 있다고 하여 그것을 오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