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생각나는 김 중위

by 홍만식

녹음이 우거지고 개망초가 만발한 양재천을 산책할 때, 현충일 추모 사이렌이 울렸다.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면서 군복무 중에 순국한 김 중위가 생각났다.

친구, 중위는 청춘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26세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는 성격이 밝고 명랑하며, 항상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미남 청년이었다. 나는 친구가 군에 입대하기 전 날, 함께 밤을 지새우고 용산역에서 배웅하였다. 그리고 휴가를 나오면 북한산을 함께 오르며, 희망찬 내일의 꿈을 논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1981년 어느 날, 중위가 갑자기 전방에서 순국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여 가슴이 먹먹하고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ROTC를 마치고 최전방, GP(Guard Post)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중위가 철책선 주변을 순찰할 때 부하 대원이 밟은 지뢰가 터져 순직하였던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김 중위의 장례식에 유가족과 여러 친구들이 참석하여 애도를 표했다. 그런데 친구의 어머니가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땅을 치며 대성통곡하고, 중위의 약혼녀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김 중위가 이 세상을 떠나자,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두렵고 오묘한 죽음이라는 명제를 놓고 그 해답을 찾는데 갈급하기도 한다.

죽음의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천수를 누리고 기력이 쇠잔하여 저절로 기능이 멈추는 자연사가 있는가 하면, 내 친구처럼 아직 창창한 나이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음을 맞는 우연사도 있다.

김 중위는 불교 신자라 아마도 극락으로 갔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종교는 죽음의 문화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질문을 종교에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김 중위가 순국한 지 40여 년의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민주주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누구를 기억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내 친구, 김 중위는 꽃 같은 나이, 26세에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다 하늘나라로 갔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다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거룩하게 순국한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다 가기 전에 꽃다발을 들고 친구 소를 찾아가 "우리는 너를 영원히 기억할게!"라고 말하고 싶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군인과 경찰, 그리고 순국선열께 존경의 마음을 드리며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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