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같은 목숨이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시달리다 간다". 이 글은 어느 시인의 묘비명에 있는 시구(詩句)다. 나는 이 묘비명을 볼 때마다 가슴이 시리고 삶이 허무하다고 느낀다. 나와 동서지간인 시인은 '비원(悲願)'이란 시를 쓰고, 자식들에게 이 시를 묘비명으로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가수 양희은이 부른 노래 '아침이슬'은 인생의 허무함을 아침이슬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1970년대부터 청춘들이 즐겨 부르고 지금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
1970년대 가수 양희은과 같은대학교를 다녔다. 캠퍼스에서 시국과 관련한 데모를 할 때, 양희은이 학생들 앞에 나와, '아침이슬'을 부르면 모두가 힘차게 따라 불렀다. 어느 여학생은 서러움을 참지 못해 흐느끼기도 했다. 공교롭게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학생이었다. 그는 학생들이 데모할 때에도 혼자서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쓸쓸한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960년대 인기 절정이었던 대중가요, '하숙생'은 지금도 사람들이 즐겨 부른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가사가 철학적이고가수 최희준의 구수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정(情)이나 미련조차도 두지 말자는 노래 가사에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함이 배어 있다.
불교는 인간이 겪는 네 가지 고통을 '생로병사(生老病死)'라 설하고, 기독교는 인간은 원죄(原罪)를 갖고 태어난다는 교리를 가르친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기쁨과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도 함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각자 인생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살아가기에 이슬이나 구름 같은 슬픈 분위기를 읽을 수 없다. 사실 인생이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허무하게 또는 행복하게 느낄 수도 있다.
미국문학의 대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 바로 그것이 행복이다.”라고 했으며 링컨 대통령은 "대부분 사람들은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저술가 겸 비평가인 존 러스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는 각자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했다.
우리가 긍정적인 사고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땐 인생은 이슬이나 구름은 아니라, 하늘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밝게 비치는 태양이라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