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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12. 2023

내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네

영국 법률가 토마스 모어 이야기

1535년 6월 5일 월요일, 토마스 모어(Thomas More)는 딸에게 '신에게 가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다음날 9시가 되기 직전, 런던외부에 흔들리는 처형대를 오르며 책임자에게 "자기가 무사히 오르겠으나 내려올 때는 알아서 내려오게 해 달라."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리고 사형 집행인에게 자신의 목이 매우 짧으니 잘못 쳐서는 안 되겠지만 용기를 내고 두려움 없이 임무를 수행하라고 격려했다. 그가 처형대에 머리를 얹기 전에 수염을 옆으로 잡아당기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네."였다.


토마스 모어는 런던의 법률가인 존 모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캔터베리 대주교, 존 모턴을 섬기고 나중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아버지 요구로 중퇴하여 법률가가 되려고 링컨 법학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법학원 졸업 후 변호사가 되었으며 26세 나이에 의회에서도 의석을 차지했다. 는 성공한 변호사, 저명한 인문주의 학자, 학식 높은 신학자였을 뿐 아니라 1518년부터는 왕실에서 일했으며 1529년에는 대법관이 되었다.

Thomas More

캐서린 아라곤과 이혼하고자 하는 헨리 8세의 결심을 인정할 수도 지지할 수도 없던 그는 1532년 5월에 사임했다. 그러나 교회의 수장이 교황이 아니라 왕이라는 서약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영국 국교회를 지배하려는 헨리 8세의 결심은 곧 그 자신이 매우 싫어했던 프로테스탄티즘의 길을 열어줬다.


모어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전형적인 순교자가 되었다. 1935년 그는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황제 카를 5세는 모어의 처형에 대해 "그토록 훌륭한 의원을 잃느니... 우리는 최고의 도시를 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출처 : 토머스 모어가 런던탑에서 처형당하다. 제임스 J. 해리슨)


토마스 모어는 이상적 국가상을 그린 명저 <유토피아>를 썼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에서 따온 것으로 U는 '없다'는 의미고 topia는 '장소'라는 뜻이다. 즉, 그런 세상은 없다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1500년 당시, 영국에서 양모 값이 폭등하자 귀족들은 밀밭을 초지로 바꿔 양 떼를 키우기 시작했다. 대대손손 땅에 붙어 생계를 이어오는 농민들은 토지에서 쫓겨나 부랑자로, 거지로 거리를 떠돌게 되었다.

토마스 모어는 이런 사회 현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는 유토피아에서 당시 영국 농민들이 겪던 처참한 삶의 현실을 고발한다. 유토피아 제1부에 등장하는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라는 유명한 구절은 그가 살던 시대 현실에 대한 풍자인 것이다. 모어는 사유 재산 폐지, 2년 도농 간 순환살림살이, 주민자치제, 하루 6시간 노동 등을 내세우며 시민이 주인인 나라를 선포한다. 이것이 그가 꿈꿨던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가 지은 말이다. 당시 길거리 거지나 부랑자들이 생겨난 원인을 귀족이나 국가의 탓으로 돌린 그의 예리한 판단과 용기에 감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당한 사회를 고발하는 것이 철학자의 임무이듯, 영국 사회의 불의를 고발했던 것이다.


<유토피아>는 16세기부터 지금까지 현실을 비판하고 이상을 지향하는 모든 사회운동의 기초가 되어 왔다. 하지만 그 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유토피아라는 것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사람도 많지만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현실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유토피아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런데 토마스 모어가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지켜지나라이다. 토마스 모어가 지향하는 '고결한 양심''불멸의 영혼'그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


오늘 저녁 뉴스에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집회와 사회지도자가 검찰에 들락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이 세상에 없는 이상향나라인가?

토마스 모어가 고귀한 양심과 불멸의 영혼을 대신하여 죽음을 선택한지 근 500년의 세월이 흘렀다. 토마스 무어가 살던 당시,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었지만 지금은 누가 사람을 잡아먹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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