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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Mar 31. 2024

연잎과 새우젓

  꽃이 만발한 어느 해 봄날, 양재동에서 고향 친구들과 모임을 했다. 오늘은 웬일인지 무릎 건강이 좋지 않은 철수오랜만에 참석했다. 철수의 표정이 밝아졌고 건강해 보였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무릎 통증이 완쾌되고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하였더니 몸상태가 완전 정상으로 회복되었네."

  친구들은 놀라운 표정을 짓고 치료 경과를 물어보았더니 철수는 민간요법으로 완치했다는 기적 같은 소리를 했다. 사실 철수 동생이 S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지만 양의 치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철수우연히 초등학교 동창, 문식이를 고향에서 만났던 인연이 무릎 치료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문식이 농촌지도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으로서 민간요법에 해박한 지식이 있고 경험도 풍부해 친구들이 신뢰하는 편이다.

  철수문식이에게 무릎 통증을 호소하고 치료요법을 부탁하니 송진가루에 들기름을 섞어서 무릎 부위에 꾸준히 바르면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지시대로 따라 했더 상태가 아주 좋아졌고 지금은 거의 완치되었다고 자신 있게 설명했다.


  우리는  친구가 완치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으며 문식 친구를 의사 이상으로 신뢰하게 되었고 민간요법도 때로는 효험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철수에게 다른 민간요법 얘기는 없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뱃살 빼는 비법을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를 힘주어서 대답다. 즉, 새우 젓갈을 연잎에 싸서 배 위에 올려놓고 하룻밤만 자면 즉시 효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아내가 뱃살이 쪄서 신경을 쓰던 때라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기막힌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철수가 오늘 친구 모임에 참석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임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달려가 오늘 들은 얘기를 아내에게 자세히 했다. 아내도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그게 가능할까요?"라고 반문하였지만 나는 철수가 무릎 통증을 완치하였고 고향 친구들은 허튼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고 아내는 동의하였고, 내심으로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낚싯대를 자동차에 싣고 아내와 함께 이 많은 양수리 세미원 부근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이 가득한 연못을 바라보니 기분이 흐뭇했다. 바로 이 연잎으로 아내의 뱃살이 쉽게 빠지겠다는 생각절로 들었다. 혹시 누가  지켜보는다소 불안했지 연잎 여러 장을 낚싯대를 사용하여 재빠르게 따고 급히 차를 가락시장으로 몰았다. 가락시장에서는 품질이 가장 좋다는 광천 새우젓구입한 후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아내와 나는 큰 일을 거의 마무리하였다는 성취감에 약간 흥분했. 연잎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그 위에 새우 젓갈을 고르게 편 다음, 청테이프로 정성스럽게 붙였다. 내일이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오늘 하루의 피로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내의 배 위에 조심스레 새우젓이 들어있는 연잎을 올렸다. 아내의 눈빛도 고마워서 그랬는지 부드러워 보였다. 우리는 곧 잠이 들었고 한참을 잤다. 그런데 새벽녘에 갑자기 아내가 나를 깨웠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아주 울상이 되어 있었다.

  "아뿔싸!" 새우젓을 담은 연잎이 터져서 아내의 몸은 물론 이불 전체가 새우젓으로 온통 범벅이 되었다. 나도 당황했지만 용기를 내고 "뱃살이 빠진 기분이 들어요?"하고 은근히 물어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아내가 후회하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친구말을 너무 믿었나?' 하는 생각이 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사건은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고 우선은 심한 냄새 때문에 새벽부터 열심히 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 집 식탁엔 한동안 새우이 올라오지 않았고  나는 고향 친구 덕분(?)에 아내에게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새우젓이나 연잎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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