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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을 듣다

쓰기의 시작

by 원호

처음으로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 동네 도서관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 홀린 듯 신청 버튼을 눌렀다.


아이들이 글쓰기 숙제를 할 때면 나는 글쓰기 달인인냥 잔소리를 하지만 소재는 언제나 빈궁하다.

"길게 써야지, 기~~일게!"

"글씨가 똑 고라야지..."


내가 글을 쓴게 언제였더라. 6년 전이었나? 회사에서 갑자기 사업부 매각이 결정되었을 때, 내 머릿속은 온갖 소문과 걱정으로 쉽게 어질러졌다. 그 때, 매일 같이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좀 정리해야지'했지만 늘 생각에 그쳤다. 밤잠을 설치게 했던 그 때의 일들이 벌써 희미하다.


그리고 얼마 전, 퇴직인사를 하러 마지막 출근을 했던 날, 십수년 함께 일한 사람들이 보내주던 따뜻한 인사도, 이직한 회사의 서걱이는 공기와 뚝딱이는 어색한 내 모습 역시도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뭐가 문제일까, 나는 한줄도 쓰지 못했다.


그래도 가만 생각해보니 글을 쓴적이 있다. 2년전 12월 둘째가 병에 걸렸다. 정확히는 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희귀병이었고, 선천성이라는데 답답한 마음에 병명을 인터넷에 아무리 쳐봐도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의사들은 야속한 말을 많이도 했다.


치료를 마친 우리 딸이 낫고 퇴원을 하면서 나는 나처럼 우는 어떤 엄마를 떠올렸다. 그리고 환우카페에 들어가서 아이의 병을 알게 되고 치료받은 후기를 최대한 자세히 썼다. 목표는 최대한 자세히였다. 아이가 수술을 받고 회복을 하는 내내 나는 너무나 궁금한게 많았으므로.


글을 올리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이가 잘 회복해주어서 다행이라며 자기가 다 고맙다고 해주는데, 왠지 눈물이 나서 나는 또 몇번을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 뒤로 그때의 나처럼 벼랑 끝에 선 엄마 몇분과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선생님이 작고 소소한 일상을 쓰라고 했다. 나도 대단한 글을 쓰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냥 일기를 쓰고, 후에 남편과 같이 읽으면서 깔깔거리고 싶다. 그런데 내 마음은 벌써 어디 시상식에 갔다왔다. 엄청난 글을 쓰고, 상을 받고, 시상식에서 글쓰기 선생님께 감사인사도 전했다. 히히.


음, 다시다시! 나는 왜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을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언제나 재미있었으니까. 재미를 느끼면서 일기를 쓰고 싶다. 대단한 글이 아니어도 된다고 나에게 말해줘야지. 이건 돈버는 일도 아니니까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또 나에게 말해줘야지.


10월 6일 목요일. 날씨 맑음. 오늘 나는 글쓰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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