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 말도 안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란 무엇일까. 세상 모든 슬픔이 말도 안 되고 이해할 수 없겠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슬픔은 모든 것을 뒤바꿔놓는
중학생 현수의 시간은 동생 혜진이가 사라진 5년 전 7월 19일에 멈춰있다. 그날 이후 현수네 가족의 삶은 블랙홀에 빠진 듯 끝을 알 수 없는 슬픔 속을 걷고 있다. 기나긴 슬픔의 바닷속을 헤쳐가는 중에 이상한 선생님과 딸기 향을 풍기는 개, 그리고 궁금한 것이 많은 여학생 수민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묻어두고 외면했던 기억 속의 문을 열게 된다.
마른 몸에 팔꿈치가 닳은 재킷, 물이 빠진 바지, 낡은 운동화, 새치가 드문드문 보이는 숱 없는 머리. 어디선가 마주쳐도 고개를 돌리면 3초 만에 까먹어 버릴 인상이다. 무존재감. <42p.>
사이비인지 괴짜인지 알 수 없는 선생님은 무존재감으로 현수에게 다가왔다. 첫 만남에서 서프라이즈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서프라이즈는 신이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라는 선생님. 늦은 시간 현수를 붙잡고 선생님이 말한 이 문장이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니야. 그 의미라는 건 개개인에게 다 달라. 집단화될 수 없어. 모두에게 다 개인적인 고유의 통로가 있어.” <54p.>
여섯 살 혜진이가 사라진 것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현수, 아버지, 어머니에게 각각의 통로로 전달되기에 슬픔이 드러나는 모습도, 슬픔을 견디는 방식도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슴 아픈 사건이 개개인에게 안겨주는 슬픔은 각기 다르다. 이들의 마음을 ‘슬프다’라는 글자로 똑같이 표현하기에는 각자가 가진 슬픔의 모양과 크기, 무게가 너무나 다르다. 아주 거대하고 무거운 바위처럼 사람을 짓눌러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가 하면 어떤 슬픔은 날카로운 바늘이 돋은 채로 사람의 꽁무니를 따라다닌다. 계속 도망치지 않으면 어느새 뒤를 따라와서 온몸을 찔러댄다. 그리고 쉽게 느껴지지 않는 안개비 같은 슬픔도 있다. 처음에는 슬픔을 느끼다가 ‘이런 슬픔은 별것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지내면 어느새 온몸을 축축하게 적신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슬픔을 나는 감히 예상할 수 없다. 어떤 모습의 슬픔인지 알 수 없기에 함부로 ‘너를 이해한다.’,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소설 속의 선생님과 수민처럼 묵묵히 곁을 지켜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 내밀어 주는 것, 그리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 걸어 주는 일이 바로 최선의 위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