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인간이 되었습니다.

by 김오 작가


낯설기만 했던 가게는 어느새 내 안에 스며들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사장이 말한 것을 하기에도 벅찼다. 그런 내가 스스로 일을 하는 것을 지나, 찾아서 하는 내가 돼 있었다. 익숙해짐과 능숙해짐은 가게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가게가 갖추어야 할 모습, 가게가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그런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나는 틈틈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일들을 해 나간다. 그동안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작은 먼지들, 테이블 밑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던 사장이 좋아하는 야한 만화가 연재되는 스포츠 신문, 진열대의 장식품들의 가지런하지 않은 모습, 그런 것들을 정상화한다. 먼지들은 하늘로 날려 보내고, 신문은 보관해야 할 만큼만 남겨두고 재활용품 버리는 곳에 정리해 놓는다. 그리고 장식품들이 일렬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제자리를 찾는다.


테이블은 총 5개. 번호는 없으나 임의의 1번부터 6번은 있다.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두 테이블이 가장 인기가 좋다. 두 테이블은 4인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마실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이고, 아르바이트생과도 거리가 제일 먼 곳이다. 작은 가게에 속하는 신주쿠는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덜 부담스럽다. 걸음으로 8보 미만의 거리.

그다음으로 1번 테이블 앞에 있는 벽에 붙어 있는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 너무 길어서 2번과 3번으로 나누어 부른다. 주방 쪽으로 있는 곳이 3번, 그 옆이 2번. 주로 연인들이 앉는다. 당시만 해도 이런 일본식 선술집이 많지 않아 마음에 불을 지피기 위해 찾아들기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가격도 만만하니, 아직 풋풋한 연인들에게 술 한잔하기에 딱인 곳이었다.

5번 테이블은 4번 테이블 앞에 있었고, 크기는 역시 4인 정도가 앉기에 적당했다. 마지막으로 6번 테이블은 10명이 와도 앉을 수 있는 곳으로 주방과 제일 가까이 위치해 있었다. 사실 주방은 독립적인 공간이어서 아르바이트생과 제일 가까운 곳이라고 해야 더 적당할 듯하다. 손님들이 주문한 것을 다 서빙하고 시간이 되면 주방 입구에 앉는다. 그리고 6번 테이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기를 타고 내 귀로 흘러온다.

나는 신주쿠에서 5년 정도 일을 했다. 오랜 시간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장님의 무한신뢰 덕분이었다. 사장은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어서 한번 마음에 들면 뭐를 하든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내가 거기에 속했다. 내가 처음 일주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좋게 봐주었고, 추후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자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렇게 수업이 없는 날, 신규 아르바이트생을 교육해야 되는 날, 그냥 심심한 날 등 나는 수많은 시간을 이곳과 함께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누군가 일을 못 나오게 되면 으레 내가 땜빵을 때우기 일쑤였고, 나는 더 신주쿠라는 곳과 자주 함께 했다. 쉬는 날에도 할 일 없거나, 배가 고프면 신주쿠에 가서 손님이 없으면 가락국수 하나 끓여먹고 오거나 앉아 있다가 오기도 했다. 원하는 것이 저 너머에 있지 않고, 갖고 싶은 것이 그리 많지 않은 필요한 것만 최소한도로 바라볼 수 있었던 그때였다. 모자란 것이 모자라지 않았던 신주쿠 인간.


아르바이트를 한 지 4년 정도 되어갈 때는 일을 마치고 나면 고생했다고, 아르바이트비 외에도 별도로 돈을 더 주기도 했다. 물론 나한테만 해당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모두 적용됐고, 가게에서 1킬로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살던 나에게도 사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돈을 주었다. 여름에는 복날이라며 몸보신용 보신탕이나 삼계탕도 사주고, 새벽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면 그때까지도 문을 닫지 않은 술집에 가서 인근의 술집 사장님들과 한 자리 같이 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지금도 술을 먹지 않는 나는 푸짐한 안주발을 내세우며 맛있게 먹고 자취방에 돌아와 잠들지 못하고 밝아오는 날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사장이 동네 사장님들과 놀이(주로 짝을 맞추는)를 하느라 바빠,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손님 메뉴 받고, 음식 만들고 설거지하고, 다른 주문받고. 처음에는 사장이 있는 곳에 가서 말하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했으나, 한번 시작하면 가게에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속이 타고 발을 동동 구르기만 반복할 수는 없다. 어느새 나는 틈틈이 파나 당근 같은 것도 썰어놓고, 국물도 끓여 놓는 등 많은 일들을 혼자서 해나가고 있었다.

그중에서 계란말이는 가슴을 조리는 주문 메뉴였다. 뒤집고 말기까지는 잘 되는데 칼로 썰어나갈 때 왜 이렇게 터져나가는지. 그리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계란말이 3개를 연속을 해야 할 때는 가스레인지의 불은 하나로 정해져 있어 애간장을 태웠다. 거기는 내 가게도 아니고, 손님이 나가도 상관없는데, 왜 그렇게 손님이 나갈까, 손님의 기분이 상할까 전전긍긍했을까. 그렇게 20대 초반의 나는 녹고 녹아 그 세계 안에 매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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